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숙의 '내 마음 이해하고 보듬기'-16

  • 강현숙

    입력 : 2021.02.23 11:12

    (16회) ‘관계 속에서 경계선을 지킨다는 말은?’

    살아가면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만큼이나 진하고 애틋한 것도 없을 겁니다. 요양원에 갔다가 98세 된 어머니가 희미해져 가는 정신으로 아들딸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뭉클했다는 어느 여성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너무 지나치거나 왜곡되기도 하는데, 필자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몇 년 전에 한 학생이 1시간 늦게 수업에 들어왔는데, 엄마랑 함께 온 겁니다.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본인 실수로 아침에 딸을 깨우지 못했으니 지각을 좀 면해달라는 겁니다. 대학에서 3시간짜리 수업이면 출석 점수가 보통 3점에 해당하니까 1시간 지각하면 1점씩 깎이지요. 당황스럽고 곤란했습니다. 학생 엄마의 모습이 애처롭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아니 초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생인데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느 60대 초반의 여성은 요즘 열심히 운동하신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건강’, 맞습니다. 그런데 건강을 잘 유지해야 할 이유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몸이 건강해야 아들딸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봐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물론 그분의 자녀는 앞으로 결혼을 하겠다는 말도 또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엄마가 꼭 돌봐주어야 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관계 속에서 꼭 생각해 보고 또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바로 ‘경계선을 지키는 일’입니다. 살아가면서 경계선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내 집과 옆집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여러 가지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겁니다. 물론 가족끼리도 마찬가지겠지요. 경계를 분명히 하지 못해서 서로 아무 때나 노크도 없이 들락날락한다면 문제가 될 겁니다.

    이처럼 물리적인 환경에서도 경계선이 분명해야 하듯이 인간관계에서도 심리적인 경계선이 명확해야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우리는 관계 속에서 특히 자녀와의 관계 속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심리적 경계선을 마구 넘나들 때가 많습니다.

    이런 사례가 있어요. 이분은 자녀들이 어렸을 때 친정엄마가 오셔서 많이 도와주셨답니다. 손자를 봐주시면서 집안일도 도와주시고 반찬도 만들어주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속상한 일이 있었다고 해요.

    뭐냐 하면 친정엄마가 오시면 부엌의 그릇 정리나 옷장 정리를 친정엄마 방식으로 다 바꿔 놓으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그릇은 여기다 두고 써야 편리하고 싱크대 서랍은 이렇게 정리하고 옷도 이 서랍장에는 이런 옷들을 넣고~~”라고 하시는데, 엄마 식으로 정리된 걸 보는 순간 친정엄마의 노고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당장은 화가 나서 감정 조절이 잘 안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물론 이 분의 친정엄마 말씀이 틀리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일은 딸의 영역이고, 딸이 그것까지 부탁을 드린 것은 아니지요. 아마도 친정엄마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딸이 화가 났던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경계선’ 즉 물리적 경계선만큼이나 심리적 경계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데, 심리적 경계선이란 ‘내 감정과 네 감정이 다르고 내 생각과 네 생각이 다르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우리는 다르잖아요. 한 가족 내에서도 아버지는 두부와 함께 돼지고기를 굵직하게 썰어 넣은 김치찌개를 좋아하고 자녀들은 참치를 넣거나 햄을 넉넉히 넣은 김치찌개를 좋아하듯이,  가족이라 할지라도 서로 취향부터 시작해 모든 면에서 다릅니다.

    지금부터라도 “아, 너는 그렇구나. 그렇게 느끼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구나.”하고 매번 되뇌면서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상대방이 나와 생각이 다르고 또 느끼는 감정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갈 때, 우리는 심리적 경계선을 지키며 서로를 존중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신중년 신노년의 마음공부' 저자 강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