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날아가고 싶은 밤

    입력 : 2018.05.17 13:32

    어느덧 오월이다. 물오른 산야가 반짝이는 물결로 가득하다. 겨울 끝이 너무 길어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봄도 무르익어 간다. 딱히 서둘러 가야 할 곳도 없어진 퇴직 후의 아침 생활도 이제 익숙하다. 봄 중에 제일 아름답다는 오월의 풍경 속에 들어 숲을 바라보니 눈이 호강하고 가슴이 떨린다. 바쁘게 살면서 잃어버린 것들이 하나하나 가슴속에 들어 자리 잡아간다는 뜻이다.

    내 생애 연애편지를 제일 처음 받았던 날은 어느 봄날이었다. 주체하기 벅찬 그 봄날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봄날이다. 꽃이야 봄이면 늘 피고 지는데도 유독 그 봄날이 더 아름다웠던 것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 연애편지 한 장 때문이리라. 그 편지 한 장 때문에 내 몸과 마음은 꽃으로 활짝 피었다. 아마도 그렇게 붉게 꽃으로 피었던 것은 여물지 못한 풋것의 부끄러움도 한자리했을 거라는 게 지금의 생각이다.

    아파트 옥상에 올라 서성거린다. 어둠 속에서 상자텃밭의 감자나 더덕이나 상추 고추들에게 다가가 기웃거리며 안부를 묻는다. 민들레꽃이 살던 텃밭상자에서 더부살이하던 민들레 홀씨가 하르르 날아오른다. 떠나야 할 때가 됐다고 밤하늘에 올라 멀어져 간다.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를 눈으로 쫓다가 눈길이 밤하늘을 머문다. 흰 구름 몇 점, 달을 에워싸듯 떠 있다. 배부른 달이 곱게 빛나고 있다. 굳이 가로등을 애써 밝히지 않아도 좋은 오월의 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그리움들을 붙잡고 달빛 아래 앉았다. 귓가에 들리던 자동차의 소음도 보고 싶은 얼굴들이 살며시 밀어낸다. 마음이야 어딘들 못 갈까. 나도 민들레 홀씨 되어 두둥실 그대들을 만나러 갔으면 좋겠지만 땅에 이미 뿌리박고 사는 내가 이 육신을 두고 어찌 떠날까. 다만 내가 달을 보고 그대를 생각하듯 그대도 달을 보고 날 보듯 할까 싶어 한참을 그리 앉아 오래도록 그대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어버이날이 와도 카네이션도 달아 드리지 못하게 된 부모님과 먼저 떠나간 친구와 그리고 그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