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21 / 브랜드스토리] 말벡이 보여주는 순수한 테루아의 맛, 조잘

  • 시니어 조선

    입력 : 2019.10.24 14:31

    아르헨티나 멘도자 지방은 전 세계에서 말벡 와인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다. 멘도자는 무려 1,578 km2나 되는 드넓은 지역이다. 이렇게 넓은 땅의 토양과 기후가 과연 균일할까? 현재 아르헨티나에서는 멘도자의 하위지역을 GI(Geographical Indication)로 규정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새로운 GI 승인에 관한 소식이 해외뉴스를 통해 꾸준히 올라오는 것을 보면 아르헨티나 GI 시스템이 확정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멘도자의 하위 와인산지들/ 사진제공=와인21

    하지만 GI 승인과는 별개로 예전부터 와인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코 밸리(Uco Valley)를 멘도자에서 가장 뛰어난 산지로 꼽는 의견이 많았다. 멘도자 안에서도 가장 고도가 높은 이곳은(해발 860~1610m) 일교차가 커서 당도와 산도의 밸런스가 탁월한 포도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우코 밸리는 다시 세 곳의 하위 지역으로 나뉘는데, 그중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곳이 투푼가토(Tupungato)다. 그리고 투푼가토 안에 자리한 괄타야리(Gualtallary)는 독특한 테루아 때문에 우코 밸리 안에서도 보석 같은 와인산지라 할 수 있다.

    괄타야리는 해발 1080~2100m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연평균 강우량이 400mm가 채 되지 않아 사막처럼 건조한 곳이다. 이곳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주된 이유는 토양이다. 모래와 점토로 이루어진 괄타야리의 흙에는 굵은 흰색 돌이 꾹꾹 박혀 있다. 석회질에 싸인 화강암과 부서진 석회암 덩어리들이다.

    괄타야리의 토양 앞에 선 조잘의 와인메이커 후안 미첼리니/ 사진제공=와인21

    “괄타야리 흙에는 영양분이 너무 없어요. 고도가 높으니 태양은 더 뜨겁죠. 그래서 이곳 포도는 송이가 아주 작아요. 강렬한 햇살을 견디기 위해 포도껍질도 두껍죠. 괄타야리에서 자란 말벡은 다른 아르헨티나 말벡 와인처럼 부드럽지 않습니다. 타닌에 날카로운 맛이 살아 있어요.” 후안 미첼리니(Juan Michelini)가 설명해준 괄타야리의 특장점이다.

    조잘(Zorzal)의 시작은 2008년 미첼리니 집안의 삼형제가 와인을 만들자고 뭉치면서 시작됐다. 때마침 아르헨티나 와인에 깊은 관심을 갖고 파트너를 찾고 있던 캐나다의 투자사가 재정적인 지원을 거들며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2008년만 하더라도 괄타야리는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묵직하고 오크향이 진하게 감도는 천편일률적인 말벡 와인이 판을 칠 때였다. 미첼리니 삼형제는 괄타야리라면 말백을 통해 테루아의 순수한 맛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지금 그 확신은 현실이 됐다.

    국내에 수입되는 조잘 와인은 네 가지다. 그중 세 가지는 100% 말벡 와인이고, 한 가지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말벡이 필드 블렌드(field blend)된 와인이다. 세 가지 말벡 와인은 양조 과정이 달라 각기 다른 개성을 보여준다.

    국내에 수입되는 조잘 와인들/ 사진제공=와인21

    떼루아 우니코 말벡(Terroir Unico Malbec) 2017
    세 번에 걸쳐 수확한 말벡으로 만든 와인이다. 포도가 막 익었을 때, 포도가 적당히 익었을 때, 그리고 약간 과숙했을 때 수확한다. 이렇게 수확 시기를 달리하면 산뜻한 신맛과 잘 익은 과일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확 단계가 다른 포도는 포도에 자생한 천연효모를 이용해 각기 따로 발효된다. 발효가 끝난 뒤 블렌딩이 되고 콘크리트 탱크에서 숙성을 거친다.

    이 와인의 스타일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순수함’이다. 신선한 베리향과 미네랄향의 조화가 아름답고, 탄탄하고 매끈한 질감이 매력적이다. 오크를 전혀 쓰지 않아 말벡의 캐릭터가 정직하게 드러나 있고 괄타야리 특유의 테루아가 주는 느낌이 잘 살아 있다.

