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탐방][59]국보 제59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1)

    입력 : 2020.01.08 10:02

    국보 제59호
    - 공식명칭 :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原州 法泉寺址 智光國師塔碑)
    - 지정일 : 1962.12.20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수량/면적 : 1기
    - 시대 : 고려시대

    법천사터에 세워져 있는 지광국사(984∼1067)의 탑비로, 국사가 고려 문종 24년(1070)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지광국사탑과 함께 이 비를 세워놓았다. 지광국사탑은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수중이며 탑비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거북은 목을 곧게 세우고 입을 벌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의 얼굴에 가까운 형상으로, 턱 밑에는 길다란 수염이 달려 있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독특한 무늬가 돋보이는 등껍질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면을 나눈 후 그 안에 왕(王)자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몸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양 옆면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인데,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이 정교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은 네 귀가 바짝 들려진 채로 귀꽃을 달고 있는데, 그 중심에 3단으로 이루어진 연꽃무늬 조각을 얹어 놓아 꾸밈을 더하고 있다.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중국의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삼아 부드러운 필체로 썼다.        [문화재청]

    폐사지 법천사터(法泉寺址)

    답사꾼들이 늦가을부터 한겨울에 즐겨 찾는 답사지는 폐사지이다. 절이었으나 지금은 빈터만 남은 곳, 황량한 벌판에 목조는 간데없고 그나마 석재 유물 몇 개만 남아 삭막함을 더해 주는 곳. 찬바람까지 불어 휑하니 가슴을 훓고 지나갈 때 시공을 초월한 그 자리에서 옛 영화를 그려보는 시간이 폐사지 답사의 절정이다.

    수도권에서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은 남한강변 폐사지들로 여주 고달사지로부터 해서 원주 흥법사지와 법천사지를 지나 거돈사지를 살펴본 후 충주 청룡사지까지 이어진다. 원주 부론면(富論面) 법천리(法泉里)의 법천사지는 남한강이 흘러오다가 원주, 문막에서 내려오는 섬강과 만나는 곳으로 땅은 기름지고 많은 물류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주장과 논쟁이 많아 부론(富論)이요, 법천사 절집이 들어서 부처님 말씀인 법(法)이 샘(泉)처럼 솟아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고려 때는 전국의 12조창 중 하나인 흥원창이 있었으며 크게 번창하던 이곳에 법천사가 있었으니 통일신라시대 때에 세워져 고려시대에 크게 융성한 절이었다는데 임진왜란 때 폐사가 되었다고 전해지며 지금 이곳에는 국보 제59호 지광국사 현묘탑(智光國師玄妙塔)이 남아 있어 많은 탐방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탑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으며 탑비와 짝을 이루어 남아있어야 할 승탑(국보 제101호)은 경복궁 마당에 세워져 있다가 현재 해체, 복원 중에 있다.

    지광국사(智光國師) 해린(海麟)

    속성은 원씨. 자는 거룡. 16세 때 법천사의 관웅에 의지하여 승려가 되었고, 개성 해안사에서 준광에게 사사했다. 999년(목종 2) 용흥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1004년 왕륜사의 대선에서 대덕이 되었고, 1011년(현종 2) 대사가 되어 강진홍도의 법호를 받았다.

    1021년 평양의 중흥사에서 중대사가 되어 수다사에 있다가 다시 해안사로 옮겼다. 덕종 때 삼중대사에 올랐다가 수좌가 되고, 정종 말에 승통이 되었다. 문종 때는 유심의 묘한 뜻을 깨달아 마납가사를 받았다. 1054년(문종 8) 현화사로 옮겨 주지하다가, 1056년 왕사가 되었으며, 다음해에는 융소의 법호를 받았다. 1058년 국사에 올라 왕의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1067년 은퇴하여 법천사에 머무르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탑호는 현묘이며 1085년(선종 2) 법천사에 비가 세워졌다. 시호는 지광이다.

    지광국사(智光國師) 탑비(塔碑)

    법천사지를 처음 찾았던 십여 년 전 이곳은 그야말로 폐허였다. 폐사지라고 할 수도 없는 폐허. 부서진 집들 흔적과 진입로도 찾기 어려운 잡목 숲과 방치된 흙, 돌 등이 앞을 막았다. 그 후 몇 차례 대대적인 발굴사업을 거쳐 구획정리가 깔끔하게 되고 제법 모양을 갖추어가더니 이번에는 또 폐사지가 아니라 가꾸어진 유적지가 되고 말았다.

    한때는 이 마을 전체가 절터였다는데 지금은 산 밑으로 앞치마를 두른 듯 조금은 가파른 지형이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으며 그곳 가장 위쪽에 현묘탑비가 있다. 몇 단의 석축을 올라가면 조붓한 느낌으로 자리 잡은 검은색 오석(烏石)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약간은 촌스러운 녹색 철제 난간이 둘러쳐진 모습인데 주변에는 다소 산만한 느낌으로 석재들이 흩어져 있다.

    지금은 탑비라고 부르지만 얼마 전까지는 부도비라고 했다. 높이가 제법 높은 검은색 빗돌은 그에 비해 두께가 다소 얇아 슬림해 보이는데 검은색 비신의 위아래로 이수와 귀부는 흰색으로 대비되어 또렷한 모습이다. 다만 비신의 윗부분이 눈에 띌 정도로 금이 가서 깨어져있으며 뒷부분 아래쪽은 생각보다 많이 훼손되어 불안정해 보일 정도이다.

    현묘탑비. 고려시대 탑비중 대표로 손꼽히는 걸작이나 비신 곳곳이 훼손되어 있다. 특히 비신의 뒷면에 크게 깨어진 윗부분과 파손되어 얇아진 아래쪽 모습이 조금은 불안해 보인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현묘탑비의 거북 모양 비석 받침, 즉 귀부(龜趺)는 영락없는 거북이지만 머리는 당당한 용 모습이다. 큼직한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과 아래 윗 이를 모두 드러낸 얼굴, 비늘을 조각한 듬직한 목줄기가 뚜렷하며 수염을 나타내는 턱밑 부분은 머리를 받치는 받침대 역할도 하는 듯하다. 네모꼴 거북등 무늬는 칸마다 육각의 귀갑무늬를 새긴 후 그 안에 임금 왕(王)자를 조각하여 위엄을 더하였다. 거북껍질 아래로는 구름무늬가 뭉글 거리며 네발을 감추고 있는데 신비감을 자아내는 듯하다.
    비석을 받치고 있는 귀부(龜趺). 임금 王 자를 새긴 거북 등과 용머리, 구름무늬를 타고 앉은 모습의 거북이다/ 사진출처=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