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유산 답사] 이집트 (7) 왕들의 계곡

    입력 : 2020.03.25 10:54

    에드푸에서 호루스 신전을 답사한 후 버스를 타고 나일강 하류를 따라 2시간쯤 내려가니 한국의 경주로 비견되는 룩소르(Luxor)이다. 룩소르 서안(西岸)의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을 보러 온 것인데 고왕국 시대에 등장한 거대한 석조 무덤(무덤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인 피라미드가 그 규모로 위용을 자랑하고 누구에게나 보여졌다면 신왕국 시대에 이르러 파라오의 무덤은 미라와 부장품을 노리는 도굴(盜掘)이 무서워 누구도 찾지 못하게 계곡으로 숨어드는데 왕가의 계곡이 그렇게 만들어진 파라오들의 계곡속 공동묘지인 셈이다.

    피라미드의 원조는 3왕조 2대 파라오 조세르가 사카라에 세운 '계단 피라미드(Step Pyramid)'이며 굴절 피라미드를 거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쿠푸의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등 80기가 있다고 한다. 대피라미드의 경우 10만명이 20년간 3교대로 지어야 할 만큼 엄청난 토목공사였다고 하는데 파라오의 통치업적을 피라미드의 규모와 크기로 과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왕국 시대까지 1000년쯤 세월이 흐르는 동안 파라오들의 무덤은 이렇게 남들이 잘 보이는 자리에 거대한 규모로 세워 위엄을 과시하고 있었으나 18왕조 2대 파라오 아멘호테프 1세와 3대 파라오 투트모세 1세에 이르러는 왕들의 무덤을 누구도 찾지 못하는 계곡으로 숨기게 된다. 즉 장례의식을 치루는 장제전과 무덤을 분리하여 장제전은 공개장소에 설치하되 무덤은 눈에 띄지않는 곳에 마련하는것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파라오의 미라를 묻으니 그곳을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이라고 하며 이어서 왕비나 왕자의 무덤도 근처 암벽지대에 따로 조성하게 되는데 19왕조를 연 람세스 1세의 왕비 시트레를 효시로 '왕비의 계곡(Valley of the Queens)'을 별도로 만들게 된다. 이렇게 왕족들의 무덤이 계곡으로 들어가니 귀족이나 일반인들도 계곡 절벽에 무덤을 만들게 된다.

    ㅇ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
    동쪽에는 왕궁이나 신전을 짓고 서쪽에는 무덤을 조성하는 예법에 따라 왕가의 계곡은 룩소르 나일강 서편에 있다. 강의 범람에도 문제가 없도록 충분히 떨어진 지역에 사암으로 이루어진 산악지형을 골라 계곡에 비밀 무덤을 만든것인데 마침 산의 모양이 멀리서보면 피라미드를 닮아 나름대로 신성시하는 조건을 충족시킨듯 하다.

    현재는 모두 63기의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발굴 순서에 따라 KV(King's Valley) 몇번 하는 방식으로 번호를 붙였으며 티켓 한장으로 3곳을 볼 수 있기 때문에 KV8번, 11번, 6번 세 곳을 들어가보았다. 모든 무덤이 개방된것은 아니었고 특히 관심이 있었던 소년 파라오 투탕카몬의 무덤은 들어갈 수 없어 아쉬웠다.

    입장권은 240EGP(이집트 파운드, 약18,000원)으로 10년전 80EGP였다는데 무려 3배가 오른 값이다. 다녀온 사람 누구나 이집트 유적지 입장권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다고 하더니 과연 그러하다. 다만 국제학생증 소지자는 50% 할인이 가능하며 이집트 국민들은 매우 저렴하게 입장하고 있었다. 외국인은 오히려 우대하고있는 우리나라도 참고해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 과연 산 정상은 피라미드 모양으로 생겼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없는 지형인데 사암으로 이루어져 비밀 무덤을 만들기에는 딱 좋은 조건이다. 완공후에는 봉인을 하고 묻어버렸지만 그래도 결국 모두 다 도굴당했다고 한다/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KV8 (8번 케이브), 메르넵타(Merenptah)의 무덤
    3개의 무덤 중 처음 들어간 곳은 KV8번, 19왕조의 4대 파라오 메르넵타(Merenptah)의 무덤이었다.
    이집트 왕국중 가장 전성기를 보인 신왕국 시대는 18, 19, 20왕조 500여년을 말하는데 대규모 장제전을 지은 하트셉수트, 정복전쟁과 이스탄불 오벨리스크의 주인공인 투트모세 3세, 멤논의 거상 주인공 아멘호테프 3세, 소년 파라오 투탕카몬 등이 18왕조이며 아부심벨 신전의 주인공 람세스 2세가 19왕조이다.

