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유산 답사] 이집트 (16) 대(大)스핑크스

    입력 : 2020.05.08 16:08

    ㅇ 대(大)스핑크스(Sphinx)

    대(大)피라미드 만큼 유명한 대(大)스핑크스는 기자 지구 피라미드 3개의 남동쪽, 나일강 방향에 있는데 학자들의 연구결과 가운데 있는 (쿠푸의 아들) 카프레 피라미드와 함께 지어졌다고 한다. 즉 카프레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신전들이 동시에 지어졌다는 건데 그래서인지 카프레 피라미드 남쪽 끝부분과 스핑크스 중심축 연결선으로 춘분과 추분에 해가 진다고 한다.

    기자 지구 대(大)스핑크스. 1798년 이집트를 정복한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포병장교로서의 실력을 발휘하여 얼굴에 대포를 쏴 훼손하였다는 설도 있는데 1378년 이슬람의 수피 열혈 신도인 알다르(Muhammad Sa’im al-Dahr)의 명령으로 훼손되었다는 것이 다수설이며 저 코를 복원하면 카프레 얼굴이라고 한다. 그래서 카프레 피라미드 앞에 있는 듯하다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에 사람의 머리가 달린 전설의 동물인데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동남아 등지에서도 알려졌으며 이집트 왕조에서는 왕권의 수호자이자 선한 사람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스핑크스는 모래벌판에 홀로 서있는 석상이 아니라 조금 낮은 지반 위에 스핑크스 신전을 세워 피라미드의 파라오, 또는 스핑크스 자체를 숭배하던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신왕국 시대 18 왕조 투트모세 4세가 즉위 전 기자 주변에서 사냥을 하다가 그늘에서 낮잠을 잤는데 꿈에 스핑크스가 나타나 모래를 치워주면 (왕위 계승권자가 아닌 그가) 왕이 되게 해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며 그래서 모래를 모두 치우고 훼손된 부분은 보수하였으며 보호 담장도 설치해주고 왕이 되자 스핑크스 앞발 사이에 이러한 경위를 적은 비석을 세웠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높이 20m, 전체 길이 70m 크기의 대스핑크스. 몸체와 두상에 비하여 앞 발이 기형적으로 긴 모습인데 조각의 모체가 된 거대한 석회암의 특성상 암반의 결을 살리느라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파라오 머리 모양인 두상만 기억했는데 몸체 3곳에 비밀 터널도 3곳이나 있다는 생각보다 큰 석조 조형물이다
    스핑크스의 옆모습과 뒷모습. 부분적으로 보수중이었는데 관람객들이 가까이 갈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크다
    스핑크스의 머리 부분, 옆모습과 앞모습. 파라오 얼굴에는 이마에 코브라 장식과 가짜 턱수염도 있었다고 하는데 턱수염은 지금 대영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두 발 사이에 투트모세 4세가 세웠다는 비석이 보인다.(아래 사진)
    BC15세기 투트모세 4세가 한번 구해 낸 스핑크스는 이후 왕조가 바뀌면서 버려졌다가 복원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다가 세월의 흐름 속에 나일강 서안의 사막바람에 모래가 켜켜이 쌓여있는 모습을 나폴레옹이 찾아왔었다고 하며 19세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모래 제거, 발굴 작업으로 지금 같은 모습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일부 졸속 복원을 지적하고 있어 계속 보완 중에 있다.
    9세기 모래에 묻혀있는 스핑크스 모습. 1867~1899년쯤으로 추정된다/ 사진출처=나무 위키,namu.wiki

    스핑크스는 처음 피라미드나 신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왕권을 상징하는 조형물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되니 신왕국 18 왕조 투트모세 4세는 스핑크스 덕분에 왕이 되었다는 것이며 유명한 19 왕조 람세스 2세도 스핑크스를 경건하게 참배하는 벽화를 볼 수 있다. 파라오가 참배하니 일반인들의 참배는 당연히 권장되었을 것이다.

    스핑크스 앞쪽으로는 신전이 있다. 많이 훼손된 상태지만 당시에는 신전 앞까지 나일강이 닿았으며 파라오나 귀족들이 배를 타고 와서 내리는 부두와 접안시설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2개의 돌다리 모양은 남아 있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신전 내부 벽을 화강암으로 쌓았는데 하나하나를 깎고 다듬은 것이 마치 조각보를 맞추듯이 정밀하게 완성하여 감탄을 자아낸다.

    성벽 건물처럼 네모난 구조물이 스핑크스 신전이다. 그 앞으로 돌다리처럼 보이는 것이 배를 타고 내리는 접안시설인데 옛날에는 이곳까지 나일강이 닿았다고 한다
    신전 내부 벽면을 보면 5~6m는 족히 넘는 벽면에 쌓은 돌을 재단한 솜씨가 조각보를 이어 붙인 듯 정밀하다. 심지어 90도 꺾어진 채 양쪽의 돌을 맞춘 것에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ㅇ 메나 하우스 (Mena House) 호텔

    기자 지구 피라미드를 보러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에 메나 하우스 (Mena House) 호텔이 있다. 객실에서 이집트의 랜드마크인 피라미드가 보인 다해서 유명한 곳인데 사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3년 11월 27일에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처칠 영국 수상, 장개석 중국 총통이 모여서 일본을 향한 대일전(對日戰)의 기본 목적과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공개 선포한 역사적인 '카이로 선언'이 있었던 곳이다.

    이 선언에서 미. 영. 중국은 '한국을 자유 독립국가로 할 것'을 결의하여 일제 식민지로 있던 우리나라에 대하여 독립을 표명한 중대 사건이니 비록 피라미드를 보러 왔더라도 한 번쯤 들려보거나 최소한 그러한 역사적 현장이라는 사실만이라도 주지하면 좋을 듯하다. 지난 2015년 10월 1일, 한-이집트 수교 20주년과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카이로 선언비'를 이 호텔 정원에 세웠다.

    호텔에서 바라본 피라미드. 최근 매리어트 호텔(Marriott Mena House Hotel)이 되었다/ 사진출처=호텔 홈페이지

    기자의 대피라미드와 대스핑크스를 보고나니 이집트 답사가 마무리된 느낌이다.  나일강 상류 아부심벨 신전에서 시작하여 강줄기를 따라 하류로 내려오면서 필레신전, 미완성 오벨리스크를 거쳐 콤 옴보, 에드푸 신전을 보고 룩소르 서안(西岸)의 왕들의 계곡과 왕비의 계곡, 동안(東岸)의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으로 이어지는 일정이 꿈처럼 지나갔다.

    이제 카이로 근교의 통일 이집트 첫 수도 멤피스와 묘역(墓域) 사카라의 계단 피라미드에서 시작하여 기자 지구 대피라미드와 대스핑크스로 이집트 답사의 큰 그림을 마무리한다. 4000년, 5000년 시간을 거슬러 가 보는 것이 실감 나진 않았지만 소중한 기억으로 남기면서 기회가 되면 한번 더 찾아와 미처 못 본 구석구석 돌아볼 생각이다.

    [끝]

    내 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 https://band.us/@4560dapsa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