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이집트 여행[5] 왕비의 계곡- 네페르타리와 네페르티티

    입력 : 2019.07.12 14:23

    왕비의 계곡이 있는 붉은 황토 산에도 어스름한 새벽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멤논의 거상이 있는 장제전을 출발하여 30분 정도 거리에 왕비의 계곡이 있다. 출발하기 전날 저녁에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개에게 줄 빵을 지참하여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계곡 입구에 도착하여서야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이집트는 들판에 야생 개들이 많았다. 버스가 하차한 지점에서 십여 미터 떨어진 언덕 중턱에 하얀 개 몇 마리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고대 이집트 유물인 석상처럼 우아한 모습으로 앉아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개들은 사람보다 훨씬 큰 몸체로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우리가 그들에게 관람의 대상이 되는 느낌이었다.

    개들의 모습 뒤로 산 중턱에는 여기저기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 그 불빛은 따스한 느낌과 몽환적인 느낌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이 느끼는 감정이라 더 강렬하였을 것이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은 현존하는 이집트 왕실의 왕족들이 굴을 파고 유물을 발굴하는 현장이다. 자신들의 조상들 묘지에서 오래전의 유물을 발굴하고 있었다.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이집트의 현실이었다. 기원전 3,000여 년부터 시작된 이들의 문화는 동양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놀랄 만큼 황홀하였다. 그 오랜 역사와 훌륭한 문화를 지니고 있으면서 현재까지 개발도상국인 이집트의 모습이 그들의 유물보다 더 놀라웠다.

    그 산자락 끝에 조성된 왕비의 묘지 중 대표적인 두 왕비의 묘지가 있다. 이집트가 자랑하는 아름다운 두 명의 여인이다. 이집트 왕실의 반항아 아멘호테프 4세(후일 아크나톤 왕)의 왕비인 네페르티티(제18왕조, BC1367년)와 람세스 2세의 왕비 네페르타리(제 19왕조, BC 1301~1233년)이다.

    이집트는 신들의 나라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 이전에 이집트 신화가 먼저 탄생하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기원은 이집트 신화로 시작된다. 이러한 공통점은 동양도 마찬가지여서 미의 여신 비너스처럼 동양 신화에도 미의 여신 서왕모가 있다. 인간 삶의 어디나 존재하는 미의 추구는 시간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이집트의 영웅인 람세스 2세도 네페르타리의 아름다움에 굴복하지 않았던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림이 아부심벨 네페르타리 신전에 부조로 조각되어있다.

    두 왕비의 묘지는 촬영도 가능했다. 가이드의 안내로는 자신이 그곳 관리인에게 촬영요금을 지불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규칙이라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몇 군데 묘지를 관람한 후에는 가이드의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묘지 입장 시 사진 촬영 금지라는 규칙이 있다. 관람객 중 원하는 사람만 추가로 요금을 지불하고 촬영을 할 수 있는데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던 그 제도가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관리인들은 어디에서 관람객을 관찰하고 있는지 사진을 찍으려 하면 번개처럼 나타나서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확인하자고 하였다. 불법 촬영 시에는 그날 찍은 사진을 다 지워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실제로 일행 중 한 명이 불법 촬영을 하다가 관리실로 가서 주의를 받고 오기도 하였다.
    ​십여 미터를 사이에 두고 두 왕비의 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역시 지하에 긴 굴을 뚫어 그 안쪽에 화려한 무덤을 조성하였다. 두 왕비의 묘지에 들어서던 순간의 놀라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색상을 보존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묘지를 나올 때까지 지속하였다. 이집트인들이 지니고 있는 미적인 감각은 놀라움 이전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림에 표현된 세밀한 묘사는 경이롭다는 말로도 그 느낌을 표현하기 어렵다. 최근에 다시 색을 칠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만큼 선명한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4,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덤 속에서 찬란한 색채를 유지하고 있는 벽화의 비법이 매우 궁금하였다. 그리스, 로마의 명화들인 프레스코화 비법이 이집트 벽화의 물감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지니고 있는 능력의 한계는 상상 이상의 감동을 부여하였고 그 느낌은 왕들의 계곡에서도 지속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가까운 곳에 자리한 두 곳의 벽화에서 나타나는 색채의 차이가 있었다. 연도별로 묘지를 조성하였으니 당연히 네페르타리의 묘지가 아래쪽이라 더 선명한 색채를 지녔어야 하는데 네페르티티의 무덤 속 벽화의 색이 훨씬 더 선명하였다. 네페르타리 무덤 발굴 당시 물속에 잠겼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경사진 언덕 아래쪽이라 침수되었을 것이다.

    네프라티티의 무덤에는 벽화와는 다른 작은 물체를 유리관에 넣어 진열하고 있다. 3세경 죽음을 맞이한 왕자의 유골이다. 찬란하고 화려한 삶을 살다간 왕비의 생애에도 이별의 아픔과 진한 모성이 함께 하고 있었다. 모든 삶이 맞이하는 이별의 고통은 어디나 존재하고 있음을 오래전의 유물에서 알아간다.

    거리와 시간, 장소와 관계없이 인류가 지닌 위대한 흔적들에서 알아가는 삶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두 왕비의 묘지 속 벽화의 찬란한 색채가 그녀들이 지닌 아름다움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경이를 넘어선 인간의 감정이 지니고 있는 동질감의 공감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