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코로나바이러스’ 시기에 다시 읽는 <시낭송바이러스>

    입력 : 2020.07.08 16:19

    사람은 누구나 그만의 전성기가 있다. 물론 전성기란 항상 현재진행형이지만, 그 전성기 중 하나를 떠올려 본다. 나는 KIST SERI CEB Lab에 15년 가까이 있었는데, 1991년도 하반기에 한국예총 <예술세계>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92년 초 수필 전문지 <월간 에세이> 원고 청탁을 받았다. 1988년에 창간된 이 문학 월간지는 동양엘리베이터에서 전액 출자해 지금까지 발간되고 있다.

    원고 마감 3일을 남겨놓고, 무엇을 쓸까 무척 고심했다. 당시 컴퓨터 관련 연구소에서 근무하며 과학계 직업을 가진 이가 시나 수필을 쓴다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결국, 과학과 예술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젊은 패기가 <시낭송바이러스>를 쓰게 된 동기였다. 그랬다. 그땐 젊었을 때의 전성기였다.

    ‘시낭송’은 그때나 지금이나 관심 사항이고, ‘컴퓨터 바이러스’ 또한 지금 관심 사항이니, 40년 가까이 지나도, 크게 변한 것이 없는 듯도 하다. 변한 것이 있다면, 당시 원고를 쓸 때는 모뎀을 연결해 전용선으로 단말기를 사용하고 중앙처리방식의 인터넷이 우리나라에 도입되려던 때였다면, 지금은 분산처리방식의 제2인터넷인 블록체인 기반의 핸드폰이 최고조로 발달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이름이 인구에 회자하고 있는 차이다.


    어쩌면, ‘시낭송’이 가진 의미는 인간 ‘선’의 ‘자연스러움’을 상징하려 했던 것이고, ‘컴퓨터 바이러스’는 인간 ‘악’의 ‘탐욕스러움’을 나타내려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현재 주어진 순간의 아름다운 것을 느끼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은 사람이 있지만, 이다음 순간의 새로운 것을 확인함으로써 ‘과학’을 선점해 살려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지금, 참 세상은 조화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당연히 이 두 부류의 사람은 서로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누가 더 행복한가의 구분 대상도 아니다. 또한 이 두 부류의 모습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 본성인지도 모른다. 어떠하다 정의를 내려도 서로 비교우위에 있지 않다. 다만, 태어나면서 가진 것, 또 자라면서 익숙해진 것, 이러한 것들이 현재진행형이기에, 나 자신만이 의미 있다고 느낄 뿐이다.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며 <시낭송바이러스> 내용에서는 1992년 초에 2022년 4월을 생각했다. 당시, 아마 40년 정도 지나면, 공중에 10만 인치 정도 되는 대형 공중스크린에 영상을 펼칠 것이라고 상상했다. 덕수궁 잔디에 누워 밤하늘을 보노라면 멋진 영상이 하늘 가득 펼쳐질 수 있다고 상상했던 것. 빗나간 상상이었기에 망정이지, 또 에세이기에 망정이지, 자칫 실력 없는 하찮은 연구소 사람이라고 지금도 치부되었으리라.

    2020년 꼭두새벽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세간에 사람이 만들었다는 소문도 있다. 소문이든 자연 발생이든 그 귀책 사유는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말이 지배적이다. 인간이 무한대급의 과학발전을 거듭하면서 생존 기간이 늘어났다. 그것도 20C 들어서 갑자기 늘어난 것. 갑작스러운 인간 몸의 변화가 더 갑작스러운 바이러스 변종을 불러온 것이리라. 컴퓨터 능력이 갑자기 인공지능 이상으로 성장하면, 마찬가지로 엉뚱한 ‘컴퓨터바이러스’도 갑작스레 나타날 것이라는 억측 아닌 상상도 이어지는 작금이다.

    인터넷 등장 무렵인 1992년 4월호에 발표한 후, 여러 곳에서 문구를 일부 수정한 이 에세이를 낭독하곤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필자가 한국예총 당시 월간 <예술세계> 편집장으로 있을 때, 시낭송에 관한 기사를 기획하면서 국내에 시낭송 문화를 정착시키려 노력한 기억도 새롭다. 지금은 많은 시가 낭독이 되어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원컨대, ‘시낭송’과 ‘바이러스’가 잘 조화되어, 필자의 ‘시낭송바이러스’ 같은 엉뚱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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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낭송바이러스>

     
    지난 2022년 4월 둘째 일요일, 서울 시청 앞 덕수궁에선 있었던 일이었다. 초저녁부터 지하철 1호선 시청역 1번 출구부터 덕수궁 돌담을 따라 너나없이 줄을 서고 있었다. 나도 입장권을 치켜들고 한 시간 가까이 줄을 서다가 대한문 안으로 간신히 발을 들여 놓았다.

