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봉숙의 '내 마음과 손잡고 걷기'-15

  • 차봉숙

    입력 : 2021.09.14 10:29 | 수정 : 2021.09.14 10:33

    (15회) 아버지의 곰인형

    뭔가 부자연스럽거나 지나치다 싶은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접근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러한 행동은 완전히 반대로 놓고 볼 때 종종 상상도 못했던 이유가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본래의 마음과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숨기고 싶은 속마음이 들키지 않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나 봐요. 이런 행동은 부지불식간에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봉사왕’이라고 부를 때, 우리 세 자매는 아버지를 ‘봉사광’이라고 했어요. 아버지는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일이라면 언제든 어디든 만사를 제치고 열심이셨죠. 아버지는 기술 좋은 전기공이셨지만 봉사직이 차라리 본업인 것 같았어요. 집에 오실 때는 직장일과 봉사일로 늘 파김치가 되셨어요. 우리를 방치하진 않으셨지만 당신의 의지와는 달리 우리들에게 곁을 내줄 여력이 없으셨죠. 우리보다 더 약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을 더 쓰시는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서운하고 서러운 마음 또한 늘 쌍으로 붙어 다녔어요.

    평생 약골이셨던 엄마는 한밤중에도 사람 돌보는 일로 뛰쳐나가시는 아버지를 면전에서 탓하지는 못하셨어요. 딸들이 웬만큼 자라 엄마를 돌보기 전까지 극진한 돌봄을 베풀었던 남편에게 빚진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병이 있던 엄마와 살림부터 차리고 엄마 병 수발을 하셨거든요. 도가 넘는 아버지의 봉사일에 대해 대놓고 불평하지 못하던 엄마는 ‘너네 아빠, 해도 너무 한다’는 말을 우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되뇌셨죠.

    술, 담배도 안 하시고 무엇보다 봉사일을 열심히 신나게 하셔서 아버지는 치매와는 상관이 없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치매이신 거예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치매는 급속히 악화됐어요.

    얼마 전 아버지가 조카의 커다란 곰인형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셨을 때, 우리는 옛날 일이 생각나서 아버지가 다시금 야속했죠. 아직 인형놀이 할 나이의 우리에게 미리 물어보지도 않고 우리의 인형들을 몽땅 보육원 아이들에게 갖다 준 일이 떠올라서요. ‘이제는 곰인형이라도 돌보시려나?’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방문을 열고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못 볼 걸 본 듯 우리는 다 허걱 했어요. 커다란 곰인형을 바닥에 놓고 몸을 웅크려 그 품에 안겨 계신 아버지. 이제껏 상상도 못해 본 기이한 그 모습에 누구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한평생 남을 돌보기만 했던 아버지. 사람들에게 자신의 품을 내주기만 했던 아버지
    느닷없이 드러난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에 우리는 한동안 온몸이 얼어붙었어요
    일찍이 부모를 잃고 돌봄을, 도움을 요청할 그 누구 하나 없었던 아버지
    나약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안간힘 쓰며
    도와달라 구걸하느니 남 돌보기를 택했을 아버지
    죽기보다 싫은 돌봐달라는 말 대신 죽을힘 다해 남들을 돌보기로 한 우리 아버지

    얼었던 몸이 풀리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요
    우리의 눈물 줄기 따라 돌봄에 대한 아버지의 묵은 갈망도 하염없이 흘러내렸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온몸과 마음 바쳐 사람들을 돌보던 아버지
    봉사왕으로 내달려온 인생길을 멈추고 이제 아버지는 어린 아이로 되돌아 가시네요
    말 표현은 잃으셨지만 온몸으로 돌봄을 요구하시는 어린 시절과 지금의 우리 아버지
    이제껏 저희들을 돌봐주셨 듯
    이제는 저희가 돌봐드릴게요, 더 많이 안아드릴게요

    아빠, 그래도 괜찮아요
    우리가 있잖아요

    기본적인 애착과 돌봄이 좌절된 경험은 심한 수치심으로 남아 평생의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수치심은 드러내기가 고통스러워 계속 덮씌우는 속성이 있는데 그러다 보면 자신이 그 안에 잠식 당하는 위기가 와요. 이때 스스로 자신을 구하려고 애쓰는 무의식적인 행동들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데요, 그중의 하나가 ‘반동형성’입니다. 자신도 받아들이기 힘든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정반대로 행동하는 거죠. 세 자매의 아버지처럼 돌봄에 대한 강렬한 자신의 욕구를 반대로 남을 돌보는 행위로 환치하는 겁니다. 정작 자신의 욕구는 충족되지 못하기 때문에 반동으로 형성된 행동은 반복, 강화되거나 왜곡되기도 하죠. 자신의 악행에 대한 죄책감을 기부행위로 환치하는데 나중에는 빚까지 져가면서 기부하는 사람처럼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1992)에서 둘째 아들이 죽은 후에 목사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다’고. 이 대사에 ‘이해하면 더 사랑할 수 있다’를 덧붙이고 싶어요. 곰인형에게 안긴 아버지의 행동이 이해받지 못했다면 추한 노망으로 몰렸겠지만 이해받은 아버지의 행동은 부녀의 사랑을 더 깊게 만들었어요. 나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이 보이는 부자연스러운 반응이나 눈에 띄게 과한 행동을 이해하려면 비난하기에 앞서 그 내면을 헤아려보는 애정 어린 호기심과 관심이 필요하겠죠.

    차 봉 숙 (무용동작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