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숙의 '내 마음 이해하고 보듬기'-14

여러 번 언급했던 것처럼 내 마음 상태를 나타내주는 감정은 표현하면 줄어들고 또 사그라지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감정을 표현한다면, 마음은 가벼워지고 삶 또한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문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내가 느끼는 감정을 상대방에게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겁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은데,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장의 상사일 때는 더더욱 어렵겠지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대방에게 무조건 감정을 표현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먼저 표출을 통해 감정 에너지를 빼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감정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힘이 있는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압력밥솥의 수증기를 빼주지 않으면 폭발하듯이 감정은 의외의 곳에서 터지고 말 겁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중요한 미팅을 마치고 참담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 가장, 30세가 넘었지만 허구한 날 집에서 빈둥거리는 아들이 자신이 들어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면, 이 아버지의 심정이 어떨까요?

당연히 회사에서 미팅 때 참았던 감정이 아들에게로 전이되어 아들에게 불똥이 튀겠지요. 그러면 아들은 아들 입장에서 평상시와 다름없는 자신의 행동에 감정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을 겁니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무조건 표현하기보다 우선은 나 자신이 느끼는 감정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차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를테면 “내가 지금 몹시 화가 나는구나”라고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주의와 관심을 준 것이 되기 때문에 화를 다스릴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여유가 생겨나지요. 이때 자신이 느끼는 감정 상태가 보통 수준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생각만 해도 기분이 바뀌는 것을 경험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뚜껑이 열린다’라는 표현처럼, 나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아주 강렬할 때입니다. 이럴 때는 감정 에너지를 빼내 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예컨대 크게 심호흡을 한다든지 노래를 부른다든지 운동 특별히 권투나 라켓으로 치고받고 하는 운동을 한다든지 아니면 베개나 곰 인형 같은 것을 갖다 놓고 내리치며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것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표출할 때 속에서 마구 올라오는 혹은 억누른 감정 에너지가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울음 요법’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종교가 있다면 울면서 기도를 하는 것도 감정 에너지를 빼내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실례로 의학저널에 의하면 영국 찰스 황태자의 아내였던 다이애나가 죽고 나서 영국 국민의 우울증 환자 중 많은 사람이 치료되었다고 합니다. 이유인즉슨 다이애나는 온 국민의 사랑을 유난히 받았기 때문에 전 국민이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는데, 그때 자신들의 내면에 억눌려있던 감정 에너지가 울음을 통해 빠져나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슬플 때 슬픔을 표현하면 슬픔은 사라지지요. 문제는 슬플 때 슬픔을 표현하지 않고 억압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억누른 감정 에너지가 어느 정도 빠져나가면 이제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하게 되지요. 그뿐만 아니라 내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도 알아차릴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비로소 내가 느낀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할지 말지를 결정할 차례입니다.

이때 상대방에게 직접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대신 내가 신뢰할만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푸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억눌린 감정을 풀어내지 못하고 계속 머릿속으로 곱씹는 것은 가장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정은 곱씹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통해 위로와 공감을 받을 때 풀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중년 신노년의 마음공부' 저자 강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