    메르넵타(Merenptah, 재위 BC1212~BC1202)는 그 유명한  람세스 2세의 13번째 아들인데 그는 10년의 재위 기간 중 왕성한 정복전쟁으로 영토확장 등 람세스 2세를 이어 왕조를 키워갔으나 갑자기 죽은 후 세티 2세와 아멘메세스간 승계 다툼에 이어 세티 2세의 어린 아들 시프타가 승계하였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세티 2세의 부인이 파라오가 되는 등 혼란 속에 19왕조는 몰락하게 된다.

    메르넵타의 무덤은 입구에서부터 경사진 회랑을 따라 길게 내려가면 중간에 두 개의 방을 지나 마지막에 석관이 놓여있는 돔형의 현실(玄室)이 있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이다. 입구 설명판을 보면 구조를 알 수 있다/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무덤을 내려가는 경사진 회랑은 생각보다 넉넉하여 피라미드처럼 구부리지 않고 서서 다녀도 되며 내려가고 올라가는 사람이 교행 가능한 넓이에 계단과 난간을 추가로 설치하여 관람객이 쉽게 드나들게 하였다/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무덤의 가장 끝에 있는 현실은 널찍한 돔형 구조에 네모난 석함이 있고, 석함의 뚜껑인지 별도 석관의 뚜껑인지로 보이는 석상 모습의 뚜껑이 놓여 있고 그 뚜껑의 아래를 볼 수 있도록 공간을 띄워놓고 불을 켜 놓았다/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무덤 입구의 벽화 2점. 왼쪽은 메르넵타와 호루스 신으로 보인다. 벽면의 대부분은 복잡한 상형문자로 채워졌는데 파라오 죽음에 대한 기나긴 서사시 텍스트로 보이며, 오른쪽은 위에 태양 원반과 스카라브(scarab)라 부르는 태양을 밀어 올리는 소똥구리(또는 풍뎅이)와 숫양 머리 남자를 새겼으며 그 아래에는 악어 그림을 새긴 모습이다/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메르넵타의 무덤에는 시신(미라)이 없다. 훗날 22왕조 때 선대 파라오들 미라를 일제 점검하여 훼손된 것은 보수하고 모든 미라를 한 곳에 모아 숨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881년 숨겨놓은 미라들이 발견되었지만 메르넵타의 미라가 안보이자 학자들은 그가 모세를 추격하다가 홍해 바다에 빠져 죽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는데 1898년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에서 파라오 미라 16구가 추가로 발견되었을 때 그곳에 있었다.

    KV11 (11번 케이브), 람세스 3세 (Rameses Ⅲ)의 무덤
    두 번 째 들어간 곳은 KV11번, 20왕조의 2대 파라오 람세스 3세(Rameses Ⅲ) 무덤이다.
    람세스 3세는 그 유명한 19왕조 람세스 2세의 아들이 아니며(위 KV8에 묻힌 메르넵타가 람세스 2세의 아들이다.) 19왕조를 이어 나타난 20왕조의 세트나크테의 뒤를 이은 2대 파라오이다. 그는 31년을 통치하면서 20왕조를 안정시켰으나 말년에는 왕위 계승을 두고 역모가 일어나 혼란한 가운데 배다른 아들들이 람세스 4세, 5세, 6세로 즉위하였고 이후 람세스 11세에 이르러 몰락하게 된다.

    11번 무덤은 파내려 가던 중 10번 무덤(Amenemose, 19왕조의 5대 파라오, KV8번의 메르넵타의 아들)의 통로와 만나는 바람에 한번 굴절하여 비켜 가게 만들으며 8번 무덤에 비하여는 다소 다양하고 화려한 벽화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무덤의 주인공 람세스 3세의 미라는 물론 석관조차 없었는데 알고 보니 람세스 3세의 석관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람세스 3세의 무덤 통로. 초입부터 KV8번의 메르넵타 무덤에 비하여 구조물도 많고 벽화도 다양하다/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내부 벽화 중 가장 큰 그림의 일부인데 오른쪽은 매의 얼굴을 한 호루스. 왼쪽은 악어 얼굴로 보아 악어 신 소벡인데 뱀 한 마리를 쥐고 있고 머리 둘 달린 커다란 뱀은 반대방향으로 달아나는 모습을 보인다. 뱀의 의미가 궁금하다/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등장인물이 가장 많아 눈길을 끈 벽화. 왼쪽에서 4번째가 호루스로 보이며 중앙이 무덤의 주인공 람세스 3세, 오른쪽은 미의 여신 하토르로 보인다. 람세스 3세가 태양신의 나룻배를 타고 호루스와 하토르의 보호하에 저승으로 가는 장면인 듯하다/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오른쪽에는 쟈칼의 얼굴을 한 저승사자 아누비스가 앉아있고 이시스 여신이 그 위에서 날개를 펴 보호하고 있으며,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은 아마도 태양신 나룻배를 타고 저승에 도착한 람세스 3세로 보인다/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동굴 벽화는 하토르, 호루스가 많이 보이며 무덤의 주인이자 망자(亡者)인 람세스 3세의 저승에서 이모저모를 표현한 듯하다. 상형문자와 많은 그림들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분위기가 그런 듯하고 3000년 넘은 벽화가 여전히 컬러풀하고 생생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KV8번 메르넵타 무덤에서 본 것과 같은 그림이다. 주인공만 람세스 3세로 바뀌었을듯하며, 태양 원반 안에 남자와 그 위의 뱀 그림은 이곳 그림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뱀과 악어 외에 위아래에 선각으로 그린 그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KV6 (6번 케이브), 람세스 9세 (Rameses Ⅸ)의 무덤
    세 번 째 들어간 곳은 KV6번, 20왕조의 8대 파라오 람세스 9세(Rameses Ⅸ) 무덤이다. (케이브 번호는 발견 순으로 부여하기 때문에 2대 파라오 람세스 3세의 무덤이 11번인데 비하여 8대 파라오 람세스 9세의 무덤이 6번이다.)

