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묵의 폐사지 답사] (19) 홍천 물걸리 절터(寺址)

    입력 : 2021.04.23 14:00

    대관령을 넘어 영동(嶺東) 지역의 강릉 굴산사 터와 신복사 터를 답사후 위로 올라가 양양 진전사 터와 선림원 터를 답사하였다. 선림원 터를 보고 구룡령을 넘어 다시 내륙쪽으로 오면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에 절 터가 하나 있다.

    지금은 양양고속도로가 뚫려 교통이 편해졌지만 그 전까지만해도 홍천에서 내촌면 - 상남면을 지나 조침령을 넘어 양양으로 넘어가는 불편한 산골이었는데 이곳에 절 이름은 몰라 그저 '물걸리 사지(寺址, 절터)'라고 부르는 곳이 있으니 보물 5점이 있어 강원도에서 한 곳에 보물이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 홍천 물걸리 절터(寺址) (강원도 기념물 제47호)
    절 이름을 알 수 없으나 전해오는 말로 홍양사(洪陽寺)터 라고 한다. 1967년 4월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 1구(아래 사진 참조)를 비롯하여 고려 철불 조각 4점(아래 사진 참조)이 발견되었으며 4년뒤 발굴 조사에서 석조여래좌상과 비로자나불좌상, 불대좌, 불대좌및 광배, 삼층석탑이 발굴되어 1971년 5점을 보물로 지정하였다.

    또한 발굴과정에서 각종 기와조각과 조선시대 백자조각 등이 발견됨으로써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절이 유지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1982년 현 보호각을 새로 짓고, 불상을 옮겨 보존하고 있는데 하나의 절에 4구의 대형 불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절의 규모가 상당히 컸던 것으로 보이며 주변에는 아직도 많은 석재들이 흩어져 있고 사유지로 둘러싸여 충분한 발굴이 되지 않은듯 하니 향후에라도 추가적인 발견으로 많은 사실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해본다.

    <홍천 물걸리(物傑里) 절터 전경. 넓지 않은 공터 한가운데 3층석탑이 서 있고 왼쪽 보호각 건물 안에 석불 2구와 좌대 2점이 모셔져 있는데 이 5점이 모두 보물이다.>
    물걸리 삼층석탑 (物傑里 三層石塔) (보물 제545호)
    <물걸리 절터 삼층석탑 (보물 제545호). 이중 기단에 삼층인 전형적인 신라 석탑으로 상륜부는 남아있지 않고 노반만 얹혀있다.>

    이곳 절터에서 유일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상륜부가 없어지고 기단 갑석(덮개돌) 일부가 훼손된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양호한 모습이다.

    두툼한 네모난 지대석 위에 2중 기단을 올렸는데 하층, 상층 기단 모두 모서리 기둥(우주)과 가운데 기둥(탱주)을 하나씩 새겼으며 2, 3층은 1층에 비하여 절반이하로 급격하게 작아져 전체적으로는 탑을 안정되어 보이게 한다.

    각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우주)만 새겼으며 지붕돌의 경우 1, 2층은 층급받침이 5단이나 3층은 4단이고 처마 끝이 들려져 제법 날렵해보인다.

    물걸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 석조대좌(보물 제543호), 석조대좌 및 광배(보물 제544호)

    <보호각 안에 모셔진 4점의 대좌와 석불들. 왼쪽부터 석조대좌와 광배(보물 제544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 석조대좌(보물 제543호)>
    ㅇ 물걸리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보물 제541호)
    <왼쪽에서 2번째 모신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41호),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얼굴은 마멸이 심한 상태이며 옆에 있는 비로자나불좌상에 비하여 작은 크기이다.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으며 광배는 없다.>
    불상의 머리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은 나발(螺拔)로 보이나 상투 모양의 솟아오른 육계는 없어 보인다. 얼굴 표정도 살피기 어려운데 백호 흔적은 남아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친 통견이며 가슴에는 매듭을 지은 띠가 보이고 자연스럽게 늘어진 옷 주름을 표현하였다.
    <석가여래불상 좌대는 왼쪽의 광배만 있는 대좌와 비슷한 모양으로 팔각받침돌 위에 복련 하대석과 입상불을 새긴 8각 중대석, 앙련 상대석의 구조이다.>

    팔각받침돌의 8면에는 각각 안상을 큼직하게 새긴 후 전설의 새 가릉빈가와 향로를 조각하여 눈길을 끈다. 승탑의 몸돌이나 지붕돌 등에 새겨진 가릉빈가는 보았지만 연화대좌 받침돌에 새긴 가릉빈가는 드문 일이다. 맨 오른쪽 석조대좌의 받침돌도 이와 비슷하다.

