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고야의 연인 알바 공작부인

    입력 : 2018.01.25 10:13

    고야의 검은 그림은 일반적인 명화의 분위기와는 매우 다른 강렬하고 공포스러운 느낌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는 공포와 어둠이 아닌 그가 의문의 검은 그림들을 그려야 했던 스페인의 시대적인 배경과 화가 개인의 삶이 숨어있다.

    18세기 스페인의 혼란기를 겪은 고야는 역사를 붓으로 그려낸 화가로 평가한다. 그러나 초기 낭만주의 시기의 고야는 자신의 화폭에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하나의 일체감으로 담았다.

    1746년 고야가 태어난 펜테토도스는 아라곤의 통치령으로 사라고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도시였다. 고야는 사라고사에서 솜씨를 인정받는 열네 명의 금 세공사 중 한 사람인 호세 고야의 아들로 13세 때 스승 호세 루산에게서 명화 복제기술을 배웠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그림에 강한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다.

    프란스시코 고야 Francisco Goya, <알바 공작부인 The Black Duchess>, 1797

    17세에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하여 시험에 응시하지만, 당시 스페인 화풍은 그의 개성이 가득한 그림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아카데미의 규칙을 엄격하게 준수하라고 교육하는 시기였다.

    당시 화가로 출세하려면 궁정과 연줄을 맺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으며, 이를 위한 첫 계단이 미술 아카데미 입학이었다. 두 번의 낙방 이유가 왕실과 연줄이 없기 때문으로 이해한 고야는 미술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가서 파르마 미술 아카데미에 당당하게 합격하고 스페인으로 돌아온다.

    양탄자 밑그림인 카르톤을 그리기 시작한 후 궁정 수석화가가 되기까지 고야는 700여 점이 넘는 카르톤을 ‘그려냈다’. ‘그려냈다’는 표현에서 고야는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아닌 왕실의 요구대로 그려내는 카르톤을 매우 지겨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한 그림에서 해방되는 궁정 수석화로 임명되기 전 심한 열병을 앓고 청력을 상실한다. 이후 서서히 낭만주의 초기의 아름다웠던 화풍이 변하고, 고통을 치유하기 위하여 떠났던 세비야에서 법 위에 군림하는 귀족이라던 알바 공작부인과의 운명 같은 만남으로 사랑을 시작한다.

    당시 스페인 사람들은 알바 공작부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요녀”라고 부르고, 고야는 “걸어 다니는 남성”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두 사람의 열애는 스페인에서 화젯거리가 되었으나,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공작부인은 자신의 초상화에 또 다른 화젯거리를 남긴다.

    고야는 값비싼 레이스와 반짝이는 비단의 질감을 당시 어느 화가보다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의 재능이 번쩍이는 공작 부인 초상화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공작 부인의 당당한 모습이 담겨있다. 자존감이 가득한 고야는 그림을 통해 누구보다도 당당한 모습으로 그녀의 연인을 지목한다. 레이스로 화려하게 치장한 그녀의 손끝이 가리키는 흙바닥에는 “나에게는 오직 고야뿐(Solo Goya)"이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요란한 화제를 제공한 두 사람의 열애는 오래가지 못하고 끝났다. 공작 부인에게 절교를 선언 받은 고야의 그림은 더욱 더 검은 어둠 속의 그림으로 변했다. 고야의 꿈에 나타나는 공작 부인이 어느 순간 마녀가 되어 그를 고통으로 몰고 가는 시간이 지속된다. 그의 작품에서도 마녀의 모습은 종종 나타난다.

    알바 공작부인은 40세에 의문을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는 죽음에 이르러 고야의 아들에게도 유산을 남겼다. 그녀의 다른 정부는 그 시기 스페인 권력에 중심에 있었던 재상 고도이였고, 그의 다른 정부가 카를로스 4세의 왕비인 마리아 테레지아였다.

    이러한 이유로 ‘옷을 입은 마야와 옷을 벗은 마야’의 실제 모델이 귀족인 알바 공작부인이라는 추정에 대해 고야는 당시 유럽에서 악명 높던 스페인의 이단종교재판소에서 작품이 탄생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고통을 치르게 된다. 공작부인과의 열애는 고야의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인 고통으로 남지만, 그는 한 번도 그녀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깊은 감정 역시 그가 스페인 민족에게 바치는 깊은 애정과 연관성 있게 다가온다.

    고교 시절 미술 교과서에 실렸던 그림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이유는 아마도 사춘기 시절에 본 나체화에 대한 강한 거부감 때문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다시 바라본 마야의 나체화에서 느껴지는 도도함은 이 나이가 되어서야 사랑하는 마음으로서만 가능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