[friday] 난 그저 음악하는 게 좋아 후배들 키울 '깜냥'은 안 되네요

가수 이승철(51)은 지난달 27일 '브이(V)앱' 채널을 개설했다. 브이앱은 가수나 배우가 실시간 모바일 방송을 하는 플랫폼이다. TV처럼 정식 방송이 아니라, 인터넷 1인 방송같이 간편하게 하는 것이다. 주로 10~20대 아이돌 가수들이 팬 서비스 차원에서 채널을 개설하는 게 유행이다. 중견 가수에겐 낯선 도전일 텐데, 이승철은 한발 더 나갔다. 첫 방송에서 코미디언 송은이와 김숙을 섭외해 '이승철, 너 확 까고 싶다'는 제목으로 토크쇼를 꾸몄다. 그는 방송에서 팬들의 온갖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하고(속눈썹 길이를 묻는 질문도 있었다), 노래를 불러달란 요청에도 즉각 응했다. 마치 한 달 전 데뷔한 신인 가수 같았다. 최근 서울 삼성동에 있는 개인 녹음실에서 만난 이승철에게 물었다.

―브이앱 방송을 봤다. 이제 가요계에선 어른인데 '까고 싶다'는 제목은 좀 아니지 않나? 너무 열심히 하는 거 같다.

"하하. 방송 봤나? 재밌던가?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든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이승철이다. 은이랑 숙이랑 재밌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내 콘서트 홍보도 좀 하고. 요샌 이게 대세 아닌가(웃음)."

이승철은 특유의 가벼운 말투로 별거 아니란 듯 친근하게 말했다. 사는 동네에 단골 치킨집이 있고, 가게에서 옆자리 손님들이 사진 찍자고 오면 스스럼없이 농담을 하면서 어깨동무를 해주는 사람이다.

―브이앱은 보통 후배 아이돌 가수들이 하는 것이다. 부담은 없었나?

"별로. 주위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난 새로운 도전을 꺼리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부활'이 해체되고 1989년에 솔로로 활동할 때부터 가방 하나 들고 다니면서 직접 영업을 뛰었다. 그땐 매니저도 없었다. 방송국 PD들에게 앨범 돌리고 내 보도자료 내가 만들어서 뿌리고…. 지금까지 이승철이 이승철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다 내 스스로 모든 걸 결정했기 때문인 것 같다. 좀 포장해서 말하면 이승철이란 브랜드를 혼자서 경영해 온 거다(웃음)."

―'이승철 브랜드'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그 브랜드가 이승철 한 명으로 이뤄져 있을 것 같진 않다.

"당연하다. 공연 스태프만 두 팀이 있다. 한 팀이 몇십명이다. 공연 규모에 따라서 스태프도 다르게 간다. 만명 단위 공연과 소극장 공연은 사운드부터 연출까지 모든 게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규모에 맞는 전문 스태프를 둬야 한다. 그 스태프들과 20년 가까이 일했다. 그들이 내 공연을 책임지고, 내가 그들을 대표해 대중 앞에 나선다."

지금의 이승철을 키운 8할은 공연이다. 지금까지 2000여회 이상 크고 작은 공연을 해오면서 '라이브의 황제'란 별명까지 얻었다. 매년 상반기, 하반기, 그리고 연말로 시즌을 나눠 1년 내내 공연을 할 수 있는 가수도 현재 한국에선 거의 없다. 이번 연말 시즌엔 '머니 백(MONEY BACK)'이란 이름으로 전국 투어 중이다. "32년간 받은 사랑을 돈으로 돌려주겠다"는 뜻을 담은 '콩글리시'를 붙인 것이라고 한다.

―티켓 값을 확 낮췄더라. 3만원대 좌석도 있던데.

"32년간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겠다는 말은 촌스럽게 들릴 거다. 재작년쯤에 인터넷에서 내 공연 후기를 보는데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 공연에 가기 어려우니 TV에 나와서 노래 좀 많이 해달라'는 댓글을 봤다. 그 글이 그렇게 뭉클하더라. 내가 20년 넘게 공연을 해왔는데 관객들에게 물어보면 보통 70% 이상은 처음 오는 분들이다. 아직도 내 공연을 보지 못한 이들에게 문턱을 낮추는 것도 내 할 일이 아닌가 한다. 내년엔 마당놀이 같은 것도 해볼 생각이다."

―진짜 마당놀이를 말하는 건가?