    큼직한 두겹 연꽃잎을 복련으로 새긴 하대석은 8각의 각진 곳마다 귀꽃을 돌출시켜 새겨 멋스럽고 8각 중대석은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을 새겼으며 각 면마다 입상을 새겼는데 보살이나 불상으로 보이나 문화재청 설명에는 팔부중상이라고 하니 조금 혼란스럽다.

    상대석은 볼륨감이 풍성한 연화 대좌(臺座)인데 앙화로 된 연꽃잎을 서너겹 포개어 새겼는데 그 안에 활짝 핀 연꽃무늬가 새겨있어 아름답다.

    ㅇ 물걸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石造毘盧遮那佛坐像) (보물 제542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42호). 수인이 지권인어서 비로자불인줄 알겠는데 일반적인 지권인의 반대(왼손으로 오른손을 쥔)여서 역지권이라고 한다.>

    불상의 머리는 왼쪽의 석조여래불이 마멸되어 불분명한데 비하여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은 나발(螺拔)이 뚜렷하고 상투 모양으로 솟아오른 육계가 분명하다.

    법의는 양어깨를 걸친 통견인데 전체적으로 흘러내리는 주름진 형태가 옆에 있는 석조여래불과 비슷하나 지권인을 모으고 있어 가슴에 매듭은 보이지 않으며 양 어깨로 옷자락 몇 겹을 접어서 얹은 것이 다르다.

    비로자나불의 수인인 지권인을 반대로 취한 역지권인인데 가부좌로 앉은 자세도 왼발을 위로 얹은 항마좌로 옆에 있는 석조여래불이 오른발을 위로 올린 길상좌(또는 연화좌)를 취한 것과 대비된다.

    <8각 연화대좌는 다른 대좌들과 달리 8각 받침돌 없이 바로 하대석을 펼쳤는데 전체적으로 큼직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보호각 안 왼편에 커다란 8각 받침돌 일부가 조립되어 있는데 이 비로자나불의 하대받침돌인지 궁금하다.>

    커다란 두겹의 연꽃잎들을 복련으로 새긴 하대석은 귀꽃이 없이 평범한 모습이며 조금 낮은듯한 중대석은 8각의 모퉁이에 기둥을 새긴후 각 면마다 향로와 공양상, 보살상, 악기연주상 등을 다양하게 새겼다.

    상대석은 역시 볼륨감이 풍성한 연화 대좌(臺座)인데 앙화로 된 연꽃잎을 서너겹 포개어 새겼는데 그 안에 활짝 핀 연꽃무늬가 새겨있어 아름답다.

    ㅇ 물걸리 석조대좌 (石造臺座) (보물 제543호)

    <보호각 맨 오른편에 있는 불대좌(보물 제543호). 불상은 없이 대좌위에 광배만 남아 있는데 대좌는 완전하나 광배는 일부가 깨어졌다.>

    두광은 대부분이 깨어지고 둥근 모습의 아래쪽만 남아 있다. 전체를 둥글게 감싸고 있는 신광은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쪽은 대체로 외곽까지 남아있으나 오른쪽은 외곽이 많이 깨어져 아쉽다.

    커다란 신광 바깥쪽에는 일정하게 반복되는 불꽃무늬를, 2겹선 안쪽으로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두광은 아래쪽에는 구름무늬를 위쪽(안쪽 원)으로는 연꽃무늬를 화려하게 조각했다.

    <대좌는 석조여래좌상 대좌와 비슷하게 8각 받침돌 위에 하대, 중대, 상대를 올렸는데 8각 받침돌의 각 면에는 안상을 파고 그 안에 향로와 가릉빈가를 새겼으며 두겹 복련 연꽃잎을 새긴 하대석은 각진곳마다 귀꽃은 없으나 뾰족하게 찝어올려 멋을 부렸다.>

    8각 중대석은 석조여래좌상 중대석과 같이 8면의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기고 각 면에는 두광을 갖춘 보살입상들을 새겼다.

