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21 / 브랜드스토리] 포르투갈 와인의 산증인, 호세 마리아 다 폰세카

  • 시니어 조선

    입력 : 2019.11.26 17:45

    호세 마리아 폰세카(Jose Maria da Fonseca)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랜서스(Lancers)라는 가볍고 달콤한 스파클링 와인 때문이었다. 2차 대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들이 자국으로 돌아간 뒤 유럽에서 맛본 랜서스의 맛을 잊지 못해 꾸준히 이 와인을 찾았는데, 이를 계기로 호세 마리아 폰세카는 랜서스로 미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랜서스 스파클링 와인/ 사진제공=와인 21

    하지만 호세 마리아 폰세카에게 랜서스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1834년에 설립된 이 와이너리는 포르투갈 와인의 산증인이라 평가해도 과하지 않을만큼 전통과 실력을 갖춘 곳이다. 2019년 11월 21일 호세 마리아 폰세카의 오너 와인메이커 도밍구스 소아레스 프랑쿠(Domingos Soares Franco)가 방한했다. 그를 만나 포르투갈의 와인 역사와 호세 마리아 폰세카의 전통이 담긴 와인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호세 마리아 폰세카는 도밍구스의 6대조 할아버지다. 그가 와이너리를 설립한 후 지금까지 호세 마리아 폰세카는 가족경영으로 이어져 왔다. 6대손은 도밍구스와 형 안토니우인데, 안토니우는 경영 전반을 도밍구스는 와인 양조를 책임지고 있다. 안토니우와 도밍구스 형제의 자녀 4명도 재무, 마케팅, 와인 양조 등에 참여하며 7대손으로서 와이너리를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호세 마리아 폰세카의 오너 와인메이커 도밍구스 소아레스 프랑쿠/ 사진제공=와인 21

    호세 마리아 폰세카는 포르투갈 전역에 걸쳐 지역별 전통과 특징이 잘 살아 있는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와인으로는 세투발(Setubal) 반도에서 생산되는 모스카텔(Moscatel) 와인과 알렌테주(Alentejo) 지역에서 생산되는 암포라 와인 호세 드 수사(Jose de Sousa)를 꼽을 수 있다.

    세투발 반도는 포르투갈 수도인 리스본에서 남쪽으로 약 50km 떨어진 반도 지역이다. 이곳에서 모스카텔 와인이 언제부터 생산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기업 단위로 모스카텔을 만든 것은 호세 마리아 폰세카가 처음이다. 모스카텔 와인은 주정강화 와인이다. 와인을 만드는 주품종은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Muscat of Alexandria)다. 포트 와인처럼 이 와인도 머스캣 포도를 발효하다 도중에 77% 알코올의 증류주를 부어 잔당을 남기고 주정을 강화해 만든다.

    배 밑창에 실려 적도를 지나며 1년간 열기로 숙성된 토르나 비아젬 모스카텔 와인 배럴/ 사진제공=와인 21

    창립자인 호세 마리아 다 폰세카는 모스카텔 드 세투발 와인의 판로 개척을 위해 신대륙으로 출항하는 와인에 모스카텔 와인을 몇 배럴 실어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팔리지 않고 남아서 돌아온 배럴의 와인을 맛보니 일반 모스카텔 와인보다 훨씬 더 좋았다. 배가 세계 곳곳을 항해하며 적도를 지나는 것은 약 4-5번. 이때 배 밑창에 실려 적당히 흔들리며 뜨거운 온도에 숙성된 모스카텔 와인이 기가 막힌 복합미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와인은 다른 모스카텔 와인과 차별화하기 위해 토르나 비아젬(Torna Viagem)이라고 부른다. 세계를 한 바퀴 돌고 온 와인이라는 뜻이다.

    이 전통을 살려 안토니우와 도밍구스 형제는 지금도 매년 해군 함정이 1년간의 여정으로 출항할 때마다 모스카텔 드 세투발 와인을 실어보낸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 와인을 바로 출시하지 않는다. 항해를 마치고 온 와인이 와이너리 안에서 몇 십년 더 숙성되어야 훨씬 더 맛있게 변모하기 때문이다. 도밍구스에 따르면 6대에 생산된 토르나 비아젬 와인은 자신들이 사망하고 난 뒤 7대손이 출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후손에게 물려주는 진귀한 보물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호세 마리아 폰세카의 모스카텔 드 세투발 와인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하나씩 짚어보자.

