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길 에세이] 봄가를 도는 지하철 2호선

    입력 : 2022.04.15 12:10

    오늘도 저마다 꿈을 따라가는 지하철 합정역. 뭐 말이 필요할까? 하필 또, 돌고 도는 꿈같은 2호선을 탄 사람들, 모두 웃고 있었다. 모두가 그랬다. 유난히 눈에 띄는 젊은 부부. 더욱 웃는 입과 웃는 눈과 웃는 손으로만 이야기하고 있다. 배낭을 여자는 아이처럼 안고 있고. 합정역을 지나자 천천히 웃는 하늘이 보였다.

    수첩을 부채 삼아 만지작거리는 사내의 코가 아이 주먹 같다. 아, 보기만 해도 좋은 사람이 있다니, 사랑이란 그래야 한다. 눈길 손길 따라 살아가야 하는, 그렇게 사랑해야 하는, 그래서 정이 생겨나는 사람. 언제 보아도 사랑을 굳이 사랑이라고 눈짓조차 하지 않아도 되는 사내라니.

    여자는 남청색 티에 연한 노란 연두 줄무늬 바지, 사내는 짙은 노란색 티 그리고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커다란 삶의 씨들을 듬뿍 담았는지 밤색 배낭이 크게 부풀어져 있고. 당산역을 향해 움직거리는 철교 너머 누런 한강이 보였다. 그 위 하늘은 그윽한 입김들을 짙게 감싸듯 아아 거리며 내려뜨리고 있었다.


    우리, 그곳에 가면 먼저 점심을 먹자. 물론 맛있게 먹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야. 그리곤 일하는 거야. 일이란 언제나 행복의 지름길이었거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한 번이면 더 행복하다는 것이야. 알았어, 내리자. 가야 할 곳이 바로 저기다. 사랑과 아름다움이란 말이 필요 없어 보이는 젊은 부부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렸다. 따라갈까, 말까, 갈까 말까…

    그래 가고 싶지만, 사람 사람 사라져도 남아야 한다. 남는 사람은 잠시 멍해져야 숨을 쉴 수 있었다. 더 멍청스레 ‘허공아 멈추어라’ 바라본다. 그래, 귓가 스치는 바람 사라지는 곳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아야 하는 거야. 한 번 지나고 나면, 다음 바람이 불기까지 그가 느낄 만한 바람 시간만큼 지나야 하는 거야. 세상일이란 모두 한 번 일어나니까.

    사랑은 바람인 거 같아. 한 번 불어 지나간 바람은 똑같은 느낌이 아닌. 그 뉘 사랑의 입김도 그때마다 색깔 온도 냄새 어느 하나도 같은 것 없으니까. 젊은 부부의 흔드는 손짓 따라, 따뜻한 바람이 가슴팍에 맴돌다 그들 눈가를 기웃거리며 사라졌다.

    신도림을 지나, 하늘로 향하는 나는 이제 있는 것과 없다는 것에 관심이 없어지는 듯. 대림동과 신림동 사이엔 유난히 많은 노란 도깨비 뿔 같은 개나리가 쏙쏙 거리며 웃고 있었다. 아, 그래, 개나리 아이가 살았을지도 모르는 지붕 색깔인 듯, 볼록볼록 피어 있었다. 웬 대낮에 노란 뿔 도깨비라니? 그래서인가, 비가 갠다.

    나도 개나리 아이가 흘린 입김을 가지고 하늘 한번 오르고 싶은 날이다. 전철 창문 끝마다 봄볕이 눈부시다. 수화를 나누던 젊은 부부는 내가 보고 싶은 구름 따라간 모양이다. 누구의 입김도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 앙큼 입 베어 물어 구름 위에 걸터앉아 있을 것.

    눈 한 번 나도 모르게 비빌 때마다, 고개 숙인 개나리가 달려들 것이다. ‘먼저 보아요, 여기에요!’라며. ‘엄마 꿈 냄새가 나요’라며. 가슴 깊은 곳의 내음은 꼭 개나리처럼 눈을 오래 뜨고 다니는 젊은 부부 손 냄새와 같았다. 내일 또 보아도 그럴 것이다.

    그랬다. 그들 손 냄새. 모르는 사람을 보면, 의례 ‘나를 사라 나를 사라’ 외치고야 마는 젊은 부부 손에서 손 냄새가 분명했다. 오늘따라 높이 들고 싶은 손 냄새. 사랑하는 사람에겐 먼저 밥과 물을 주고 그다음 꿈을 주는 게 맞는 것이라며 손드는 손 냄새. 하, 수화로만 사랑을 나누어도 나보다 사랑이 넘치다니!

    꿈이란 언제나 멈추었다가 다시 되돌아오고야 마는 지하철 2호선 순환선 같은 것이었다. 꿈은 내게 출발해 내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라며. 꿈이란 사람처럼 돌고 또 돌아야 살아있는 것이라며. 사랑도 사람과 사람마다 오가며 돌고 도는 것이라며. 돌다가 내게 올 때를 기다려, 멋지게 맛을 보아야 하는 것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