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 외래어·외국어 사용 이대로 괜찮습니까?

  • 김정아

    입력 : 2018.10.09 06:00

    세종대왕 /사진=픽사베이

    “아티스틱한 감성을 바탕으로 꾸띄르적인 디테일을 넣어 페미닌함을 세련되고 아트적인 느낌으로 표현합니다”

    한글로 썼지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이 국적 불명의 문장은 몇 년 전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에 경각심을 일으켰던 한 의류업계의 브랜드 소개 문구다.

    이 문장에 사용된 문체는 의류업계 관련자나 패션잡지 기자들이 많이 쓴다고 해서 유명 패션잡지의 이름을 딴 ‘보그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보그체’는 자사 상품의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외국어를 사용하던 의류업계의 관행이 지나쳐 조사와 동사 어미 정도만 우리말로 남은 것으로, 대표적인 허세 말투로 여겨진다.

    ‘보그체’가 한창 화제가 되었을 당시, 각계에서는 지나친 외국어 사용을 경계하고 한글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보그체’는 여전히 우리 생활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아니, 이제는 의류업계뿐 아니라 방송, 인터넷, 공공분야의 정책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오히려 확대된 것 같다.

    국립국어원이 우리나라 성인 남녀 5천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2015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2%가 “외래어나 외국어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쓰인다”라고 답했다.

    세계화 시대에 외국어를 쓰는 것이 대수냐 할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대체할 우리말이 있음에도 어려운 외래어나 외국어를 사용한다는 데 있다. 특히, 대중매체에서의 무분별한 외래어·외국어 사용은 자칫 외국어가 우리말보다 지적이거나, 유행에 밝거나, 전문적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만들 수 있어 그 문제가 더 심각하다.

    실제 방송언어특별위원회가 조사한 2015년도의 지상파 TV의 장르별 외래어, 외국어 사용비율은 최고 37.5%(KBS2, MBC)에 달했으며, 장르별로는 뉴스(39.4%), 예능(33.9%), 시사·교양(28.0%), 어린이(16.9%), 드라마(16.7%) 순으로 그 정도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에서 사람들은 외래어 또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이유로 ‘우리말보다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30.7%)와 ‘적당한 우리말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30.3%)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밖에 ‘주위 사람들이 외국어나 외래어를 많이 쓰기 때문에’(14.7%), ‘외래어・외국어로 된 전문적인 용어 사용이 능력 있어 보이므로’(13.9%), ‘외래어나 외국어가 우리말보다 세련된 느낌이 있기 때문에’(10.0%)라는 답변이 그 뒤를 이었다.

    대중매체의 외국어 남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들려온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14년 7월부터 2017년 8월까지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325건의 우리말 사용 관련 민원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방송·인터넷 등의 대중 매체에 대한 민원이 102건(31.4%)으로 가장 많았다.

    민원 유형별로는 한글맞춤법, 외래어 표기, 국어의 로마자 표기, 표준어사용, 표준발음 관련 순으로 위반 표기 수정을 건의하거나 질의하는 ‘올바른 우리말 사용 관련 민원’이 146건(44.9%)이었으며, 외국어 남용 등 문제 개선을 건의하는 ‘우리말 사용문화 확산’에 대한 내용이 142건(43.7%)이었다.

    민원인 ㄱ 씨는 “요즘 방송에서는 출연하는 주방장을 대부분 셰프로 부르므로, 주방장이라는 말은 왠지 다소 천박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방송의 지나친 외국어 사랑이 우리말을 천하게 여기도록 만들어 가고 있는 상황을 개선해 주기 바란다”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ㄴ 씨는 “요즘 방송에서 ‘팩트’와 ‘리스팩트’라는 단어가 자막으로 많이 노출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문자가 한글이라면서 왜 우리 스스로 한글을 포기하면서까지 외래어와 신조어를 사용하는지 의문이다. 최소한 방송 매체에서는 한글의 바른 사용에 앞장서야 한다”라며 현재 유행하는 말들에 대한 개정을 요구했다.

    ‘팩트’가 ‘사실’보다 전문적이고, ‘셰프’가 ‘주방장’보다 품격 있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어려운 외래어와 외국어 남용은 경계해야 한다.

    세종대왕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할 수 없는 일이 없도록 누구나 쉽게 익혀 편안하게 쓸 수 있는 한글“을 창제했다. 한글 반포 572돌을 맞은 오늘,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생각해서라도 어렵고 낯선 외국어보다 우리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권장하면 좋겠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화 시대에 맞춰 대중매체뿐 아니라 교육, 문화,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바른 한글 사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