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에 끌려간 아버지… 나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입력 : 2018.04.13 23:40

    反정부 투쟁하다 납치된 아버지… 아부살림 교도소 대학살 때 실종
    '아랍의 봄'으로 독재는 끝났지만 카다피가 남긴 상처 아물지 않아

    귀환

    귀환

    히샴 마타르 지음 | 김병순 옮김 | 돌베개
    344쪽 | 1만5000원

    리비아 출신 소설가 히샴 마타르(48)의 아버지 자발라(1939~?)는 반체제 인사였다. 1979년 이집트로 망명해 반(反)카다피 투쟁을 벌이다가 1990년 이집트 비밀경찰에 체포돼 리비아로 압송됐다. 그로부터 3년 뒤 소식을 알 수 없던 아버지로부터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발신지는 정치범 수용소로 악명 높은 아부살림 교도소. 드문드문 오던 편지는 1996년 3월 카다피가 아부살림에 수감된 정치범 1270명을 학살한 뒤 중단됐다. 자발라의 이름은 사망자 명단에 없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죽었을까. 어쩌면 다른 교도소에 이감돼 살아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그의 아들 히샴이 어른이 된 후 아버지를 찾아 헤맨 기록이자 이탈리아 식민지 시절부터 카다피 독재를 끝장낸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에 이르기까지 리비아인들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치러낸 희생의 기록이다. 작가 마타르는 이 논픽션으로 2017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자발라는 체포 위험을 무릅쓰고 이집트 국경을 넘어 고향의 부친을 만나곤 했다. 자발라가 가족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는 '나를 찾지 말라'고 쓰여 있었지만 히샴은 "아버지가 목숨 걸고 국경을 넘어가 겨우 한두 시간밖에 할아버지를 못 만났더라도, 아버지가 했던 것과 똑같은 위험을 무릅쓰고 싶다"며 그를 찾아 나섰다.

    2011년 8월 22일 리비아 시민군이 수도 트리폴리에 입성하자 저항 세력의 거점도시인 벵가지 주민들이 카다피가 감옥에 갇혀 있는 그림을 들고 거리에 나와 환호하고 있다.
    2011년 8월 22일 리비아 시민군이 수도 트리폴리에 입성하자 저항 세력의 거점도시인 벵가지 주민들이 카다피가 감옥에 갇혀 있는 그림을 들고 거리에 나와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

    영국에서 생활하던 히샴은 '아랍의 봄' 덕분에 리비아에 다시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여덟 살이던 1979년 가족과 함께 망명길에 오른 지 33년 만의 귀환이었다. 혁명 세력의 근거지였던 동부 도시 벵가지 공항에 도착하자 아버지와 함께 갇혔다가 21년 만에 풀려난 삼촌, 사촌 형제, 동료 수감자들이 모두 모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히샴은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와 다시 만났다. 아버지의 대학 동창은 히샴에게 "네 아버지와 함께 만들었다"며 빛바랜 문예지를 보여줬다. 그 속엔 아버지가 쓴 단편소설 두 편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시(詩)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소설도 썼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버지가 쓴 소설의 마지막 문장, '어떡하든 살아남을 거야'는 멋 훗날 자신의 흔적을 찾아나설 운명을 지닌 아들 히샴에게 미리 남긴 유언 같았다. 히샴은 아버지가 남긴 작품들이 '내 아버지가 된 한 청년의 내면 풍경을 볼 수 있는 창문을 활짝 열어주었다'고 썼다.

    논픽션임에도 소설 못지않게 극적 사연을 담은 작품이다. 사연이 기막힌 탓도 있지만, 작가가 자신의 심경을 날로 드러내지 않고 객관적 묘사나 서술을 통해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오히려 더 큰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아부살림 학살 사건 소식을 뒤늦게 듣던 날, 히샴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지 모를 그날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싶어 오래된 일기를 펼쳤다. 일기에는 '평소 일찍 일어났는데 오늘은 정오가 되도록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쓰여 있었다. 그 문장을 읽으며 한없는 비통함에 빠져들었을 히샴의 심정이 상상돼 오래도록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작가는 아버지 찾기를 단념하지 못하는 자신을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에 비유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20년 동안만 나라 밖을 떠돌았을 뿐이다. 히샴은 1990년 그날부터 지금까지 아버지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

    책에는 카다피 왕국이 국민에게 남긴 온갖 상처가 널려 있다. 어느 법정에선 10여 년 전 각자의 어린 자식과 생이별했던 수감자 두 명이 방청석의 낯선 소년에게 "아버지 이름이 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 아이가 이름을 말하는 순간, 두 남자 중 한 명이 정신을 잃었다. 쓰러진 이는 아이 아빠가 아니었다. 눈앞의 아이가 자기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무너져버린 남자였다.

    카다피의 42년 독재는 소설 못지않은 비극을 숱하게 빚어냈지만, 한국도 웃지 못할 사연을 하나 보탰다. 국내 한 좌파 불교 단체가 10여 년 전 한창 반미(反美) 투쟁에 열 올리던 카다피에게 "민족과 민중을 위해 온몸으로 헌신한 지도자"라며 인권상을 준 것이다. 소설 뺨치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