    그랑 떼루아 말벡(Gran Terroir Malbec) 2016
    콘크리트 탱크와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에 나뉘어 42일간 침용을 거친 뒤 발효된다. 이후 3~4회 이용한 중고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13개월간 숙성을 거친다.

    이 와인은 ‘정교한 복합미’라고 정의하고 싶다. 잘 익은 베리향이 후추, 마른 허브 등 부드러운 향신료향과 어우러져 있다. 향미의 응축미가 뛰어나고 타닌이 정교하다. 여운에서는 미네랄향의 은은함이 길게 이어진다.

    에고(Eggo) 2017
    이 와인의 이름이 에고인 것은 발효와 숙성이 모두 콘크리트 에그(달걀 모양의 탱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에그에 와인을 담으면 그 안에서 와인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따라서 와인의 온도 제어도 효과적이고, 포도껍질이나 이스트 앙금과 와인의 접촉이 더 활발하기 때문에 색이 진하고 질감이 매우 부드러운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이 와인의 키워드는 ‘소프트 밸런스’라 할 수 있겠다. 크림처럼 매끈한 질감 속에서 농익은 과일향과 은은한 꽃향이 끊임없이 피어오른다. 순수함, 정교함, 우아함 이 부드러운 포장지에 싸여 있는 느낌이다. 여운에서는 신선한 베리향과 향신료향이 길게 이어진다.

    필드 블렌드(Field Blend) 2013
    카베르네 소비뇽 70%와 말벡 30%를 밭에서부터 함께 수확해 함께 발효하고 숙성시켜 만든 와인이다. 말벡과 카베르네 소비뇽의 익는 시기가 다를텐데 어떻게 필드 블렌드가 가능한지 묻자 ‘카베르네 소비뇽의 수확시기에 맞추기 때문에 말벡은 살짝 과숙된 상태일 때가 많다’는 것이 후안 미첼리니의 답변이었다. 이렇게 두 품종이 시기적절하게 잘 익어야만 만들 수 있는 와인이어서 매년 생산되지는 않는다. 품종의 비율 또한 늘 7:3은 아니다. 2010년의 경우 카베르네 소비뇽과 말벡이 5:5로 블렌드 됐었다고 한다. 발효는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에서 이루어지며, 숙성은 한 번 이용한 오크 캐스크(70% 프렌치, 30% 아메리칸)에서 18~20개월간 진행된다.

    이 와인의 대명사는 ‘세련된 복합미’가 아닐까 싶다. 다양한 베리류의 과일이 다채롭게 섞인 듯한 향미가 달콤하기 그지없다. 여기에 카베르네 소비뇽 특유의 풋고추 또는 홍고추 같은 향신료 향이 복합미와 세련미를 더한다. 구조감이 탄탄하고, 산미와 과일향의 밸런스 또한 훌륭하다.

    조잘의 떼루아 우니코 샤르도네/ 사진제공=와인21

    떼루아 우니코 샤르도네(Terroir Unico Chardonnay) 2019
    국내에 수입되는 와인은 아니지만 금번 한국 방문시 후안 미첼리니가 손수 가져온 와인이다. 향을 맡으니 상큼한 사과, 잘 익은 레몬 등 신선한 과일향과 은은한 미네랄향이 우아하게 올라왔다. 보디감은 중간 정도였지만 산미가 좋아 와인이 무척 경쾌했다. 오크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 물어보니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만 이용해 발효하고 숙성한 와인이었다. 향미는 마치 샤블리를 연상시키지만 적당한 보디감과 매끈한 질감은 부르고뉴 샤르도네를 닮았다. 정교함과 신선함이 돋보이는 스타일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조잘이 무슨 뜻인지 묻자 후안은 ‘새’라고 답했다 (나중에 스페인어 사전을 찾아보니 개똥지빠귀라는 새였다). 괄타야리에 많이 사는 새인데,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가수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의 별명이었다고도 한다. 이 가수의 노래를 찾아 들어보니 맑고 청량하면서도 힘있는 음색이 조잘의 와인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잘은 그런 말벡을 만든다. 이제껏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그러나 아르헨티나 괄타야리의 개성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와인이다.

    김상미 칼럼니스트


    *자료 제공: 와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