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오지항아리의 검은 눈물

    입력 : 2018.05.22 15:29

    예전엔 집마다 뒤뜰에 장독대가 있었다. 우리 고향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고향 집은 앞뜰에 오지항아리들이 모여 있는 장독대가 있었다. 뒤뜰이 협소한 탓이다. 그 장독대를 어머니는 애지중지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깔끔한 어머니 성정 탓에 고추장 독이나 된장독, 간장독은 언제나 반질반질 윤이 흘렀다. 그러니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장독대 하면 어머니가 생각났다.

    우리 집 풍경은 아니었지만 어떤 분들은 가장 깨끗한 장독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다. 어둠을 촛불 하나로 밝혀 놓고 오직 떠나 간 님이나 자식들을 위해 두 손 모아 비는 곳도 장독대 앞이었다. 자녀들이 자라 혼담이 오가면 사람들은 상대 집안 장독대부터 살폈다. 장독들이 크기별로 대, 중, 소로 잘 갖추어졌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 장독대의 크기로 그 집안의 살림 규모를 알아냈다.

    그뿐이 아니다. 장독대 관리나 장맛을 보고는 안주인의 음식 솜씨를 가늠하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시골에서 집안 어른이라도 오시면 장독대를 살피시는 걸 몇 번이나 목격했다. 급기야는 장독 뚜껑을 열고 고추장, 된장, 간장을 찍어 드셨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시절에는 몰랐다. 왜 하필 저것을 찍어 드시는지 의아하기만 했을 뿐이다. 훨씬 자란 다음에야 어머니가 살림을 잘 하시는지 못 하시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들이야 그런 의미로 장독대를 바라보았지만 내가 본 것은 계절의 아름다움이었다. 항아리 뚜껑에 서리가 앉으면 가을이 지나감을 알았다. 눈이 장독 위에 소복이 올라앉으면 겨울이었다. 봄 내내 장을 담가 놓고 숙성을 위해 뚜껑을 열어 놓으면 봄이었다. 간장독에는 하늘 풍경이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구름이 흘러가고 나무가 흔들리고 새가 날아갔다. 가을이면 대추나무에서 잘 익은 대추가 후드득 떨어져 내려 장독 뚜껑 위에 부딪혔다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그 탓이다. 내가 항아리들을 사랑하는 이유가. 길을 가다가 장독이나 아기자기한 항아리를 만나면 맥을 못 추고 바라보기 일쑤다. 하여 누군가에게 앙증맞은 장항아리에 담긴 장을 선물을 받았을 때 너무나 행복했다. 몇 년을 바라보며 행복해하다가 용기를 내어 항아리 밑바닥에 구멍을 뚫고 화분으로 만들었다. 행복을 배가시키고 싶은 욕심이었다. 그렇게 만든 항아리에 돌나물을 심고 가꾸었다. 장독대 돌 틈바구니에서 자라던 돌나물이 생각나서다.

    그 돌나물을 보는 행복은 얼마 가지 못해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한 오지항아리에서만 그런대로 겨우겨우 돌나물이 정착해 꽃을 피웠다. 나머지 두 항아리에 심은 것들은 시름시름 하더니 죽어 간다. 그런 참에 항아리 손잡이에서는 검은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게 무엇인지 처음엔 흙물이겠거니 했다. 하루, 이틀, 사흘 지나니 항아리 화분 받침에 무언가 끈적끈적 거리는 물체가 고였다. 손가락으로 찍어보니 검은색의 끈적끈적한 액체다. 성분이 무엇인지 몰라도 도로에 까는 콜타르를 닮았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담는 오지항아리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닦아내고 닦아내도 멈추지 않는다. 솔직히 장은 먹지 않았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지항아리는 좋은데 장은 먹고 싶지 않았다. 몇 년을 부엌 창가에서 아름다운 소품으로 나를 비롯하여 이 집안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그러다가 화분으로 만든 것인데 이 무슨 해괴한 일인지. 장독이 검은 눈물을 흘리면 그 장을 먹는 사람이 몸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한 달여를 닦아내며 버티다가 결국은 오지항아리 화분 두 개에서 흙을 쏟아냈다. 검은 눈물을 마음껏 흘려보내라고 물에 담가 놓았다. 검은 눈물을 흘릴 만큼 맺힌 것들이 쏟아내다 보면 끝이 있겠지 싶어서다. 오늘도 담가 놓은 오지항아리를 바라본다. 낮이고 밤이고 다 쏟아 내면 초벌구이 붉은 항아리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어떤가. 그런대로 보듬고 살아야지.

    누군가는 미련이라 할 테지만 내겐 절실하다. 비록 추억 속의 장독대는 갖추지 못하고 살아도 오지항아리 소품 하나 창가에 두고 살고 싶었다. 사철 빛나던 풍경을 조금이나마 느끼며 살고 싶었다. 가고 없는 어머니의 숨결을, 오고 내리던 발길을 오래도록 느끼며 살고 싶었다. 그랬는데 저렇게 검은 눈물을 흘리면 머물 곳 없는 내 마음은 어쩌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