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이집트 여행기[9] 이집트 왕실의 반항아 - 아케나톤과 그의 아내 네페르티티

    입력 : 2019.12.03 10:02

    이집트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나일강을 따라가는 여정의 마지막 지점은 역시 카이로였다. 카이로에서 시작하여 카이로로 끝나는 여정은 나일강이 중심이었다. 이집트는 긴 사막 길도 그들의 유적으로 남은 특이한 나라였다. 사막의 긴 길을 달리다 멈추면 흙먼지 풀풀 날리는 천막 같은 휴게소 위에는 언제나 우뚝 솟아있는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산의 모습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그 산의 봉우리들은 모두 그들의 유물을 닮아있었다. 언뜻 올려다보면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고, 다시 또 바라보면 그들이 만들어놓은 부조의 형태가 보이기도 하였다.

    이집트 여행에서 기억 속에 선명하게 자리하는 것은 먹을거리도 아니었고 시선을 끄는 풍광도 아니었다. 오천 년간 이어진 그들 삶이 남기고 간 시간의 흔적이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들이 남겨놓은 방대한 유물이다. 카이로의 고고학 박물관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가늠하기 어려운 문명의 흔적으로 가득하였다. 현재 이집트는 카이로 외곽에 22세기를 시작하는 박물관을 건축 중이다. 끝이 보이지 않게 넓은 건축현장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그 장소가 이집트인의 미래를 향한 희망이 되어주지 않을지 생각하였다. 개발도상국인 나라에서 그 장소는 그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줄 수 있는 반드시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이다. 가이드는 박물관이 완성되면 다시 이집트를 찾아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천정이 높은 박물관은 입구부터 시선을 끌기 시작하였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통일을 상징하는 연못부터 시작이 된다. 실내 전시장에는 특이한 모습을 한 동상들이 가득하였다. 그중 박물관 천정에 닿을 듯 우뚝 솟은 높이 396cm의 아케나톤 상은 강렬하게 시선을 끌고 있었다. 카르낙의 아멘신전 터에서 발견된 이 거상은 박물관에 전시된 거상 중 가장 눈에 뜨이는 상이다.

    제 18왕조 제왕들은 자신들을 우아하고 강력한 이상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아케나톤 상은 두꺼운 입술에 뾰족한 턱과 가는 눈, 홀쭉한 뺨의 얼굴 모습을 지닌 젊은 왕의 모습이다. 이 거대한 상 중심부인 배 부분은 항아리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룩소르의 묘지들을 돌아보면서 기억에 남은 왕비 네페르티티의 남편인 아케나톤 상이다.

    이들 부부는 신화를 닮은 이집트 역사 중에서도 귀를 기울이게 하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네페르티티가 이웃나라 왕녀로 이집트로 오게 된 사연 역시 특이하였으나, 아케나톤이 네페르티티를 왕비로 선택한 이야기도 거상의 형태만큼 특별하였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왕실의 근친상관은 왕실역사에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집트도 그 역사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타투게파는 아케나톤의 아버지 아멘호테프 3세가 미탄니 왕국에서 막대한 황금을 주고 데려온 소녀이다. 타투게파가 후일 아케나톤 왕의 왕비가 된 네페르티티(찾아온 미녀)이다. 네페르티티는 후세사람들이 손꼽는 이집트 미녀인 두 명의 여인 중 한 명이다.

    그녀가 이집트로 오던 때가 15세로 이미 아멘호테프는 50대였다. 바라고 바라던 소녀가 이집트에 왔던 시기에 아멘호테프는 치조농루를 앓고 있어 그녀를 바라만 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때 네페르티티는 17세였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케나톤이 왕으로 등극을 한다. 왕으로 등극한 그는 아버지의 비인 네페르티티를 왕비로 선택한다. 아케나톤은 네페르티티를 깊이 사랑하여 많은 후궁을 두었던 아버지와는 달리 주변에 여자를 두는 일 없이 말카타 왕궁에서 왕비인 네페르티티만을 사랑하며 세 딸을 두었다. 후일 아케나톤은 막내딸을 자신의 비로 선택하여 네페르티티를 경악하게 한다.

    왕으로 등극한 아케나톤은 이집트 전체를 뒤흔드는 종교개혁을 시작한다. 부왕인 아멘호테프 3세 때부터 아멘라 신관단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더구나 미탄니 왕국에서 타투게파를 데려온 것이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설도 남겨져 있다. 여행을 좋아하던 아멘호테프는 왕자시절에 미탄니 왕국에 여행을 갔다가 타투게파를 보고 연모하였다는 내용이다.

    아케나톤은 아멘 라 신이 국가의 최고신으로 숭배되던 다신교 시대에 아텐 신을 절대신으로 하는 일신교로 개혁을 단행하였으며 테베에서 이동하여 새로운 지역에 이상 도시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새 수도에 붙여진 이름이 ‘아텐의 지평선’이라는 뜻의 ‘아케트 아덴'으로 이곳에 지어진 궁전이 말카타 왕궁이다. 그러나 아케나톤 왕의 종교개혁은 실패하고 왕의 사후 투탕카멘이 즉위한다. 투탕카멘 즉위 2년 다시 수도는 테베가 되었다.

    세계가 모두 다신교이던 시대에 유일신의 종교로 개혁을 시도하였다는 사실은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결국, 실패로 끝나기는 하였으나 그런 의미에서 역사학자들은 아케나톤을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왕으로 지목한다. 또 다른 사실로는 그의 거상에서 나타나는 머리와 배의 이상이 현대의학으로 보면 뇌수종이라는 병으로 병원균이 머리에 침투하여 이런 특별한 발상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다. 모든 역사에 남겨진 이야기들은 추정일 뿐으로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은 그러한 의미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