    상대석은 역시 볼륨감이 풍성한 연화 대좌(臺座)인데 앙화로 된 연꽃잎을 서너겹 포개어 새겼는데 그 안에 활짝 핀 연꽃무늬가 새겨있어 아름답다.

    ㅇ 물걸리 석조대좌 및 광배 (石造臺座 및 光背) (보물 제544호)

    <보호각 맨 왼쪽에 있는 석조대좌 및 광배 (보물 제544호). 온전한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으며 완전한 배(舟) 모양의 광배는 가운데에 연꽃무늬와 덩쿨무늬가 새겨지고 가장자리에는 불꽃모양이 섬세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나뭇잎(葉) 모양, 또는 배(舟) 모양의 전체 광배는 날렵해보이는데 광배의 중앙에는 두광의 중앙이 되는 둥근 원을 그리고 주변으로 활짝 핀 연꽃잎을 둘러 새겼다.

    나머지 부분에는 구름무늬와 불꽃무늬를 채웠으며 둥글게 돌아가며 화불(化佛) 9구를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였는데 각기 다른 수인을 하고 있다고 하나 육안으로 또렷하게 식별되지는 않는다.

    <대좌(臺座)는 보호각 안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이나 맨 오른쪽 대좌와 비슷하게 8각 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 하대, 중대, 상대석을 받쳤는데 8각 받침돌 각 면에 안상을 새겼으나 안상안에는 (다른 것들 처럼) 가릉빈가나 향로등을 새기지 않고 비워 놓았다.>

    하대석의 연꽃과 귀꽃 새김은 바로 옆에 있는 석조여래좌상 좌대와 비슷하며 중대석의 8면에는 (다른 것은 모서리 기둥을 세우고 네모진 평면에 조각을 하였으나) 각 면마다 둥근 지붕창 형태로 파내고 그 안에 불, 보살과 신장상등을 다양하게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였다.

    상대석은 역시 볼륨감이 풍성한 연화 대좌(臺座)인데 앙화로 된 연꽃잎을 서너겹 포개어 새겼는데 그 안에 활짝 핀 연꽃무늬가 새겨있어 아름다운데 보호각 안에 있는 대좌 4개의 상대석은 거의 비슷한 모양을 띄고 있다.

    <물걸리 절터 한쪽에 모아놓은 석재들. 장대석, 주춧돌 등인데 석재 크기를 보면 대략의 절집 규모를 추정해 볼 수 있는데 엄청난 크기에 놀라게 된다.>
    <물걸리 절 터에서 발굴된 금동여래 입상과 대좌./ 사진출처=국립춘천박물관>
    <물걸리 절 터 금당터에서 발굴된 철불편(鐵佛片) 4조각./ 사진출처=국립춘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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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군(郡)이며 높은 산악지형으로 둘러쳐진 곳이다. 물걸리 절터를 둘러보고 홍천읍쪽으로 나오다보면 공작산 아래 천년고찰 수타사(水墮寺)가 있고 읍내 홍천미술관 앞에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보물 제540호)과 희망리 삼층석탑(보물 제79호)이 있고 읍내 하천변에 희망리 당간지주(보물 제80호)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 만하다.

    홍천미술관은 옛 홍천군청과 읍사무소 등으로 사용되다가 홍천미술관으로 재개관하였는데 강원도내 유일하게 원형을 가진 군청사로 등록문화재 제108호로 등재되었으며, 옆에 있는 홍천성당은 6.25전쟁으로 불타 없어져 군인들이 다시 지어주었다고 하는데 50년대 석조건축의 모습을 간직하여 등록문화재 제162호로 등재되었다.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보물 제540호). 원래 두촌면 괘석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폐사되고 남아있는 것이 없어 이곳으로 옮겼다. 드물게 사자 4마리가 받친 석탑인데 사자들 중앙에는 바닥과 천장에 연꽃 받침대가 있어 불상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희망리 삼층석탑(보물 제79호). 홍천강변에 당간지주(보물 제80호)가 있어 그 근처가 절 터였을것이나 이 삼층석탑은 미술관 앞 야외전시장에 놓여있다.>
    <희망리 당간지주(보물 제80호). 홍천강변 옆 민가에 서 있다.>

    [계 속]

    내나라 문화유산 답사회 : https://band.us/@4560dapsa

    *사진제공=김신묵 시니어조선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