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리뷰] 이해보다는 수용의 의미를 전달하는 연극 '아내의 서랍'

    입력 : 2018.01.04 09:46

    지난 시간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연극 한 편을 만났다. 갑자기 찾아온 한파가 60대 후반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음을 더욱 절실하게 전달하는 12월이었다. 그 허전한 느낌을 메워주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겨울 추위의 밤 외출을 허락하였다.

    너무 추운 날이라 객석이 빌까 봐 걱정했다는 연극 주인공의 말과 다르게 객석은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 팬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막이 내렸다. 끝날 즈음에는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극 “아내의 서랍”은 시작 전부터 제목에서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 있었다. 소극장이 가득해서 몇 번을 가도 찾기 어려운 연극인들의 집합장소인 혜화동. 대학로 '명작극장'의 공간을 채워가는 주인공의 독백이 내 곁에서 들려오던 남편의 언어 같았다. 어눌한 음성으로 남편에게 항의 한번 하지 못하고 노년을 맞이하여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는 아내의 모습에서 지난날 나의 모습이 보인다.

    후플러스 제공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스트레스의 발병으로 연결고리가 이어진다. 엄마의 언어를 대신하는 딸의 역할까지 아내는 1인 2역을 하고 있어 3인극을 보는 것 같았다. 긴 대사를 장시간 이어가는 남편의 대사에서는 숨 막히는 일상의 어느 부분에 분노하는 항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나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부부관계에서 단절된 대화가 가져오는 삶의 모습이 그대로 조명되고 있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말 없음 자체로도 마음이 전달된다고 믿으며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었고, 아내는 아내대로 불만이 있어도 그것이 그대로 삶의 모습이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메워가는 변화 없는 일상이다.

    70년대 급변하는 산업사회시기에 부부생활을 시작하여 현재 노년기를 맞이하는 우리 사회의 부부학개론이다. 아내의 발병을 마주하면서 후회와 반성으로 새로운 관계로의 발전을 시도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아내의 시간은 너무 멀리 흘렀다.
     
    아내의 서랍에서 마주하게 되는 싸구려 목걸이를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것은 지난날을 돌아보는 나의 반성이기도 하다. 언젠가 욕실에서 사용하는 비누에 은박지를 붙이라는 남편의 말에 항의한 적이 있다. “제가 사회생활을 해 보니까 이제야 아빠가 은박지를 붙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고 있어요.” 이제 막 중년을 시작한 40대 아들이 뒤늦은 후회로 비누에 은박지를 붙이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아직 경제개념이라고는 없다고 생각하던 아들의 말에서 느낀 가장의 무게감이었다.

    인간관계는 상대적인 모습으로 소통이 된다. 누군가의 희생 뒤에 숨어있는 이면의 모습과 함께 현재의 모습이 반영된 언어로서만 가능한 소통의 가치이다.

    분명히 어느 날엔가는 겪은 우리 부부의 모습인데, 이제는 아들의 모습이 투영된다. 한 발 앞서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연극 내용은 공감대보다는 수용의 의미로 손을 내밀었다.

    40대를 시작한 아들과 딸을 보며 되새기는 생활의 의미를 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인간이 발전의 여지를 지니고 있는 것은 후회와 반성을 할 수 있는 사고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경험하고 난 후에라야 상대를 이해한다는 사실이다.

    ‘미리 알았더라면....’이라는 아쉬움으로 만나게 된 연극 한 편에 새해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부부관계뿐만이 아닌 모든 관계에서 상대를 향한 애정 깊은 시선이 없다면 돌아보는 시간은 언제나 후회로 이어진다는 늦은 깨달음이다. 새롭게 만나는 새해에는 가능하면 후회의 시간을 만들지 않아야겠다.

    젊음으로써는 결코 알지 못했던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아간다. 삶이 감추고 있는 시간의 비밀스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