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묵의 폐사지 답사] (2) 원주 거돈사 터 (居頓寺址)

    입력 : 2020.12.18 16:38

    ▩ 남한강변 폐사지 (청룡사터, 거돈사터, 법천사터, 흥법사터, 고달사터)

    남한 땅에서 유일(?)하게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남한강
    그래서 저 아래 충주가 상류가 되고 서울은 하류인데, 강물은 흘러 올라오면서 원주-문막에서 내려오는 섬강과 합류하고 여주, 양평을 지나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서울을 지나 서해로 빠져나간다.

    이 남한강 줄기 충주 이북의 남한강변 폐사지들을 청룡사지, 거돈사지, 법천사지, 흥법사지, 고달사지 순서로 답사하는 중인데 그 두번째 순서는 원주 거돈사 터이다.

    ▩ 원주 거돈사 터(居頓寺 址) (사적 제168호)

    먼저 둘러본 충주 청룡사지에서 남한강변을 따라 531번 국도를 타고 서울쪽으로 올라오다 부론면소재지 못미처 동쪽으로 완만한 오르막 지형을 타고 현계산 자락을 찾아 들어가면 거돈사 터를 만나게 된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커다란 저수지에 막혀 더 들어갈 곳도 없는 깊숙한 산자락에 남향으로 자리한 약 7,500평쯤 되는 절터는 삼면이 야산으로 둘러싸여 휑하니 넓으면서도 포근하고 안온한 느낌을 주는 조용한 곳이며 진입도로보다 높직한 축대위에 있어 계단을 올라서야 폐사지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는 그런 구조이다.

    거돈사 터 전경. 진입도로에서 높직한 축대로 계단을 올라서면 삼층석탑이 맞아준다. 동쪽 끝 부분은 도로가 오르막으로 올라 축대없이 만날 수 있는데 원공국사 탑비가 서 있다

    거돈사(居頓寺)
    거돈사(居頓寺)는 신라 후기에 창건되었고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고 전하나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문헌자료는 없다.

    산지가람인 거돈사는 신라의 전형적인 일탑일금당 형식의 배치를 보이는데 고려초기 대찰(大刹)로 중창되었다가 조선 초기까지 존속하였다고하며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고도 하나 폐사기록이 없어 정확하지는 않다.

    1984년 정비 보수공사와 1989~1992년의 본격적인 발굴조사로 대체적인 모습이 알려지게 되었으니 산자락 남단에 축대를 높이 쌓아 지대를 조성하였고 절 중앙 삼층석탑 뒤 금당터에는 가로 6줄, 세로 4줄의 주춧돌들이 남아있어 약 20여칸의 큰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금당터 중앙에는 커다란 돌 3개를 겹쳐놓은 2m가 넘는 불 대좌(佛臺坐)가 남아 있어 불상의 크기를 짐작케 해주며 주변으로는 회랑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거돈사 터 전면부에 자리잡은 삼층석탑과 금당 터. 금당터에는 주춧돌이 보이며 중앙에 불대좌가 큼직하게 놓여 있다. 절 뒤편 높은 곳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금당 중앙에 남아있는 불대좌 크기로 보아 불상은 적어도 장륙불(4.6m)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금당 터 초석의 배치를 보아 내부는 통층이고 외부는 2층 규모의 웅장한 법당이었을것으로 추정한다고 현장에 씌어 있다.

    3층석탑 (보물 제750호)

    전형적인 신라 석탑, 2단의 기단(基壇)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특이하게도 돌로 높직한 단을 쌓고 흙을 채운후에 탑을 세웠으며 단으로 오르는 계단도 놓여져 있다.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 (보물 제759호). 탑 앞에는 배례석(拜禮石)이 놓여 있고 탑은 석축으로 쌓은 높직한 단 위에 세워져 있다

    탑은 사각의 지대석을 깔고 2중 기단을 갖추었는데 아래층 기단은 네 면에 모서리 기둥(우주)과 가운데 기둥(탱주)를 새겼으며  높직한 위층 기단 역시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기둥을 새겼는데 모두 4개의 석재를 끼워서 맞추었다.

    탑의 1, 2, 3층 모두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었으며, 지붕돌은 경사면이 곡선을 이루고 처마 끝부분이 경쾌하게 들려있으며 지붕돌 아래 층급받침은 5단이다. 지붕돌 모서리에는 풍탁(風鐸)을 달았던 흔적(작은 구멍)이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는 네모난 받침돌(노반석)만 남아 있고, 연꽃 모양 보주(寶珠)는 최근에 얹어 놓은 것이다.

    원공국사 승탑(보물 제190호), 원공국사 탑비(보물 제78호)

    ㅇ 원공국사(圓空國師) 지종(智宗) (930~1018)
    원공국사(930-1018)는 고려 초기인 광종 때의 천태학승(天台學僧)으로, 속성(俗姓)은 전주(全州) 이씨(李氏), 자(字)는 신칙(神則)이다. 8세에 사나사(舍那寺)에 머물고 있던 인도승(印度僧) 홍범삼장(弘梵三藏)에게 출가하였으며 953년(광종 4년) 희양산(曦陽山)의 형초선사(逈超禪師) 밑에서 수행하였고, 954년 승과(僧科)에 합격하였다.

