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에세이] 우리 동네 이발소 자랑

    입력 : 2021.07.08 16:19

    집 근처에 자주 다니는 이발소가 있다. 이것은 분명 행운이고, 또 고맙기 그지없다. 동년배로 보이는 이발소 주인은 머리 깎기, 면도, 염색, 머리 감기, 청소 등을 혼자 한다. 남성 전용 이발소나 미장원보다 머리 깎는 시간도 훨씬 길다. 대기자가 몇이든, 한 사람 깎는데 최소 20분 넘게 걸린다. 그는 유명 호텔 상호 밑에 자기 이름이 새겨진 옛 직장의 흰 가운을 입는다. 그럼에도 새로운 동네 이발 문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어찌 자랑거리가 아니랴!

    평소 우리는 정치문화, 경제문화, 예술문화, 환경문화, 군사문화 등을 너나없이 사용한다. 아마 다양한 활동이 특별한 목표 지향점을 향하는 집단적 행동의 양상이라 보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편, 음식문화, 자동차문화, 주택문화, 게임문화, 인터넷문화 등 또한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이는 서로 필요에 의해 실시간 체험의 반응으로 일어나는 즉각적 행동의 현상이라 하겠다.

    어느 편이든 새로운 현상에 문화란 이름이 붙은 것을 보아, 어떠한 경우든 그 변화에 알맞게 적응해 살아가기에 또한 문화도 변화하는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것에 적응하면서 모든 구성원이 공통적인 학습을 통해 익히고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마다 생활이나 행동의 양식이 잘 정리된 사회를 선진화되었다고 말한다.

    사진제공=김봉길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문제는 어떻게 정리되어야 하는가이다. 누가 정돈하는데 손을 들겠느냐다. 그 하나의 사례를 남기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시행착오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교차하면서 매듭 매듭이 엮어지게 되는 것.

    그렇다면 과연 누가 먼저 희생을 통해 그 나름의 사례를 남기겠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의 연속이 그 시대마다 사조와 사상이란 이름으로 그 출구를 만들곤 하였던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실이다. 지금 누가 먼저 앞장서서 자신의 것을 내놓는 것이 순서일까?

    물론 희생에 순서는 없다. 우리 동네 이발소 주인처럼 그냥 내가 좋아서 행동으로 매듭을 보이면 된다. 혹자는 공직자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물론 자본가들이 더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도 한다. 아니, 정치가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이도 있다. 혹은 이들 반대편에 있는 대중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도 한다.

    당연히, ‘누가 먼저 바뀌어야 하느냐?’라는 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자기 자신이라고 말이다.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하는데, 그것을 알고는 있는데, 내 것을 내놓는 일이라는 데서 멈칫거린다. 문제는 이 ‘내 것’이라는데 있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시간을 내놓아야 함을 뜻한다.

    내 시간을 누구에게 준다는 것은 누구를 돕는다는 뜻이다. 그것도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이다. 새롭고 듣기 좋은 사례를 남기기 위한 내 스스로의 변화는 나 혼자만 알고 하는 일이 중요하다. 물론, 누가 알면 어떠하랴.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이면 되는 것이니.

    우리 동네 이발소 주인이 이발⦁염색⦁머리감기 등으로 받는 이발 요금은 시중의 1/3 수준이다. 나머지 비용은 그가 좋아서 희생하는 그의 시간이요, 이것이 곧 자원봉사 행위다. 이 비용은 아는 사람만 안다. 그의 이발 솜씨를 보면. 그는, 필자처럼 말로만 문화의 뜻을 설명하기보다, 묵묵히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