    나무며 별들 그늘을 피해 하늘이 잘 보이도록 자리를 잡고 풀밭에 앉았다. 구름에서 들리는 듯, 잔잔히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비디오카메라를 꺼내 설치했다. 이미 공중에서는 입체영상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 번 입체영상을 비디오에 있는 ‘광결정기억소자’에 담아 시험해보곤, 편히 앉아 현대미술관 앞의 분수대가 연출하는 물꽃춤을 보고 있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자 입체영상으론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시가 낭송되고 있다. 중간엔 시와 어우러진 입체영상이 한 개인의 좋았던 일 슬펐던 일 등등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윽고 내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며 얼굴이 서서히 나타나고…….

    그 친구는 국내 최고의 컴퓨터통신 회사에 30년째 있었는데, 10년 가까이 소식이 없길래 왠가 했더니, 낭송공연을 위한 한 기획모임에 참여해 산이며 방송국을 마구 뛰어 다녔다며 시낭송공연 안내장을 내미는 것이었다. 평소 얌전히 직장과 집만 오가던 친구가 이렇게 된 것은 사회 전반에 일고 있는 여가 선용의 일환으로 생활의 양태가 변해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꼭 한번 오란 말과 함께 털어놓은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정년 퇴직을 10년 남긴 시점이었으니, 쉰다섯 살을 넘기던 2012년 겨울이었다고 했다. 보통은 일주일에 3일만 출근하고 4일은 휴식 겸 재택근무를 하면 되는데, 이 친구는 보름 간격으로 출근 혹은 재택 근무하는 직장이었다.

    그 날은 재택근무 날이라 사무실을 겸해 사용하는 방에서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시스템의 본체를 작동하기 시작했는데, 본사와 통신을 하는 순간 갑자기 음성인식과 관련된 장치를 제외하곤 동작이 모두 멈추어 버리더란 것이었다.

    이어 화면엔 <1992.4 시낭송바이러스>란 내용과 함께 “지금부터 낭송되는 시 만큼 자연스럽게 48시간 이내에 시낭송을 들려주지 못하면 당신과 연결된 모든 컴퓨터의 자료가 모두 지워짐. 준비가 되었으면 크게 손뼉을 치시오.”란 경고 메시지가 연속해서 나타나더란 것이었다. 친구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 본사에 이 사실을 알렸더니, 즉시 동작을 멈추라는 지시가 있었다. 두 시간도 못되어 본사 ‘컴퓨터바이러스퇴치연구소’ 연구원 몇 명과 ‘컴퓨터바이러스퇴치협의회’의 전문가 그룹이 도착했다. 한참 토론 끝에 우선 그 시를 들어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손뼉을 크게 치자 시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시를 읊고 있었다. 시는 자연을 예찬한 내용이었는데, 낭송이 끝나자마자 친구는 자기도 모르게 깊은 마음의 박수가 저절로 나오더란 것이었다. 그 박수 소리와 동시에 같은 시가 되풀이 되어 들리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시낭송 관련 단체가 온 것은 다음 날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시를 듣더니 “이 여자는 지금부터 30여년 전에 요절한 낭송 전문가였다.”라고 말하며,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동료를 여럿 알고 있으니 찾아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었다. 서둘러 ‘예술인자료은행’을 조회한 결과 그 사람들의 거주지가 산 속이나 바닷가 혹은 섬 등으로 확인되었다.

    그 원로 낭송가들이 속속 도착하고 시가 수차례 입력되어 전체 시스템이 정상 가동되기 시작한 것은 제한 시간 30분을 남겨둔 긴박한 상황이었다. 친구는 자신의 단말기가 되살아나며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세상 공기와 차단된 방에서 가상현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하다 보니 아내의 죽음을 몰랐다. 30년 후면 이 가상현실시스템들이 인간 환경 자체를 바꾸어 버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그러한 첨단 과학이 대신하지 않으리라 믿어진다. 나는 그 경종을 위해, 이 ‘시낭송바이러스’ 제작을 끝으로 아내의 자연 속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며칠 후, 세계순회시낭송공연을 위해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오다가 김포로를 따라 혼자 걸었다. 점심 먹을 시간을 잃고, 저녁 어스름을 맞으며 실컷 유행가를 부르고, 또 친구가 낭송한 시를 보며 크게 읽다가 외우다가 내 노래라 만들어 부른 날, 그 날 가족과 함께 먹은 저녁 밥은 생애 최고의 만찬이었다. 

    (월간에세이, 1992.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