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가 어렵다고요?… 내겐 피아니스트의 길 일러준 작품

    입력 : 2018.02.14 01:01

    워너클래식에서 첫 음반 낸 지용, 구글 광고에 나와 스타된 연주자
    "연주란 벌거벗은 날 마주하는 것"

    지용은 왼쪽 팔뚝에 문신을 새겼다가 나중에 긴 줄로 덮어버렸다. 팔을 살짝만 비틀어도 줄이 삐뚤어지듯 인생은 한 방향이 아니라는 의미다.
    지용은 왼쪽 팔뚝에 문신을 새겼다가 나중에 긴 줄로 덮어버렸다. 팔을 살짝만 비틀어도 줄이 삐뚤어지듯 인생은 한 방향이 아니라는 의미다. /크레디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첫 번째로 녹음하겠다니까 주위에서 뜯어 말렸어요. 그렇게 까다로운 걸 하면 CD 못 판다고요. 녹음 안 한다고 버텼죠."

    워너클래식을 통해 첫 인터내셔널 음반을 선보인 피아니스트 지용(27)이 씩 웃었다. 곡목은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120년 역사의 워너클래식에서 그는 백건우, 임동혁, 임현정에 이어 네 번째로 음반을 낸 한국인 피아니스트가 됐다.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만난 지용은 바로크 스타일의 변주 서른 개를 표현하느라 머리를 싸맸다면서도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300년 가까이 된 작품을 지금도 연주한다는 게 신기해요. 하지만 300년 전과 똑같이 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요즘 느낌을 담았어요."

    부산에서 윤리 교사인 아버지, 음악학원 원장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지용은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 2000년 도미해 줄리아드 음악원 예비학교에 들어갔다. 2년 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주최한 '영 아티스트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했다. 당시 뉴욕 필 상임지휘자였던 쿠르트 마주어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협연했다. 클래식 매니지먼트사 IMG의 최연소 피아니스트가 되면서 '신동'으로 날아올랐다.

    지용이 세계인의 가슴을 두드린 건 2016년 미국 LA에서 열린 58회 그래미상 시상식 때다. 그가 나온 구글 안드로이드 '모노튠' 광고가 TV로 중계되면서 수십억 시청자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피아노는 88개의 건반을 갖고 있다. 광고 속에서 지용은 건반 88개가 각자 자기 음을 내는 피아노와 모든 건반을 '도(C)'음만 내게 획일적으로 조율한 피아노 사이를 오가며 베토벤 소나타 '월광'의 3악장을 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에서 나온다는 메시지였다. 러브콜이 쏟아졌다. 그중 손잡은 곳이 워너클래식이다.

    지용은 "일찍 데뷔해 좋은 면도 많았지만, 내 삶에 주어진 게 피아노밖에 없다는 트라우마에 짓눌렸다"고 했다. 한동안 정통 클래식을 떠나 있었다. 발레리나 강수진과 협업한 발레 공연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았고, 자신의 음반 '바흐 엑시비션(Exhibition)' 뮤직비디오에 무용수로 등장해 춤을 췄다. 평생 피아니스트로 살 것인가 자문자답하는 '소울 서칭' 단계도 밟았다. "관객들은 뭘 듣고 싶어하는가, 내겐 뭐가 부족한가를 고민했어요. 그 답을 연주에 하나씩 반영했지요."

    때마침 러시아의 천재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이 치는 바흐를 들었다. 세상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 손가락 가는 대로 순수하게 쳤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떠올랐다. "이거다!" 싶었다. 지용은 "악기를 연주하는 건 거울 앞에서 벌거벗은 나를 마주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방황 끝에 얻은 답은 '예스!'. "이젠 끝까지 피아니스트로서 살아가야 해요. 그래서 반가워요."

    지용 'I Am Not the Same'=24일 오후 7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577-5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