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숙의 '내 마음 이해하고 보듬기'-25

  • 강현숙

    입력 : 2021.04.27 10:22 | 수정 : 2021.04.27 10:29

    (25회) ‘반동형성(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예전에 친구들 모임에서 한 친구가 상견례에 대해 이야기를 했죠. 사위 될 사람도 마음에 들고 사돈이 될 분들도 마음에 들었는데, 한 가지 너무 속상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인즉 딸 때문에 몹시 화가 났다는 건데, 상견례를 하기 며칠 전부터 “엄마,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가만히 계세요.”, “말실수하시면 안돼요.”하면서 입단속을 얼마나 시키던지 설레기는커녕 사돈 될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마음이 상해버렸답니다.

    그 순간 한 친구가 “그랬어” 하더니 재미있다는 듯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지요. 그러자 옆에 있는 친구들도 덩달아 크게 웃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이야기가 다른 주제로 바뀌었는데, 저는 그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던 친구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박장대소하며 웃는 모습이 그 상황에서는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렇잖아요. 이 친구는 딸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말조심을 하라는 건지, 게다가 상견례 장소에서까지도 자신에게 자꾸 눈치를 주는 표정을 지어서 마음이 무척 상했다고 표현을 했는데도 박장대소하며 웃는 모습이 좀 그랬습니다.

    사실 이 친구는 딸이 대학원에 들어간 이후로 많이 배우지 못한 엄마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딸과의 관계가 썩 좋지는 않았는데, 이 모임은 서로를 잘 아는 어린 시절 친구들 모임인지라 맘 놓고 속 얘기를 하려고 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한 친구의 박장대소로 그만 흐지부지되어버리고 말았지요.

    제가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박장대소하고 웃었던 친구는 평상시에도 크게 잘 웃는 친구였는데, 그러고 보니까 이 친구는 언제나 웃는 모습만을 보여주었지요. 물론 이 친구도 마냥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화나고 슬플 때도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래서인지 평상시에는 이 친구를 유쾌하고 긍정적인 성격의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모임에서는 그런 모습이 많이 어색하고 또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런 행동을 설명하는 심리이론이 있는데, 바로 ‘반동형성’이라는 겁니다.

    좀 생소한 단어이지만 ‘반동형성’이라는 말의 뜻은 자신이 느끼고 바라는 것과 정반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용납될 수 없을 것 같은 자신의 어떤 감정이나 충동을 남들이 알지 못하게 감추려고 하니까 본래의 마음과는 정반대로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남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감정이나 충동이 올라올 때 그것을 억누르기 위함인데, 이를테면 어떤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울 때 그 미운 마음과는 반대로 그 사람을 칭찬하는 말과 행동을 의식적으로 함으로서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이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막으려는 겁니다. 이렇게 자신의 본래 마음과 정반대되는 말과 행동을 하면, 본래의 마음이 드러날 때 느낄 수 있는 양심의 가책이나 마음속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 속담 중에도 “미운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준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속담의 뜻은 보기 싫고 미운 아이가 있을 때 그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큰일이 날 것 같으니까 그걸 감추기 위해 속마음과는 정반대로 떡을 하나 더 준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렇게 자신의 본래 마음과 정반대되는 말과 행동을 자꾸 하다 보면 누군가를 향한 적대적 감정이나 충동, 혹은 좋지 않은 생각이 의식으로 떠오르는 것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나온 말과 행동이 아니므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색하고 또 지나치다고 느껴질 겁니다.

    제가 얼마 전에 친구의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조문을 하러 갔는데, 그 친구의 올케인 며느리가 너무너무 슬프게 그것도 크게 소리를 내어 우는 겁니다. 물론 시어머니 살아생전에 서로 어떻게 지냈느냐에 따라 그렇게 애절하게 울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제가 그 친구에게 들은 것을 떠올려보니, 며느리의 행동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어떤 동아리나 모임에서 좋아하는 이성이 생겼을 때 그 좋아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싫어하는 것처럼 행동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많이 어색하게 느껴져서 남들이 다 알아차리는 경우도 흔하지요.

    그러니까 친구가 딸 때문에 마음 상했던 일을 얘기하는데 그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고 상황에 맞지 않는 웃음으로 그 분위기를 바꾸어버린 친구는 어쩌면 그런 비슷한 마음의 힘든 일을 겪었을 때, 그 마음을 표현하기 너무 막막해서 그냥 크게 웃는 것으로 힘든 상황을 피했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모임에서 어색한 상황을 연출했던 거고요.

    이렇게 반동형성은 속에 있는 것과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다른데요, 그러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겠습니다.

    -'신중년 신노년의 마음공부' 저자 강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