    두 번 째 들어갔던 KV11번 무덤의 주인공 람세스 3세를 지나면서 20왕조는 급격하게 혼란스러워지고 국운이 기울어지는데 람세스 9세는 비교적 안정된 통치를 보인 것으로 기록된다. 특이한 점은 람세스 9세에 이르러 왕들의 계곡에 있는 파라오 무덤들에 대한 일제 조사를 벌인 결과 18왕조 2대 파라오 아멘호테프 1세를 제외하고는 모두 도굴, 훼손되었다는 것인데 놀라운 일이다.

    KV6번 무덤은 먼저 들어가 본 KV8번과 11번보다는 통로가 넓고 심플하며 전체적인 길이(깊이)는 상대적으로 짧다. 왕가의 계곡 모든 무덤들이 도굴, 훼손되어 값진 유물은 물론 심지어 관이나 미라도 남아있지 않지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훔쳐갈 수 없어서 그대로 남아있는 벽화들이다. 그래서 관람객들은 대부분 내부 구조를 둘러보고 벽화를 감상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다.

    무덤으로 내려가는 회랑이 높고 경사도는 완만하며 길이도 짧아졌다. 벽화를 보호하기 위하여 투명 가림막을 설치하였는데 앞의 두 곳보다 벽화가 화려하고 다양한 느낌이다/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호루스 앞에 선 사람이 람세스 9세로 보인다. 머리 위에는 이시스가 날개를 펴 보호하는 모양이다/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태양신의 나룻배를 타고 저승으로 가는 모습으로 보이는 다양한 벽화들. 호루스와 하토르 그리고 무덤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파라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커다란 악어로 보이는 동물을 태운 특이한 장면도 있다/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비교적 완만한 경사의 회랑을 들어가면 잠깐 계단식으로 내려간 곳에 마지막 공간, 파라오의 미라와 관을 보관하던 현실(玄室)이 나오는데 텅 비어 있다. 그러나 3면의 벽화는 물론 천장까지 벽화가 가득 그려져 있어 특이한 곳인데 우주 질서를 관장하는 여신인 천신 누트(Nut)와 다양한 형상들이 함께 그려져 있어 유명하다/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만국 공통으로 왕들의 무덤은 최고의 장소로 만들었지만 모두가 도굴과 훼손을 두려워한 듯하다. 그래서 이런 계곡 속 바위에 무덤을 숨기고 알려지지 않게 하였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듯이 도굴꾼들을 막을 수는 없었던 듯, 18~19왕조 파라오들의 계곡 무덤은 모두 도굴되고 말았다. 다만 오직 한 곳이 도굴되지 않고 처녀분으로 남아있다가 1922년에 제대로 발굴되기에 이르렀는데 바로 소년 파라오 투탕카몬의 무덤이다.

    중국에서는 황제릉 건설 후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공사인부들을 모두 죽였다고 하던데 이곳 왕가의 계곡 파라오들의 무덤을 만든 인부들은 별도의 마을에 모여 격리된 채 살게 하였으며 그 대신 높은 임금 등 생활을 풍족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조 말기 국가재정이 어려워져 지원이 끊기자 공사인부들이 직접 도굴에 나섰으며, 심지어 무덤 공사중에 나중에 도굴할 통로를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21왕조에 이르면 재정이 궁핍해지자 나라에서 선대 파라오들 무덤을 털어서 재화를 차지하였을 뿐 아니라 선대 파라오 무덤을 후대 파라오가 일부 재 공사하여 다시 사용하기도 하는 등 결국 모든 파라오들의 무덤이 훼손되기에 이르렀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석관이나 미라, 중요 유물 등이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박물관 등으로 반출되어 현재 버젓하게 전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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