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봉숙의 '내 마음과 손잡고 걷기'-14

  • 차봉숙

    입력 : 2021.09.07 10:28 | 수정 : 2021.09.07 10:32

    (14회) 다름 인지 감수성

    우리나라 전체 결혼 중에서 다문화 결혼의 비중은 10%가 넘습니다. 이웃에서 외국인 며느리, 외국인 사위를 흔히 볼 수 있고, 공장에서, 농장에서, 요양원과 각종 사업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력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죠. 우리는 현재 다문화 사회에서 다양성의 혜택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의 조부모들은 손주들 앞에서 단일민족임을 자랑삼는 일이 없겠지만 시니어 세대에서는 여전히 단일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민족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부부관계에서도 단일성을 추구하는데요, 그러한 생각이 반영된 것 중의 하나는 ‘부부일심동체(夫婦一心同體)’입니다. ‘부부일심동체(夫婦一心同體)’라는 말에는 반쪽과 반쪽이 만나 합체하여 하나가 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상적인 말로 들리지만 결혼해서 좀 살아본 사람이면 이 말이 허상이라는 걸 곧 알게 되죠. 서로 다른 인격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꼭 그럴 필요도 없어요. 다른 걸 굳이 똑같이 만들려면 많은 갈등과 분란이 생기게 마련이니까요. 부부는 결혼 전에도 ‘이심이체(二心二體)’ 였고 부부가 된 후에도 마땅히 ‘이심이체(二心二體)’여야 합니다. 젓가락 같은 사물은 똑같은 것이 모여 한 쌍을 이루지만 사람은 서로 다른 개체가 서로의 다름을 수용해 가며 조화로운 짝을 이루어 갑니다. 조화로운 관계는 똑같이 되기 위해 서로의 다름을 중화시키지 않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오히려 강점으로 받아들이고 각자의 특성을 키워주는 거죠.

    사진제공=차봉숙

    배우자가 나의 부족한 반쪽을 채워준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쉘 실버스타인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서>라는 동화는 이 빠진 동그라미가 주인공입니다. 동그라미는 천신만고 끝에 잃어버린 자신의 조각을 찾아서 완전한 동그라미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진정한 자신의 일부를 찾아 다시 여행길을 떠나게 됩니다. 이 이야기처럼 나의 부족한 반쪽이 되는 배우자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사람은 각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여서 온전하게 나를 채워 줄 조각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을 수 없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배우자가 아닌 내 안에서만 찾을 수 있죠. 부족한 사람끼리 만나 각자 부족한 부분을 옹글게 채워가도록 서로 돕고 의지하는 관계가 배필입니다.

    사람은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다름을 배우지 않으면 수십 년을 같이 살아도 모르는 남입니다. 배우자가 날 몰라 준다고 섭섭해하기 전에 나는 상대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질문해 볼 필요가 있어요. 배우자가 독심술사도 아닌데 자신이 원하는 걸 몰라준다고 ‘그걸 꼭 말해야 아냐?’고 핀잔을 줍니다. 내 속도 모르는데 남의 속은 더 모르죠. 뭘 원하는지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당연하니 모르면 물어보고 물어보면 정확하게 말해 줘야 합니다.

    존 그레이는 <화성남자와 금성여자를 넘어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개인적인 관계에서 서로의 차이를 지지해 주기 위한 통찰을 얻지 못하면 세계적으로 사회문제가 증가하는 추세를 뒤집지 못한다. 요즘은 남녀가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발견하여 전통적인 화성인과 금성인의 역할을 뛰어넘는 시대이므로 그 어느 때보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각자의 욕구도 다르며 각기 다른 지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부부가 성별의 차이를 넘어서 각 개인의 다름을 서로 잘 알고 그에 맞는 지지를 주고받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런 점에서 25년 전에 썼던 그의 전작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화성에서 온 그 남자, 금성에서 온 그 여자>로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남편들을 보편적인 화성인의 속성으로, 아내들을 금성인의 속성으로 총칭하는 것을 넘어서 제각기 독자적인 자기만의 별에서 온 고유한 존재로 봐야 하니까요.

    서로의 다름을 색다르게 볼 수 있는 ‘다름 인지 감수성’이 있어야 부부의 세계가 평화롭습니다.

    다름을 틀린 것으로 보면 우열이 생기고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갈라집니다.
    다름은 경이로움을 가지고 새롭게 배우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름을 이해하면 서로 비교하지 않습니다
    다름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다양성입니다
    다른 것을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다른 그대로 존중합니다.
    다름은 분열을 가져오지 않아요, 각기 다른 조각들이 모여 큰 퍼즐을 완성합니다.
    다름에는 이유가 있어요, 다 다른 쓰임으로 서로 돕고 살아요
    서로 다른 형질 때문에 인류가 지금껏 살아남았으니 달라서 다행입니다.


    차 봉 숙 (무용동작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