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시간 많아져… 아내가 자꾸 밖에 나가래요"

    입력 : 2018.04.15 23:59

    - '홈런왕' 이승엽, 야구장학재단 운영
    카톡 프로필엔 '다시 시작'
    "야구 포기하는 꿈나무들 계속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아침엔 애들 통학 운전기사, 저녁엔 붙박이 야구 시청자"

    "야구 그만두니까 강연 요청이 너무 많네요. 최근엔 저보고 '리더십' 강의해 달라고 해서 30년 만에 공부 좀 하려니 되게 어렵네요."

    그 없이 한국 프로야구 홈런 역사를 설명할 수 없다. '국민 타자' 이승엽(42)은 지난해를 끝으로 화려했던 23년 야구 인생을 마감했다. 현재 공식 직함은 '선수'가 아니라 재단 이사장이다. 그동안 야구장학재단을 준비하면서 분주한 나날을 보냈던 그는 "8일 재단이 출범하니 여유가 좀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그의 휴대전화 카카오톡 프로필 제목은 '다시 시작'이다.

    이승엽이 13일 서울 강남구‘이승엽야구장학재단’사무실 앞에서 야구 배트를 쥐고 환하게 웃었다.
    이제 이승엽 이름 앞엔‘국민 타자’대신‘재단 이사장’이란 직함이 늘 붙는다. 이승엽이 13일 서울 강남구‘이승엽야구장학재단’사무실 앞에서 야구 배트를 쥐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너무 나서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이승엽은 말끔한 콤비 정장 차림새였다. 워낙 탄탄한 근육질 몸매 때문에 '옷 태'가 확 살았다.

    "지도자나 해설위원으로 야구장에 계속 있을 수도 있었지만, 이게 먼저였어요. 여러 이유로 중도에 포기하는 야구 꿈나무들이 참 많아요. 다 도울 순 없지만, 나중에 어른이 돼서 '그때 야구 했더라면'하고 후회하는 사람을 조금이나마 줄여 보자는 생각 때문에 시작했어요."

    이승엽 재단은 유소년 선수 장학금 지원, 야구 대회 유치, 봉사 활동, 야구 아카데미 운영 등 활동이 광범위하다. 그는 "재단을 차린다고 아니꼽게 보는 분도 있을 것"이라며 "너무 나서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재단 규모를 묻자 "밝힐 수 없다. 아주 조금이다"라며 웃음 지었다. 그는 현역 시절 앞에 내세우지 않고 소리 없이 선행을 많이 펼쳤다. 오릭스에서 함께 선수 생활을 했던 박찬호가 얼마 전 이승엽 재단에 1억원을 기부했다.

    그에게 야구 금단(禁斷)현상은 없는지 물었더니 곧바로 "요즘은 취미로 야구를 본다"는 답이 돌아왔다.

    "저녁 6시 반만 되면 TV 틀고 5개 채널을 돌리며 전 경기를 다 봐요. 아이들이 놀자고 해도 '아빠 바쁘다, 가라'고 하죠. 명색이 KBO 홍보대사인데 굴러가는 건 알아야죠."

    전직 홈런왕에게 올 시즌 판세를 물었다.

    "KIA, 두산, SK, 롯데가 잘할 것 같았어요. 근데 롯데는 좀 늦게, 천천히 올라오려는 모양이네요."

    그는 롯데 얘기를 꺼내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롯데는 현재 리그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친정팀 삼성에 대해선 "힘든 시기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승엽은 요즘 골프에 흠뻑 빠져 있다. 그는 "살얼음 승부에서 20년 넘게 보낼 때와 비교하면 지금 생활이 아무래도 박진감이 떨어져 골프에 더 몰두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그에겐 새로운 세상이다. 요즘 남편 노릇, 아빠 노릇 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단다. 매일 은혁(14)·은준(8), 두 아들의 등·하굣길을 책임진 '운전기사'가 됐고, 아이들 때문에 원래 관심 없던 SF(공상과학) 영화에도 눈길을 돌렸다.

    "어벤져스가 개봉한다고 해서 큰 마음을 먹고 보러 가자고 했더니 친구들이랑 본다고 단숨에 거절하데요. 보기 좋게 차였죠. 선수 땐 아이들 학교 간다고 하면 일부러 자는 척도 했는데 지금은 어림없어요. 아이들 보살피는 게 재미는 있는데 좀 피곤하네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아내가 자꾸 밖으로 나가라고 하기도 하네요."

    이승엽은 대뜸 아들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나중에 공부를 하든, 야구를 하든 이 말만은 꼭 마음에 새겼으면 해요.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제 인생 좌우명이죠. 이걸 우리 애들이 빨리 깨달아야 하는데…."

    이승엽은 인터뷰 말미 다시 재단 얘기를 꺼내면서 "초등학생 시절 삼성 포수였던 이만수(60) 감독님이 지도를 해준 그날 기억이 3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생생하다"며 "먼 미래에 많은 야구 선수들이 이승엽과 함께한 그날을 기억해 주면 마음이 참 뿌듯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