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만든 와인, 까스텔 델 레메이

  • 시니어 조선

    입력 : 2019.05.20 11:25

    '17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
    '스페인 최초로 카베르네 소비뇽과 세미용 와인을 생산한 와이너리'
    '카탈루냐 지방에서 맨 처음 오크 숙성을 시작한 곳'

    까스텔 델 레메이(Castel del Remei)만큼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곳도 드물다. 2019년3월 까스텔 델 레메이의 오너 와인메이커 토마스 쿠지네(Tomas Cusine)가 서울을 방문했다. 쿠지네는 최근 코스터스 델 세그레(Costers del Segre) DO의 회장직을 맡게 됐다고 한다. 그가 직접 말해준 코스터스 델 세그레와 카스텔 델 레메이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까스텔 델 레메이는 원래 수도원이었어요.' 사진으로 본 까스텔 델 레메이의 모습은 고풍스런 보르도 샤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곳을1890년대에 지로나(Girona) 가문이 매입했다. 당시는 프랑스 와인산업이 필록세라의 공격으로 초토화 됐을 때였다. 스페인은 이 틈을 타 세계시장에서 와인산지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는데, 리오하와 카탈루냐 지방이 그 선두에 있었다.


    까스텔 델 레메이 전경/ 사진제공:와이넬

    코스터스 델 세그레 DO는 카탈루냐 지방에서도 내륙에 위치한다. 지중해에서 100km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과거에는 포도 재배가 비교적 쉬운 저지대에 밭을 조성했지만, 까스텔 델 레메이의 밭은 모두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밭의 고도가 해발500~760미터에 이른다. 서늘하고 물이 잘 빠진 곳에서 길러야 단맛과 신맛의 밸런스가 뛰어난 좋은 포도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밭을 모두 고도가 높은 곳으로 옮긴 것은 제 고집이었어요.'쿠지네가 설명을 이어갔다. 쿠지네의 아버지가 까스텔 델 레메이를 매입한 것은1982년이었다. 아버지는 사업가였는데 농기계를 많이 취급하다 보니 자연스레 쿠지네도 농업과 친근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당시 까스텔 델 레메이는 예전 명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침체된 상태였어요.아버지가 덜컥 와이너리를 매입했는데, 정작 와인 만들 사람은 없었죠.저도 와인을 전공하지 않았구요. 일단 수퍼마켓에 가서 이것저것 와인을 사와 맛부터 봤습니다.'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이었다. 까스텔 델 레메이를 시작으로 토마스 쿠지네, 카라 노르드(Cara Nord), 세르볼레스(Cervoles)등 와이너리를 네 개나 운영하는 와인메이커 맞나 싶었다. 하지만 이후 쿠지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을 들어보니 이 사람은 와인을 머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터뷰 중인 토마스 쿠지네/ 사진제공:와이넬

    '와인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포도가 만듭니다. 사람은 포도가 하는 말을 해석해줄 뿐이죠. 벌써 와인을 만든지35년째네요. 경험이 쌓일수록 포도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왜냐구요? 포도가 좋으면 와인은 거저 만들어지거든요(웃음).'

    그는 포도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끊이지 않고 실행 중이라고 했다. 같은 품종이라도 땅이 다르면 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고도가 불과 3미터만 차이가 나도 맛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게다가 포도는 심고 바로 이듬해부터 열매를 수확해 실험할 수 있는 식물이 아니어서 어려움도 많다. 10년은 기다려야 재대로 된 열매를 내놓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이 하는 모든 실험의 결과는 아마도 다음 세대에서 그 결실을 볼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코스터스 델 세그레 DO 지역은 카베르네 소비뇽 등 프랑스 품종과 국제 품종을 많이 기르던 곳이지만 가르나차와 카리냥 등 스페인 토착 품종의 재배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코스터스 델 세그레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지 묻자 쿠지네는 꾸준하고 일관된 품질이라고 답했다. 그는 특히 국제 품종과 스페인 품종을 블렌드할 때 다양한 장점이 있다며 일례로 마카베오와 국제 품종의 블렌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마카베오는 맛이 부드럽고 탄탄하며 보디감이 좋지만 향은 약한 편이죠.하지만 향이 풍부한 소비뇽 블랑이나 샤르도네를 섞으면 둘의 궁합이 아주 환상적이에요. 소비뇽 블랑과 샤르도네가 아로마를 담당하죠.'

    까스텔 델 레메이의 와인들/ 사진제공:와이넬

    까스텔 델 레메이의 와인 중에 고띰 블랑(Gotim Blanc)과 오다 블랑(Oda Blanc)이 바로 그런 와인이다. 마카베오에 소비뇽 블랑을 섞어 만든 고띰 블랑은 풍부한 과일향과 은은한 꽃향기가 느껴지는 상큼한 스타일이다. 마카베오와 샤르도네를 블렌드한 오다 블랑은 핵과류와 열대과일향이 진하고 오크 숙성에서 얻은 복합미도 훌륭하다. 긴 여운에서는 수밀도의 달콤함이 길게 이어진다.

    고띰은 카탈루냐 고어로 ‘포도’라는 뜻이고, 오다는 ‘낭송’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띰과 오다에는 레드 와인도 있다. 고띰 브루(Bru, 브루는 ‘어둡다’는 뜻)는 템프라니요, 가르나차,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시라 등을 블렌드한 와인이다. 과일향이 진하며 삼나무, 스모크 향 등이 어우러져 아로마가 복합적이다. 타닌이 부드러워 마시기에도 편하다. 오다는 메를로, 템프라니요, 카베르네 소비뇽을 섞어 만든 와인이다. 검게 익은 자두, 블랜 커런트의 향미가 풍부하고 클로버, 감초,바닐라 등 다양한 향이 복합미를 더한다. 구조감이 탄탄하고 여운이 길어 치즈나 육류 요리에 곁들이기 좋은 스타일이다.

    1780은 카베르네 소비뇽, 템프라니요,가르나차, 메를로, 시라를 블렌드해 만든 까스텔 델 레메이의 아이콘급 와인이다. 묵직한 보디감에서 피어나는 진한 과일향과 후추 같은 향신료향,다크초콜릿, 바이올렛 꽃향의 조화가 아름답다. 전 세계 유명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에 자주 등장할만큼 품질을 인정받는 와인이다.

    쿠지네는 코스터스 델 세그레 지역이야말로 스페인 농업의 현대화를 이끈 곳이라고 강조하며, 앞으로 DO 회장으로서 이곳의 와인을 전 세계에 활발하게 홍보할 계획이라고 했다.그 선두에는 까스텔 델 레메이가 있을 것이다. 와인은 자신을 만든 와인메이커를 닮을 때가 많다. 까스텔 델 레메이의 정직한 맛은 분명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이다.

    자료제공: 와인21, 와이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