"마당놀이 보면 공연하는 사람이 중간에 있고 관객들이 그 주위를 빙 둘러싸서 구경하지 않나. 그런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관객들 눈높이에서 같이 어울리는 거다."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 건가?

"다 놀면서 떠올리는 거지(웃음). 공연의 본질은 노는 거다. 잘 놀지 못하면 좋은 공연 아이디어가 떠오를 리 없다. 지금도 1년에 절반 이상은 해외에 가서 논다. 물론 생짜로 노는 건 아니고,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닌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가수로선 이룰 건 거의 다 이룬 위치 아닌가.

"전혀. 가수 인생 전반기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팬을 모을 것인가'였다. 그 답은 결국 히트곡이었다. 대중은 히트곡으로 가수를 좋아하고 기억한다. 히트곡이 몇 곡쯤 생긴 지금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이 팬들과 함께 가느냐'다. 팬들은 변덕이 심한 존재다(웃음). 히트곡만으로 붙잡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럼 무엇으로 팬들을 붙잡는가?

"의미다. 내 노래를 듣고 내 공연에 오는 의미를 부여해줘야 한다. 예를 들면 공연에 오는 관객들에겐 꼭 내가 아프리카에 짓는 학교와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영상을 보여준다. 공연 수익금으로 기부해서 그 학교를 짓는 거니까. 관객들에게 '여러분이 낸 티켓 값을 이렇게 쓴다'고 말해주면 다들 표정이 바뀐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기부지만, 팬들도 거기에 동참하면서 같이 의미를 만들어 가는 거다."

이승철은 학교 짓기 외에도 교도소 재소자 합창단 지휘 같은 재능기부에도 열심이다. 요즘엔 6·25전쟁 참전 용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뛰어들었다. 2010년 우연히 프랑스의 6·25 참전 용사 레몽 베르나르씨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6·25에 참전했단 사실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알겠느냐"며 "나 같은 평범한 가수가 그런 분들의 희생을 알리는 게 일반인들에게도 더 와 닿지 않겠느냐"고 했다.

―공연도 좋고, 기부도 좋지만 이승철의 신곡을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일기장' 이후 1년 넘게 곡을 발표하지 않고 있는데.

"내가 LP 시절부터 시작해서 카세트테이프, CD 시절을 거쳐 디지털 음원 시대까지 왔지 않나. 지금은 굳이 말하자면 '관망세'다. 예전과는 히트곡이 나오는 경로 자체가 달라졌다. 이젠 TV 예능에 나오거나 드라마 OST에 삽입되는 게 아니면 히트하기 힘들다. 가수들이 정성 들여 만든 곡을 내놓아도 음원 차트에서 '광속 탈락'하는 걸 보고 있으면 이게 답인가 싶다. 해법을 찾는 시기다."

―비슷한 연배의 동료나 후배 중엔 기획사를 차리고 신인 제작을 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럴 계획은 없나?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버겁다(웃음). 내가 나를 잘 아는데, 누군가를 키울 '깜냥'이 안 된다. 선배로서 후배들 키우는 데 힘을 보태는 건 '슈퍼스타K'로 충분히 역할을 다하지 않았나 싶다. 혼자서 내 음악 하는 게 가장 자유롭고 내 적성에도 맞는 것 같다."

인터뷰 말미 그는 느닷없이 후배인 윤종신 이야길 꺼냈다. 윤종신은 올해 6월 발표한 '좋니'란 노래로 디지털 음원 차트를 휩쓸었다.

"종신이는 대단하죠.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그 방법대로 1위를 한 거잖아요. 저도 저만의 방법을 찾을 거란 믿음이 있어요. 돌이켜보면 정말 고비 때마다 히트곡이 나왔거든요. '희야'가 그랬고, '안녕이라 말하지마' '오늘도 난' '네버엔딩스토리' '서쪽하늘' 다 뜻하지 않을 때 터진 곡들이에요. 그런 곡들이 또 절 찾아올 겁니다. 아니, 팬들을 찾아갈 겁니다. 저는 목소리만 보태는 거죠." 지난 32년간 한국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가수 중 하나인 사람이 자신 있게 말했다.

이승철 프로필

1966 서울 출생
1985 그룹 ‘부활’의 보컬로 가요계 데뷔
1989 솔로 1집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발매
1994 전국 투어 콘서트 시작
2005 데뷔 20주년 공연 ‘Emperor of Live’
2014 탈북청년합창단과 독도 공연
2015 제42회 한국방송대상 문화예술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