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옥 에세이] 같이 살자고?

    입력 : 2022.05.08 18:39

    아파트 옥상에 올랐습니다. 오늘은 얼마나 자랐을까? 이리저리 상자 텃밭마다 들여다보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무럭무럭 자라는 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이런 걸 ‘정중동’이라 하지요? 그렇습니다. 옥상 텃밭은 늘‘정중동’ 매일 보니 사실상 제가 그 자람을 느끼기엔 부족합니다.

    머리를 싹둑 자르고 파마까지 하고 들어 와 “여보 나 변한 거 없어?” 있는 애교 없는 애교까지 동원하여 환하게 웃어 물어보지만 무심한 남편은 훅 들어온 질문에 ‘이 무슨 날 벼락이냐!’ 싶은 얼굴로 멀뚱멀뚱 쳐다봅니다. 대답 한 번 잘못했다간 몇 날 며칠을 지청구 들을 게 뻔한지라 바짝 긴장합니다.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훌터보며 진땀을 흘리다가 겨우 찾았다 싶어 기운차게 대답합니다.

    “새 옷이야? 이쁘네! 당신한테 잘 어울려!” 대단한 거 발견한 모양으로 어깨까지 으쓱대며 칭찬을 늘어놓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화를 불렀으니 정성껏 차리는 밥상을 받기는 틀렸습니다.

    상자 텃밭 세상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눈을 크게 떠도 잘 보이지 않지만, 상자 텃밭에는 무럭무럭 자라는 피망이나 고추, 토마토나 가지들이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습니다. 텃밭 식구들을 찾아올 때마다 늘 그대로입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는데도 텃밭 식구들은 어느 날 문득, 무성한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 상자 텃밭 채소들을 위해 나는 늘 잡초와의 전쟁을 벌립니다. 한여름 폭염에도 후끈 달아오른 아파트 옥상 시멘트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잡초들을 뽑습니다. 어느 잡초이건 간에 손끝으로 잡힐 정도가 되면 어김없이 잡아채 땡볕에 던져 버리고 맙니다. 이제 막 돋기 시작한 괭이밥이나 쇠비름들을 뽑아냅니다. 어쩌면 그렇게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는지..... 이렇게 늘 잡초와 전쟁을 치렀지만, 오늘 제가 졌습니다.

    초여름 바람에 하늘거리는 무성한 감자잎 사이로 살며시 고개를 내민 야생화 한 송이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노란 꽃잎을 보니 괭이밥입니다. 커다란 감자 잎사귀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큰 탓에 여리디 여린 얼굴로 내밀었습니다. 앙증맞은 노란 꽃과 여린 연둣빛 잎이 나를 향해 해맑게 웃습니다. 어이가 없어 ‘뭐야? 쟤는?’ 그리고는 가만히 고개 숙여 들여다봅니다. 늘 텃밭 상자에 엎드려 잡초가 자라기 전에 휙 뽑아 던져 버리는데 괭이밥 꽃이라니요? 그렇게 잡초를 뽑고 또 뽑았는데 자라서 꽃까지 피었다니요?

    그렇습니다. 내가 아무리 거부해도 자연의 순환은 어김없이 돌고 있었습니다. 이 여린 괭이밥은 누가 보거나 말거나 자연의 시간표에 맞추어 바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지요. 게으르면 후손을 볼 수 없기에 천적인 내게 들킬세라 숨을 죽이고 발동동 구르며 해 뜨면 움직이고, 해지면 옹골차게 숨을 골랐을 겁니다. 아마도 너른 들판에서 괭이밥 꽃을 만났다면 앙증맞은 그 노란 꽃을 보고 '이쁘다. 이쁘다.' 연신 탄성을 올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생각을 하니 갈등이 생겼습니다. 평소처럼 괭이밥을 뽑아 던져 버려야 하는지. 아니면 꽃까지 피워 올렸는데 뽑아 던지는 게 좀 잔인하니 그대로 두어야 하는지 혼란스럽습니다. 괭이밥 노란 꽃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들여다봅니다. 들여다볼수록 미움보다 안쓰러운 마음이 샘처럼 솟아오릅니다. 누가 누굴 미워할 자격이 있을까요? 필요에 의해서 미운 것이 생기고 이쁜 것이 생기는 것인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내 불찰이 더 큰 것입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밤낮으로 자그만 손발로 바지런히 움직였을 괭이밥 꽃에게 경의를 표하기로 했습니다. 한 세월 살다 가라고 못 본 척하기로 했습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잡초도 꽃으로 봐주면 꽃이라고! 괭이밥을 꽃으로 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