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나만의 색을 찾아 떠나는 여행

    입력 : 2019.12.13 13:13

    심심했다. 창밖엔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거실은 적막했다. 라디오를 켜자 애잔한 선율이 흘러나온다. ‘그럼, 그렇지. 비 오는 날엔 잔잔한 선율이 제격이지.’ 그런데 ‘저 노래 제목이 뭐지?’ 익숙한 노래인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알 듯 말 듯 머릿속이 엉켜 헤매는데 그런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신청곡이 흘러나온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아~~~’ 내가 나를 모르는데? 맞다. 60이 넘도록 나는 나를 모르고 살았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뭔지, 내가 어울리는 게 뭔지….

    얼마 전 40년 가까운 직장 생활을 울고 웃고 했던 친구들과 모임이 있었다. 얼굴이나 보고 살자고 한 달에 한 번 모임이다.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에 꽃을 피우고 점심을 먹고 남산 산책을 나섰다. 단풍이 절정이라 자연히 남산 둘레길로 이어진 것이다. 걸으면서 이야기에 정신이 팔리고 고운 단풍 구경까지 해야 하니 발걸음은 저절로 느려지고 그렇게 걷다 보니 내가 제일 뒤처지고 말았다. 친구들보다 감상적이고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늘 이런 일을 겪게 된다.

    다시 발걸음을 빨리하며 걷는데 친구들 옷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 들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친구들을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H야 직장생활 내내 우릴 곤혹스럽게 했던 차림새는 그렇다 쳐도 말이다. 예쁜 것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K도, 늘 단정하고 ‘부티’ 나던 H의 차림도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도대체 직장 생활할 때 기품 있던 그녀들은 어디로 갔는지 머리는 산발이고…. 가끔 만나는 동창들과 비교하면 언제부터인가 그녀들이 더 아름답고 더 지적으로 보인다.

    나는 그것을 오랜 직장생활을 끝내고 확 풀어져버린 옷차림 탓이라 생각했다. 직장 생활하는 동안에는 정장 차림이 주류였기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대충 단정해 보였다. 퇴직하고 더 이상 정장이라든가 그에 가까운 차림에서 벗어나고 보니 자기가 어떤 차림을 해야 돋보이는 알지 못한 채 좋아하는 것, 눈으로 봤을 때 예쁜 것을 입기 시작했는데 그게 오늘처럼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러니 나라고 다르겠는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퇴직 후, 서울시가 주축이 된 ‘50 플러스’에 다니기 시작했다. 사진 찍는 법도 배우고, 글 쓰는 법도 배우고, 서울 곳곳에 있는 둘레길 산책도 다녔다. 어느 날, 성북센터에서 ‘이미지 메이킹으로 인생 후반 매력 더하기’ 강좌가 열린다는 공지가 떴다. 이 나이에 매력을 더해서 뭘 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었어도 이왕이면 매력적인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점점 자라났다. ‘내가 나를 모르는’ 나나 친구들이 좀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그런 걸 배운다는 게 좀 어색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친구 한 사람을 졸라 같이 하기로 하고 했다.

    나도 가을이면 트렌치코트를 입고 머리칼과 스카프를 휘날리고 싶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이 나오면 얼마나 멋지게 보이던지…. 귀걸이 목걸이를 근사하게 하고 동창 모임에 나가고 싶었다. 검은 머리는 탁해 보인다는 동창들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살짝 짙은 갈색으로 물을 들였다. 어떻게든 작은 키를 크게 보이고자 높은 구두를 평생 신으면서 엄지발가락이 튀어나오는 무지외반증으로 고생을 하기도 했다. 피부가 검으니 흑인처럼 화려한 색이 맞을 거로 생각했다. 이런 생각들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내가 나를 몰라도 너무도 몰랐다. 이랬으니 장롱 속엔 사 놓고도 몇 번 입지 않은 옷들이 걸려 있었다. 심하면 사놓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도 있었다.

    급속히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스카프도 귀걸이도 목걸이도 다 집어 던져야 했다. 내 얼굴형으로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것들이었다. 나의 주조색은 검정색이었다. 나는 검은색을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기피했다. 피부가 더 어두워 보일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나의 색은 모든 색에 검정이 섞인 이차‧삼차색이었다. 그러니 제일 먼저 머리 색깔이 도마 위에 올랐다. 검은색이 어울리는 사람이라 머리 염색을 다시 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겨울 색이란 걸 알고 있던 거다. 그래서 옷 입을 때 이 겨울 색으로 입었다. 자기 색깔을 찾는 퍼스널 검사에서도 겨울 색으로 나온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무지외반증을 만든 굽 높은 구두는 나하곤 상관이 없었다. 놀라운 일은 작은 키라도 내가 팔등신이라는 거다. 그러니 높은 구두는 처음부터 필요 없었던 사람이었다.

    모두 검은색을 멋쟁이 색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 메이킹에 그녀도 날씬해 보이고 멋쟁이 색이라고 하는 검은색으로 옷을 입던가 단색 위주로 옷을 입고 다녔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나풀나풀하는 꽃무늬 원피스가 그녀에게 가장 어울리는 스타일이었다. 또 어떤 이는 여름 색인 줄 알고 여름 색을 주로 입었는데, 은은한 가을 색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가을 색으로 이미지 변신을 하고 나타난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의 변신에 든 값은 오만 원 남짓! 그러나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우아했다. 어느 남자분의 변신은 놀라웠다. 처음 이미지 메이킹 수업에 참석했을 때는 둘도 없는 시골 할아버지였었다. 그분이 수업을 마감하는 날에는 도회적인 냄새가 풀풀 풍기는 로맨스그레이로 변신을 했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맞는 것을 입었을 때의 변화는 상상을 초월했다.

    나에게도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요즘은 스카프의 계절이지만 백화점에 가서 스카프 파는 곳에 기웃거리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스카프가 멋지게 휘날리는 꿈을 꾸고 한두 장 샀을 것이다. 그리고 외출할 때 목에 두르고 나갔다가 거추장스러워 다시 풀어 가방으로 들어가곤 했었다. 나랑 어울리지 않아 거추장스러웠던 스카프였던 것이라는 걸 알게 된 탓이다. 내게 어울리는 것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대면서 옷을 입어보던 습관도 이젠 사라졌다. 내 스타일을 알기에 단순하고 가라앉은 것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고 만다. 키 작은 사람은 입으면 안 된다는 긴 코트도 입는 방법을 알았기에 서슴없이 도전하고 산다. 저절로 행복해지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