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갓밝이를 위한 좀 늦은 나이 가단조

    입력 : 2020.09.09 16:28

    어둠이 밝음으로 바뀌기 직전을 ‘갓밝이’라고 한다. 갓밝이에는 여러 가지 현상이 있다. 그중 으뜸이 바람이다. 어둠의 차가움이 밝음의 따스함으로 바뀌기 때문. 바람은 어디서 시작해 불어오는지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그냥 바람을 맞이할 뿐이다. 태풍이 지나가는 밤, 자연의 한 현상으로 갓밝이 사이로 그저 바람이 불었다.

    어떤 느낌이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강조하지 않더라도 바람은 움직인다. 아니, 사람 사는 지구 곳곳, 내가 있는 곳곳, 그곳마다 저마다 어떠함이라고 손짓하고 있으니, 그 손짓들이 모여 바람결이 되고 있으니, 누가 흔드는 것이라 확인할 수 없으니, 그냥 내게 오는 바람이라며 새롭게 느껴야 할 뿐이다.

    그러나 내가 없어도 분명 바람은 불어온다. 그러니, 내가 바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 환하게 떠오르는 하루 바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아, 내게 부는 바람이구나 하며 가질 수 있을 것. 오늘도, 갓밝이가 지나면서 어둠이 걷히면, 내게 어제와 조금은 다른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그 다름을 느끼는 일이 또 하루를 즐겁게 하는 것이라며.

    그랬다. 어제도 바람이 불었다. 신나거나 힘들었던 것들은 어둠에 묻히고, 다시 신나는 일을 즐겨보라는 그 바람이 불었다. 이 얼마나 좋은가. 오늘 부는 바람은 어제와 다르니 얼마나 좋은가. 이 바람이 내게로 부는 것이라 하면 얼마나 좋은가. 이 바람 모두 내 것이라면 또 얼마나 좋은가. 하, 내 바람.

    갓밝이를 느낄 때마다 외쳐보자. 그래, 잠에서 깨면 외쳐보자. 모든 바람아 내게로 오라. 이것은 욕심이 아니다.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는 것뿐. 바람이 한꺼번에 내게로 와도 좋겠다는 것. 내게 머물지 않고 지나갈 테니,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을 가져갈 테니, 지금도 또 지나고 나면, 나도 조금은 깨끗해질 테니. 어쩌면 산다는 건, 갓밝이 맞을 때마다 가지고 있는 내 숨결을 맛보는 것이란 듯. 그러하니, 기왕이면 웃으며 맛보아야 할 일.

    갓밝이 현상엔 밝아짐도 있다. 그러니, 오늘 내 갓밝이를 보내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일이 있을 것. 바로 밝음을 맞이해야 하는 자세 갖기일 것. 새로 펼쳐진 세상을 제대로 보라는 밝음, 보이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밝음, 그 밝음 앞에 내 어느 한 곳을 비추어도 웃을 수 있어야 하리라는 멋진 자세 갖기다.

    새로이 느끼는 갓밝이 밝음은 희망을 뜻한다. 무엇이든 잘 보이니, 계획한 것을 실천에 옮기기 쉬우니. 서로 잘 보이기에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신뢰와 여유를 가지고 열심히 땀 흘림에 있어 게을리하기에 그렇다. 떳떳하게 땀 흘려 일하는 시간이 곧 가치다. 이 가치에는 항상 대가가 따랐다. 작든 크든 이 소중한 가치가 음식이 되고, 새로운 힘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오늘 나는 내 갓밝이를 지나치면서 내게 부는 바람과 또 내게 오는 밝음을 입술에 올려놓고, 새로운 음식인지 힘인지 확인하려, 혀를 조금 내밀며 맛보는 것이었다. 하, 참 맛있다. 이 맛이 내 맛일까. 오늘 하루 가치 숫자가 점점 어제보다 떨어짐을 느끼기도 하지만, 언제 또 떨어지든 다시 올라가든, 어떤 숫자가 되던, 같다고 느끼고 싶어지는 내 맛일까.

    하루하루 갓밝이를 보낼 때마다, 내게 부는 바람이나 밝음이란 같을진대, 지금 멋지게 느끼고 싶은 것을 어찌할 것인가. 그동안 맞이했던 갓밝이마다, 어느 날, 문득 맛보았던 오늘 같은 자세를 다시 흉내 내며, 새로운 일 하나를 했다며, 허허허, 웃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갓밝이를 지나칠 것이다. 나 같은 사람들 곁에 그냥 잠시 머물다 갈 것이다.

    그렇다. 오늘도 여유롭게 만나는 사람과 함께 웃든 말든, 이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움직일 것이고, 그리고 나는 나를 안고 저들 세상을 지켜볼 것이다. 나를 다르게 보이기 위해, 이 글귀를 몇 번 다듬는 일을 오늘은 멈추고 싶어졌다. 내가 나를 보기 좋게, 또 다른 사람도 볼 때 보기 좋게, 꾸미는 일을 조금 할 수 있으나, 이제 이 일을 점점 멈추고 싶어지니 뭐라 뭐라 나열해야 할지.

    언젠간, 몇 번 갓밝이 때 바람이나 밝음이 어떠하다 다르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도 식상해질 것 같아 저절로 미적지근한 웃음이 인다. 이젠 새롭다는 것과 새롭지 않다는 것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싶으니 그렇다. 갓밝이나 노을녘이나 나를 가리키는 내 손끝이 한결같이 꼿꼿해지고 싶은 마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나는 이것을 언제까지 새로운 질문이라고 말하고, 그때마다 대답해야 할 것인가.

    하, 세상 참 멋지다. 2020년 늦여름 태풍이 내 바람과 함께 지나가는 내 ‘갓밝이’를 지켰었다는 사실만이, 이도 내 세상인가 하여 멋지게 볼 수 있다는 사실만이, 의미 있었다. 이렇게 나는 지금도 한세상 멋지게, 살아있는 것이 아닌, 살아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