    959년 고려 광종의 환대를 받으며 오월국(吳越國)으로 유학하여 영명사(永明寺) 연수(延壽)에게 법안종을 배웠고, 961년 국청사(國淸寺) 정광(淨光)에게 '대정혜론(大定慧論)'을 배워 천태교(天台敎)를 전수받았다. 968년 전교원(傳敎院)에서 '대정혜론'과 '법화경(法華經)'을 강의하여 명성을 떨쳤다. 1012년(고려 현종 3년) 왕사(王師)가 되었다.

    1018년(현종 9년) 병을 얻어 거돈사로 들어온 후 그해 4월 17일 열반에 드니 세수 89세, 법랍 72년. 현종은 국사로 추증하고 시호를 원공, 탑호를 승묘라 하였다.
    원공국사는 당시 팽창해가던 선불교의 경향을 배척하지 않으면서 천태학을 계승하였다.

    즉, 원공국사는 고려 태조 왕건의 3남, 4대왕 광종이 중국으로 보낸 학승 36명중 하나였으며 원공국사가 중국에서 영명연수로부터 법을 받아 고려에 전하니 중국에서는 쇠퇴한 법안종이 고려에서는 크게 부흥하였다고 한다.

    ㅇ 원공국사(圓空國師) 승탑(僧塔) 승묘탑(僧妙塔) (보물 제190호)

    원공국사 승탑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다. 일제시대에 일본사람의 집에 소장되고 있던 것을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전시중이다
    원주 거돈사 터에는 2007년에 복제품을 만들어 세웠는데 원본을 옮길때 지대석 3장은 그냥 놓고 간 탓에 진품 지대석 위에 복제품이 서 있다. 거돈사 터 가장 뒤쪽 높은 곳에 있다
    원공국사 승탑은 8각을 기본으로 하대, 중대, 상대의 기단(基壇) 위에 승탑 몸돌을 얹은 후에 지붕돌과 작은 지붕 모양의 8각 보개와 보주를 얹은 모습이다.
    원공국사 승탑의 기단부. 8각을 기본으로 하대, 중대, 상대로 이루어졌는데 통상 하대와 상대는 대칭적인데 비하여 하대가 상대에 비하여 크고 무거워 보인다

    하대석 8면은 안상(眼象)을 새겼으며 윗부분에 복련을 조각하였는데 겹 꽃잎이 비교적 단순한데 비하여 상대석은 앙련 조각이 2중으로 겹친데다가 다시 꽃무늬를 조각하여 화려하게 활짝 핀 모습을 하고 있다.

    중대석은 아래 위에 테를 두르고 각 면마다 큼직한 안상을 새긴 후, 그 안에는 8부신중(八部神衆)을 양각으로 새겨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원공국사 승탑의 몸돌. 8각 평면의 정면은 자물쇠와 문비를 새겼으며 윗부분에 액자모양의 전액(顚額)을 그려 '圓空國師僧妙之塔(원공국사승묘지탑)'이라고 새겼다
    몸돌의 8면중 앞뒤에는 문비 모양을, 좌우에는 창문 창살을, 나머지 4면에는 4천왕입상(四天王立像)을 새겼다

    8각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가볍게 새기고 추가로 꽃무늬를 장식하였는데 청룡사 터 보각국사 승탑 몸돌 기둥에 용트림을 새긴 것과 비교하여 차분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또한 앞 뒤로는 문비를, 좌우로는 창문을 낸 것도 마치 현실의 집 구조를 보는 듯하며 사천왕상이 지키는 모습은 든든해 보인다.

    그리고 정면 문비 위쪽에 전액(顚額)을 그려  '圓空國師僧妙之塔(원공국사승묘지탑)'이라고 새긴것도 특징적이다. 보통 승탑에는 당호(堂呼)를 새기지 않아 탑비가 없어진 경우 누구의 사리탑인지 알지 못하기 마련인데 몇 글자를 추가하니 이런 걱정이 없어져 다행이다.

    8각 지붕돌은 세심하게 기와골을 구현하였고 막새기와까지 새겨 사실감을 높였다. 그 위로 작은 지붕처럼 보이는 8각 보개(寶蓋)를 얹었는데 끝부분의 귀꽃은 모두 깨어진 상태이다. 거돈사지 현장의 복제품은 귀꽃을 모두 살려 놓았다

    지붕돌을 자세히 보면 아래로 4단의 받침을 표현하고, 그 위에 서까래를 새겼으며 처마는 얇고, 귀퉁이는 들림이 뚜렷하며, 낙수면에 새겨진 기와골 조각은 처마에 이르러 막새 기와의 모양까지 표현하여 목조 건축의 지붕 모습을 충실히 본떴다.

    상륜부는 보륜, 앙화, 보주로 보이는데 거돈사지 현장의 복제품에는 보주에 태극무늬를 새겨 청룡사 터의 보각국사 승탑을 연상케 한다.