    호세 마리아 폰세카의 모스카텔 드 세투발 와인들/ 사진제공=와인 21

    알램브리 모스카텔 드 세투발 (Alambre Moscatel de Setubal)

    호세 마리아 폰세카의 대표적인 모스카텔 드 세투발 와인이다. 매혹적인 오렌지색을 띄며 오렌지 마말레이드, 살구, 꿀향 등이 풍부하게 피어오른다. 달콤한 맛이 많지만 신맛이 강해 와인이 경쾌하다.

    알램브리 모스카텔 로쏘 드 세투발 (Alambre Moscatel de Roxo de Setubal)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의 변종인 모스카텔 로쏘로 만든 와인이다. 모스카텔 로쏘는 껍질이 붉은 머스캣 품종인데, 이 품종이 포르투갈에 전파된 18세기 말엽에는 머스캣 로제 아 프티 그랭(Muscat Rose a Petits Grains)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200년이 지나면서 이 품종은 세투발의 환경에 완벽히 적응해 원래 품종과는 여러 면에서 완전히 달라진 상태다. 도밍구스는 이제 모스카텔 로쏘를 별개의 품종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모스카텔 로쏘 드 세투발은 붉은 빛이 살짝 감도는 황금빛을 띄며 귤, 라임, 살구, 멜론, 꿀, 카라멜 등 향미가 다채롭다. 발효시 껍질과 접촉되는 시간이 비교적 길기 때문에 병 안에 침전물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모스카텔 드 세투발 와인을 숙성시키는 배럴룸/ 사진제공=와인 21

    프리바다 모스카텔 드 세투발 아르마냑/코냑(Privada Moscatel de Setubal Armanac/Cognac) 1998

    도밍구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모스카텔 드 세투발의 다양화를 계획했다. 이때 생각한 것이 발효 중단시 증류주로 코냑이나 아르마냑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주정 강화용 증류주는 유럽 내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허용되므로 세계적으로 가장 맛있는 브랜디로 꼽히는 코냑이나 아르마냑을 써서 모스카텔 드 세투발의 품질을 높혀 보기로 한 것이다. 사용되는 코냑과 아르마냑은 알코올이 77%로 높으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브랜디와는 다르다. 일반적인 코냑과 아르마냑은 77%로 증류한 뒤 물을 섞어 알코올을 낮추고 오크 숙성을 통해 향미를 발전시킨 형태다

    도밍구스는 모스카텔 드 세투발 와인을 아르마냑과 코냑으로 주정 강화한 뒤 20년을 더 숙성시켰다. 둘의 차이를 묻자 ‘아르마냑으로 주정을 강화한 와인은 과일향이 풍부하고, 코냑으로 강화한 와인은 시가나 먼지 등 복합미 면에서 탁월하다’고 답했다. 20년을 숙성시킨 와인이지만 이 와인들의 맛을 보면 마른 과일, 견과, 꿀, 캐러멜 등 달콤한 향미가 가득하고 신맛의 밸런스가 좋아 20년이나 되는 긴 숙성기간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맛이 신선하다. 모스카텔 드 세투발 코냑은 2019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베스트 오브 2019’를 수상하기도 했다.

    모스카텔 드 세투발 와인은 디저트 와인으로 워낙 유명하지만 식전주로도 훌륭하다. 식전주로 마실 때는 10도 정도로 차게, 디저트 와인으로는 16도 정도로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호세 마리아 폰세카의 트릴로지아/ 사진제공=와인 21

    트릴로지아

    모스카텔 드 세투발 와인은 무한에 가까운 숙성잠재력을 자랑한다. 호세 마리아 폰세카는 이런 특징을 이용해 한정된 수량의 명품 와인도 생산하고 있다. 바로 트릴로지아(Trilogia)가 그것이다. 이 와인은 숙성 중인 모스카텔 드 세투발 와인 가운데 특별히 뛰어난 빈티지 세 가지를 블렌드해 만든 와인이다. 현재 시판 중인 트릴로지아는 1900년산 7.5%, 1934년산 7.5%, 1965년산 85%를 섞은 것으로 13,926 병만 한정 생산했다. 진한 호박색을 띄며 마른 과일의 달콤함과 함께 꿀향과 아몬드, 헤이즐넛 등 견과류 향이 뛰어난 복합미를 보여준다. 브랜디처럼 시가와 함께 즐기기 좋은 스타일이며, 디저트 와인으로 마실 때는 초콜릿 케이크에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호세 마리아 폰세카의 페리퀴타 시리즈 와인들/ 사진제공=와인 21

