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글 읽으면 '나 공부 더 해야겠다' 싶다"

    입력 : 2018.03.14 03:50

    소설가 한강 아버지 한승원, 여든 인생 함축한 산문집 출간
    "날 뛰어넘은 딸, 가장 큰 효도해" 한강, '흰'으로 또 맨부커賞 후보

    "그저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로 불려도 좋다. 나를 진즉에 뛰어넘었으니. 가장 큰 효도가 '승어부(勝於父)' 아닌가. 소설가 황순원보다 그 아들인 시인 황동규가 더 잘 쓰고, 축구 선수 차범근보다 아들 차두리가 더 잘 뛴다고 생각한다. 후대가 더 뛰어난 세상이야말로 싹수 있는 세상일 것이다."

    소설가 한승원(79)씨는 '딸 바보'를 자처했다.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출간 간담회가 열린 13일은 한씨의 딸 한강(48)씨가 소설 '흰'으로 영국 맨 부커상 인터내셔널 1차 후보군(Long list)에 오른 날이었다. "강이의 작품 세계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훨씬 환상적인 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강이 글을 읽으면 '나 공부 더 해야겠다' 싶다. 강이가 또 상 받으면 어디서 잔치를 열어야 하나…."

    1966년 데뷔해 올해로 52년. 지난해 많이 아팠다. "독감으로 3개월 앓으며 거의 죽을 뻔했다"고 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병을 미끼로 시(詩)를 낚았다. 내 아들딸이 전부 문학을 하는데 그들에게 전범(典範)이 돼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그 바람을 부록 '병상일기―사랑하는 아들 딸에게 주는 편지'에도 담았다. "젊은이들에게 더 도전적으로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젊을 적엔 '개긴다'고 했다. '버틴다'보다 더 도전적인 태도다. 잎보다 먼저 꽃을 터뜨리는 매화나 목련, 살구를 보라. 도전적으로 봄을 준비한 것이다. 엄동설한을 어떻게 이겨냈느냐에 따라 꽃의 향기가 달라진다."

    공교롭게도 창밖에 흐드러진 흰 꽃의 '산목련'을 보고 영감 받아 쓴 수필 '흰, 그게 시(詩)이다'에서는 한강의 소설 '흰'과 유사한 심상이 엿보인다. "강이의 생각은 나보다 훨씬 섬세하고 새롭지만 느낌이 비슷한 것 같기는 하다"며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10월 한강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해 논란을 일으킨 칼럼 '미국이 전쟁을 얘기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말자"고 했다.

    서울에서 고향 장흥으로 내려온 지 22년. 바닷가 앞 자택에 마련한 작업실 '해산토굴(海山土窟)'에서 그는 쓴다. "글을 청탁받고 쓰지 않는다. 미리 써놓고 출판사에 보낸다. 시골 사는 작가들에게 꼭 얘기한다. 도전적으로 살라고. 청탁 안 와서 소설 못 쓰겠다는 자는 소설가가 아니다." 다작의 작가로 손꼽히는 그는 "가을쯤 새 장편소설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작가는 어떤 잡지든 원하는 곳에 발표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러려면 사랑하는 걸 넘어 미쳐야 한다." 그가 작업실 벽에 붓으로 '狂氣(광기)'라 써놓은 이유다.

    산문집 제목은 그의 삶을 함축한다. "성취하기 위해 꽃을 꺾으러 길을 나선다. 곧 길을 잃고, 또 길을 찾으며 집으로 돌아와 인격을 완성한다. 이 책은 어느 의지박약한 남자 아이가 늙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길 잃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았다. 신화 속 시지프스가 바위를 밀어올리듯 나 또한 운명을 짊어진 채 굴러떨어지면서 산을 오르고 있다. 글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고, 살아있는 한 글을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