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천 원의 행복

    입력 : 2020.10.05 10:35

    모처럼 평일에 휴가다. 코로나 덕택에 이제 연차도 회사 눈치 보지 않고 쓴다. 회사 생활 25년 이상 했으면 눈치 볼 위치는 지나지 않았느냐라고 말할 법도 하지만 세상 이치가 그렇지 않다. 신입사원은 한참 업무를 배울 시점에 휴가 내기가 눈치 보일 수 있고, 선배사원은 팀원 모두 열심히 일하는데 단지 회사 생활 좀 더 오래 했다고 마음대로 휴가 낼 수는 없다. 20여 년 전엔 선배사원이 어느 정도 여유를 부리며 일을 해도 후배 사원들은 이해를 했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왜 나는 열심히 하는데 선배사원은 왜 열심히 하지 않느냐 바로 항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역시 세상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평소에 하루 만보 걷기를 일상의 루틴으로 하고 있지만 오늘은 휴가라 시간적 여유도 있고 해서 평소보다 좀 더 걸어 보기로 했다. 집에서 5km 거리에 있는 호수공원을 목표로 했다. 하루 만보면 보통 6km 정도를 걷는다. 그래서 이 정도거리쯤이야 쉽게 생각하고 아침 10시에 집을 나섰다.

    걷기 시작 30분이 지났을 때 오른쪽 가운뎃발가락에 약간의 통증이 왔다. 약간의 고통이 있었지만 참을만해서 계속 걸었다. 그리고 또 30분쯤 지나면서 왼발 가운뎃발가락마저 통증이 왔다. 더 이상 참을 수 있는 고통의 한계를 넘어섰기에 가는 길을 멈추고 신발을 벗고서 발가락을 살펴보았다. 이 고통의 원인은 오른발, 왼발 모두 네 번째 발가락의 발톱이 가운데 발가락을 누르면서 가운뎃발가락 피부를 벗기게 만들어 살짝 피멍을 들게 했다. 양쪽 발 가운뎃발가락 공히 이렇게 되다 보니 더 이상 걷기가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이 상태로 가다간 발가락 피부가 찢어갈 것 같았다.

    순간, 목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계속 가야 하느냐 아니면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하느냐 갈등의 상황이 벌어졌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되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선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하는데 이 상황에선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다 가운뎃발가락과 네 번째 발가락이 접촉하지 않게끔 하면 통증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고통을 참고 앞으로 걸어가면서 주위에 약국이 있는지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근처에서 약국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발가락을 감싸줄 수 있는 의약품을 샀다. 대일밴드였다. 가격은 천 원이었다. 최소 오천 원 정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양발 가운뎃발가락에 밴드를 붙였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조금 전까지 발가락이 피멍이 들어 더 이상 걷기가 힘들었는데 이 밴드를 붙이고 나서 그 통증이 거의 사라 졌다. 통증이 사라진 덕택에 목표로 한 5km를 걷고 호수 공원 한 바퀴를 돌고 나서 집으로 되돌아왔다.

    평소 매일 6km를 걷다가 오늘은 왕복 기준 13km를 걸었다. 오늘의 걷기에서 간과했던 부분은 평소 하루 만보는 오전 10시에 10분, 점심 식사 후 20분, 오후 3시에 10분, 퇴근 후 20분 걷기처럼 나누어서 만보를 걷다 보니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쉬지 않고 한 번에 13km를 걸었다. 당연히 좀 더 걷기의 고통이 있을 수도 있는데 평소처럼 걸어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이 오늘의 실수였다.

    오늘의 걷기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천 원의 행복이었다. 요즘 버스나 지하철을 타려면 최소 1,250원이 필요하다. 천 원으로 버스나 지하철도 탈수 없을 만큼 현재의 물가 기준으로 보면 천 원의 가치가 효용성이 좀 떨어진다. 그러나 천 원짜리 대일밴드 하나로 목표를 완주하게 한 그 가치는 돈으로 평가할 수 없는 소소한 행복과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이것이 보통사람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참다운 행복임을 깨닫게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