    원공국사의 승탑은 고려 전기의 대표적인 8각 사리탑으로 그 모양이 단정하고 아담한 통일신라 탑의 양식을 이어받아 조형의 비례가 좋고 중후한 품격을 풍기며, 전체에 흐르는 조각이 장엄하여 한층 화려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현장 거돈사 터에는 탑비만 있고 승탑은 서울에 있어 원주 지역에서는 (인근 법천사, 흥법사 등의 승탑과 함께) 본래의 자리로 돌려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ㅇ 원공국사(圓空國師) 탑비(塔碑) 승묘탑비(僧妙塔碑) (보물 제78호)

    원공국사 탑비는 원주 거돈사지에 있다. 조금은 흐트러진 지대석위에 귀부와 비신, 이수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데 비신에 비하여 지붕돌이 조금 크고 무거워 보인다

    원공국사 탑비는 ‘태평을축추칠월(太平乙丑秋七月)’, 즉 고려 현종 16년(1025)에 세운 것으로, 당시 ‘해동공자’로 불리던 대학자 최충이 글을 짓고, 김거웅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는 그의 생애와 행적, 그의 덕을 기리는 송덕문이 담겨 있으며 비문에 새긴 글씨는 해서체인데, 중국 구양순의 서법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는 고려시대의 여러 비에 새긴 글 중에서도 매우 뛰어난 것으로 중국에 비교해서도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거북의 머리는 괴수 모양의 험한 인상을 한 용의 머리모양이며, 귀 뒤에 큰 지느러미가 달려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북의 오른쪽 발톱 부분이 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정기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저지른 소행이라고 한다
    거북 등의 귀갑(龜甲) 무늬는 2겹의 정육각형에 불교를 뜻하는 卍 자를 끝을 한번 더 구부려 기하학적으로 그렸으며, 연꽃무늬를 돋을새김으로 번갈아 새겼다. 등 뒤쪽으로 비석 아래에는 임금 王자를 2개 새겨 원공국사가 왕사였음을 나타낸다
    원공국사 탑비의 머릿돌. 구름속을 요동치는 용이 불꽃에 쌓인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매우 사실적이고 화려하다고 씌어 있다. 일견 보아도 비신보다 크고 무거운 느낌이며 불안정해 보인다

    특이하기는 머릿돌 중앙에 전서체로 비석의 명칭을 새기는 네모난 전액(顚額)이 공란이며 비석의 명칭은 그 아래 비석의 몸돌 상단에 전서체로 2줄로 12자를 새겼는데 마모가 된데다가 거리가 떨어져 있어 정확한 식별이 쉽지 않아 아쉽다.

    수많은 선배 답사꾼들이 다녀갔을텐데 비석 명칭 글자의 정확한 새김이 알려지지 않아 유감이며 문화재청 설명에도 누락되어 보완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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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 거돈사 터는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있으며
    네비게이션에 '거돈사지'를 입력하면 검색 된다.

    딱히 주차장은 없으나 절 터 옆 도로에 주차 가능하며
    인근 정산초등학교가 폐교된 자리에 '거돈사 전시관'을 세웠다고 하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문을 연것같지는 않았다.

    청룡사지는 사적지 지정된곳도 아닌데 주차장, 화장실 시설이 훌륭하고 문화해설사가 상주하는데 비하여 사적 제168호 거돈사지는 절 터 정리는 훌륭하지만 부대시설이 다소 미비한 편이다.

    어린 단종이 유배길에 쉬어 간 '단강정'
    청룡사에서 거돈사로 가다보면 531번 국도변에 지금은 폐교된 단강초등학교가 있는데 학생수 감소로 얼마전 폐교된 학교 마당에는 수령(樹齡) 6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하나 있는데 세조에게 쫓겨나 귀양가던 어린 단종이 잠시 쉬어갔던 곳이라해서 단강정이라 부르며 단강초등학교 교목(校木)이자 강원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 하여 강원나무 2호로 지정된 나무가 있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가는 길에 잠시 쉬어갔다는 단강초등학교 교정의 느티나무. 학교가 폐교되어 방치된 상태이다
    정산리 마을 수호신
    거돈사 아래 마을 정산2리와 3리는 조용한 시골마을인데 아직도 곳곳에 동네를 지키는 수호신 석장승을 세워놓고 동제(洞祭)를 지내는듯 하였으며 척사(斥邪)를 상징하는 방사탑(돌탑)등을 세워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폐사지 천년 거목
    거돈사 절 터 서쪽 끝 벼랑에 있는 거대한 천년수(千年樹)도 지금은 깨끗이 정리된 모습이지만 십수년전만 해도 절터는 방치된듯 어지러웠고 저 나무에는 무당들이 걸었음직한 색색의 길고 현란한 천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어 혼자 답사온 경우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던... 한적하면서도 홀로 떨어져 쓸쓸하고 공허한 폐사지의 느낌이 충분한 곳이었다.

    그래서 거돈사지를 '폐허의 미(美)'가 가장 뛰어난 폐사지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 https://band.us/@4560dapsa

    [계 속]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