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리뷰] 영화 완벽한 타인

    입력 : 2018.11.27 17:35

    가을 속에 깊숙이 몰입했던 날들이었다.
    그 가을의 탈출을 시도했던 블랙코미디 영화 ‘완벽한 타인’은 오히려 더 깊은 가을 속으로 나를 안내하고 있었다.

    인간은 세 가지 모습의 삶을 지니고 살아간다.
    공적인 모습으로,
    개인의 모습으로,
    비밀의 모습으로,
    영화가 끝나고 앤딩 크레딧의 화면 위로 떠오르는 구절들이다.

    영화는 잠시 웃게 하다가, 어느 장면에서는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는 언어를 사용하다가 결국은 블랙코미디가 지니고 있는 요소처럼 가슴 한구석에 단순히 웃고 넘겨버릴 수만은 없는 인간들이 지닌 이중적 모습을 매우 정밀하게 조명하고 있었다. 핸드폰이 지니고 있는 비밀의 열쇠, SNS가 지니고 있는 개인의 무수한 사생활의 내면을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듯 심리적인 해부를 하고 있다.

    인문학이란 인간이 살아온 삶의 가치탐구와 표현을 한 학문으로 솔직함과 정직함은 모든 인문정신의 핵심에 놓여있다. 그 솔직함이 지닌 자유로부터 얼마나 우리들은 확실하게 자신의 감정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점을 제시한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얼음낚시를 해서 한겨울 생선을 함께 구워 먹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불혹이 되어가는 나이까지 한 생을 함께 하였다고 자부하는 친구들이다. 서로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각각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타자에게 욕망의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욕망 역시 타자의 욕망에 깊이 개입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을 극복할 때 우리는 타자로부터 분리된 주체로 살아갈 수 있음을 배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혼자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혼자인 자아와의 타협점을 찾을 때 우리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추구할 수 있다.

    사랑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알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행복이라는 단어도 나 스스로 생성해가는 우리의 권리임을 깨닫기 시작한다. 영화는 계속 우정이라는 모습을 빌려 관객에게 폭소를 자아내지만, 그 웃음 뒤에 남겨지는 인간의 본 모습에서 씁쓸한 감정을 유발한다.

    가족과 친구라는 스스로가 설정한 관계의 고리 안에서 때로는 이해한다며 사소한 일로 상처받고 미워하다가도 작은 일에 감동하며 상대의 내면세계로 들어가 그 실체를 바라보며 자신을 돌아본다.

    새벽 밤길에 내리는 푸른 달빛의 노래처럼,
    깊은 가을 산길에서 들려오는 철렁이는 물길의 소리처럼,
    온 생을 다 걸어도 도달하지 못하는 풀 수 없는 인생이라는 단어를 지니고 우리는 시간의 길을 걸어간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우리의 시간도 흐른다.

    그러다 돌아보면 웃음 지을 수 있는 비밀의 시간 하나가 답이 없는 의문투성이의 삶에서 반짝이는 별이 되어주기도 하는, 그래서 우리들은 누구에게도 어쩌면 스스로에게도 꼭꼭 숨기고 싶은 비밀의 열쇠를 지니고파 하는 것 같다.

    삶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할 때 누구에게나 부여되는 행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스피노자가 역설했던 ‘기쁨의 윤리학’이다. 분명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며 초인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기쁨의 윤리학을 말하면서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기 때문에 노력 없이는 그 행복을 차지할 수 없다.’라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타자와의 관계는 살아가면서 마주하여야 하는 분명한 과제이고 보이지 않는 실로 엮어진 관계의 고리를 잘 풀어 갈 때 비로소 우리는 가슴속에 행복이라는 명제를 선물로 안을 수 있음을 영화는 주제로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