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저녁 6시

    입력 : 2021.02.17 16:03 | 수정 : 2021.02.18 10:16

    모친과 매일 저녁 6시가 땡 하면 통화를 한다. 정확히 6시라는 시간을 정해 놓고 할 수 있는 것은 회사 통근버스 덕택이다. 매일 회사 통근버스로 퇴근을 하는데 회사 정문에서 오후 5시 20분에 출발한 버스는 정확히 6시가 되면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에 도착한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5시 55분에서 6시 사이다. 약간의 시간 차이는 신호를 잘 받고, 못 받고의 영향이다.

    도착 후 통근버스에서 내리면 거의 6시가 된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모친에게 전화를 드린다. 모친과 이렇게 매일 일정한 시간에 전화를 드리는 게 어느새 1여 년의 세월이 지났다. 2020년 1월초부터 시작했다. 이렇게 매일 전화를 하게 된 계기는 모친이 75세 되는 해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병을 앓으면서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올해로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옛 속담에 의하면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고 했다. 그만큼 눈의 중요성이 옛날부터 강조되었다. 모친이 눈이 보이지 않으니 눈을 통해 사물을 보고 기억하는 능력이 떨어지면서 치매 증세 초기 현상도 보이기 시작했다. 불과 몇 분 전에 당신이 얘기했던 내용도 기억하지 못했다.

    걱정되어 병원에 모시고 진단받은 결과 다행히 초기이기에 일단 약으로 관리를 하면 치매가 악화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했다. 아직 현대 의학으로도 치매를 완전히 완치할 수 있는 약은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얘기였다. 그럼 약 외에 치매 증상을 조금이라도 진행을 늦출 방법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의 답변은 대화를 자주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했다.

    모친께서 친구분들과 비교해 기억력이 좋다는 말을 가끔 들었을 때 당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누님이었다. 누님이 시골에서 서울로 시집을 오면서 일가, 친척 없는 서울에서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모친과 하루에 한 시간여를 매일 통화를 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누님이 남편과 애들 뒷바라지로 전화를 한동안 자주 못 했다.

    세월이 흘러 모친이 앞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혼자 외출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젠 모친께서 외로움을 달래고자 누님께 전화하게 되었다. 그렇게 모친과 누님과 매일 이어진 전화 통화가 벌써 10년째 접어들었다. 결국 이렇게 매일의 통화로 대화를 했던 것이 모친의 치매 증상을 더디게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누군가와 매일 전화 통화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 통화 시간이 한 시간여 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모친의 건강을 위해 헌신했던 누님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가끔 누님이 모친과의 전화 통화에 대한 어려움을 한 번씩 호소하는 것을 들었지만 한 쪽 귀로 흘려들었다. 나의 일로 느끼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우연히 TV에서 먼 거리에 있는 80대 모친을 위해 60대 아들이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대신에 매일 전화를 하면서 모친의 건강을 회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순간 왜 나는 저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오랜 회사 경험으로 전화 통화는 반드시 어떤 목적이 있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머리는 각인되어 있었다. 목적이 없더라도 단 1분이라도 그냥 하면 되는 것을.

    그런 계기로 해서 2020년 1월 초부터 모친에게 매일 저녁 6시 정각에 전화를 드리게 되었다. 통화 시간은 짧게는 1분, 길어도 5분을 넘기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전화를 드리는 것이 아니고 일상적인 대화로 드리는 전화였기 때문이다.

    사실 매일 전화를 하다 보니 딱히 할 말도 많이 없었다. 거의 매일 같은 내용이었다. 밥은 드셨나요? 몸은 좀 어떠신가요? 지금 뭐 하세요? 날씨는 어떠신가요? 이렇게 정해진 레퍼토리를 하고 나면 더 할 말이 없다. 사실 별거 아닌 몇 마디 말이지만 모친에겐 항상 간절히 기다리는 전화였다. 필자가 가끔 바쁜 일로 이 시간에 전화하지 못하면 모친께서 바로 전화가 온다. "오늘은 어디 아프나? 왜 전화가 없노?" 라고.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앞으로 언제까지 이렇게 매일 전화를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앞을 볼 수가 없고 치매와 각종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모친이기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한 번씩 가슴이 미어져 온다. 누구나 한 번은 겪는 일이고 언젠간 나에게도 닥쳐올 일이다. 비록 몇 마디 말이지만 살아 계시는 동안 매일 전화를 드려야겠다. 이것이 당신의 막내아들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