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번째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9곳’ 답사기- 5.도산서원(2)

    입력 : 2019.09.11 15:33

    다섯 번째 서원,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

    퇴계는 모든 사물에 이름을 붙여 의미를 부여하기를 좋아한 듯하다. 앞마당의 우물은 열정이라 하였고, 서당 앞마당 샘은 ‘몽매한 제자를 이끈다’는 뜻으로 몽천(蒙泉)이라 하였으며 연꽃을 심은 작은 연못은 정우당(淨友塘), 매화나 대나무, 국화, 소나무 등을 심은 화단은 절우사(節友社)라고 하는 등 나무 하나 풀 한 포기에도 세심한 배려를 베풀었다.
    도산서당 건너편 기숙사 농운정사(隴雲精舍). 유생들이 기거하는 기숙사 성격의 건물인데 퇴계가 직접 工자 형태로 설계하였다고 하며, 이는 工夫(공부)한다는 의미라고 하니 도산서당에 기울인 퇴계의 열정과 집념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이 기숙사가 좁아서인지 나중에 정사성을 입학시키면서 그 아버지가 건물을 지어 기부하니 담 밖의 역락서재(亦樂書齋)이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이렇게 퇴계 생존 시 운영했던 도산서당과 기숙사가 현재 서원의 아래쪽 입구 부분에 자리 잡고 있으며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왼쪽으로는 상고직사와 하고직사, 그리고 근래에 지은 유물관등이 있으나 서원의 핵심은 강학공간인 전교당과 동재, 서재이며 그 뒤편의 사당 즉 제향공간이다.

    도산서원은 전체적으로 오르막 지형인지라 도산서당을 지나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면 서원 출입문인 진도문(進道門)이 나오는데 그 좌우로는 책을 보관하는 동.서 광명실(光明室)이 있다.

    진도문(進道門)을 들어서면 중앙에는 강당인 전교당(典敎堂)이 있으며 원생들 숙소인 동재 박약재(博約齋)와 서재 홍의재(弘毅齋)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동재가 선배 원생들 숙소이다.

    정면의 전교당(典敎堂)(보물 제210호)은 강학 공간과 원장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재 뒤편으로는 책판을 보관하는 장판각(藏板閣)이 있으니 이 공간을 강학 공간이라고 한다.

    서원의 중심인 강당 전교당(典敎堂 : 보물 제210호). 1574년(선조 7)에 건립된 정면 4칸의 건물로 흔치 않은 짝수 칸이다. 단칸방은 원장실이며 세 칸 마루가 강당인데 정면으로는 한석봉 친필의 사액 현판이 걸려있고 마루 안쪽으로는 典敎堂 현판을 걸었다. 답사모임 회원들이 답사 중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강당의 동쪽에는 각종 문집의 목판들을 보관하던 장판각(藏板閣)이 있는데 현재 보관 품목들은 영구시설로 옮겨가 비어 있으나 내부구조를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강당 뒤편은 제향 공간인 사당 상덕사(尙德祠 : 보물 제211호)인데 태극무늬가 그려진 삼문을 지나야 한다. 사당의 담은 원래 흙담이었으나 성역화 작업 시 돌담장으로 쌓았다고 하는데 사당과 삼문, 담장을 아울러서 보물로 지정하였다. 사당에는 퇴계 선생과 제자 월천 조목(趙穆)의 위패를 모셔 매년 봄, 가을로 향사를 지낸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율곡 이이와 더불어 한국 성리학의 대표적인 학자로 이언적의 학맥을 이어받아 영남과 조선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추앙받는 퇴계 이황은 동서 분당 때 동인으로 분류되었지만 분당 이전에 돌아갔기에 당파에 소속되지는 않았다.

    27세에 첫 부인을 잃고 정신질환이 있는 권질의 딸을 받아들여 재혼하였지만 극진히 아낀 것으로 알려졌으며 첩의 자식 미래를 살펴 호적에 적서(嫡庶)를 기록하지 말도록 하였다고 한다.

    단양 군수 때 만난 기생 두향이는 그가 떠난 후 절개를 지키다가 부음(訃音)을 듣고는 충주 강선대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였는데 지금도 매년 퇴계 제향 후 두향의 묘소에 잔을 올린다고 하니 숨을 거두기 전 ‘저 매화에 물 주거라’는 유언이 두향이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는 세간의 평(評)이다.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퇴계 태실, 퇴계가 살았던 퇴계 종택, 그리고 퇴계가 묻힌 퇴계 묘소까지 있으니 하루 날 잡아 둘러볼 만하다.

    퇴계가 태어난 태실,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老松亭 고택은 퇴계의 할아버지 이계양이 지은 곳인데 손주를 받으려고 안채 마당 한가운데 튀어나온 온돌방을 들였다고 한다. 이계양의 맏아들 이식의 일곱째 아들이 퇴계 李滉이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내 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 https://band.us/@4560dap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