    호세 마리아 폰세카는 레드 와인 생산자로도 긴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페리퀴타 시리즈는 포르투갈 최초로 와이너리에서 병입한 레드 와인으로 그 시작이 무려 18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리퀴타 오리지널 은 카스텔라웅(Castelao), 트린카데이라(Trincadeira), 아라고네즈(Aragonez, Alicante Bouschet와 동일 품종)를 블렌드해 만들며 6개월간 오크 숙성 후 출시된다. 과일향이 신선하고 타닌이 부드러워 마시기 편한 스타일이다.

    페리퀴타 레제르바는 카스텔라웅, 투리가 나시오날(Touriga Nacional), 투리가 프란세스카(Touriga Francesca)로 만들며 8개월간 오크 숙성 후 출시된다. 붉은 베리와 검은 베리의 향미가 뒤섞여 아로마가 다채롭고 오크 숙성으로 얻은 바닐라향이 은은하게 복합미를 더한다.

    페리퀴타 수페르요르(Superyor)는 페리퀴타 시리즈 가운데  프리미엄급이다. 카스텔라웅, 카베르네 소비뇽, 틴타 프란시스카(Tinta Francisca)를 섞어 만들며 10개월간 새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숙성시킨 뒤 출시된다. 수페르요르는 포도 품질이 좋은 해에만 만들기 때문에 2008, 2014, 2015, 2017년 빈티지만 생산됐다. 도밍구스에 따르면 2019년도 수확이 좋아 출시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구조감이 좋고 질감이 매끄러우며 체리, 라즈베리 등 과일향 또한 풍부하다. 복합미가 뛰어나고 우아한 와인이다.

    호세 드 수사 와인을 발효하는 거대한 암포라들/ 사진제공=와인 21

    1986년 호세 마리아 폰세카는 포르투갈 내륙에 위치한 알렌테조 지방의 호세 드 수사 로사도 페르난데스(Jose de Sousa Rosado Fernandes) 와이너리를 매입했다. 1878년에 설립된 이 와이너리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활발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었다. 도밍구스에 따르면 와이너리를 매입하고 들어가 보니 예전부터 이용하던 커다란 암포라가 10개 있었다고 한다. 이에 도밍구스는 2000년 전 로마에서 만들던 고전적인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암포라를 추가 주문해 현재 암포라 숫자는 120개로 늘어난 상태다.

    도밍구스에게 암포라에서 만들면 와인맛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자 ‘와인에 향신료향과 흙향이 더해지며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4차원의 맛이 느껴진다’고 답했다. 암포라 와인은 처음부터 다르게 만든다. 수확한 포도는 반드시 옛날 방식대로 발로 밟아 으깬다. 기계를 사용하면 으깨지지 않은 포도가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씨가 깨져 쓴즙이 나올 수도 있지만, 사람이 밟으면 인체의 감각으로 느끼기 때문에 모든 포도알을 완벽하고 부드럽게 으깰 수 있고 씨도 터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호세 드 수사와 호세 드 수사 마요르/ 사진제공=와인 21

    호세 드 수사 와이너리에서는 두 가지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데, 모두 그랑 누아(Grand Noir) 약 60%에 트린카데이라와 아라고네즈를 약 20%씩 섞어 만든다. 밟아서 으깬 포도즙은 1600리터 용량의 암포라에서 약 4주간 침용과 발효 기간을 거치며, 암포라의 특성상 온도 조절이 쉽지 않아 암포라 겉면에 계속 차가운 물을 뿌리면서 온도를 낮춘다고 한다. 발효가 끝나면 호세 드 수사는 9개월간 커다란 미국산과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호세 드 수사 마요르(Mayor) 와인은 9개월간 커다란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친 뒤 출시된다.

    몇 년 전부터 포르투갈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부분 포트 와인과 가성비 좋은 일반 와인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호세 마리아 폰세카 와인은 다르다. 이들의 와인에는 포르투갈 와인의 역사가 담겨 있다. 호세 마리아 폰세카의 와인에서는 정통성이 주는 깊은 맛이 느껴진다.

    와인 21/ 김상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