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옥 에세이] 추억이 돋는 호박잎 쌈!

    입력 : 2022.05.27 10:35 | 수정 : 2022.06.23 16:58

    나의 꿈이, 처음부터 고작 상자 텃밭 몇 개 놓고 농사짓자는 것은 아니었다. 남들처럼 정년퇴직 몇 년 전부터 퇴직 후의 삶을 어떻게 꾸려 갈 것인가 고민했었다. 나름 꿈은 야무졌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전원주택 한 채 사서 쉬엄쉬엄 텃밭 놀이나 하지 뭐!’ 했다. 먼저 명예퇴직해 전원생활을 하는 친구들도 찾아가 보기도 했고, 선배들 전원주택 순례도 해 봤다. 고향에도 내려가 어디에 안착할 것인가, 땅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밤이나 낮이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어떤 친구들은 교실 1칸 크기도 농사라는 이름이 붙으면 힘든 일이라 했고. 어떤 친구는 비만 내리고 나면 뙤약볕에 나가 잔디밭이며 마당이며 풀을 뽑는 게 일이라고 했다. 시골 전원주택에 내려갔다 힘들어 못 살겠다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이들도 만났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남의 경험담을 듣다가, 해를 거듭할 수 록 바람 빠진 풍선처럼 그녀의 꿈이 쪼그라들더니 상자 텃밭 몇 개를 아파트 옥상에 올려두고 그 뒤에 숨어들고 말았다.

    상자 텃밭 몇 개의 농사지만 고향처럼 햇빛은 풍성했고, 바람은 여전히 때때로 몰려왔다 몰려갔다. 상추는 씨만 뿌리면 쑥쑥 자라나 다 먹어치우기 힘에 겨웠고 토마토나 고추들은 여름 내내 식탁에서 빠지지 않았다. 내 손끝이 농사짓는 것과 맞아떨어졌는지 보는 사람마다 ‘어쩜! 이리도 잘 자라! 선생님! 농사 지어 보셨어요?’ 하며 칭찬할 때는 어깨를 으쓱거렸으니 불만은 없었다. 땅이 작다고 답답하거나 화가 날 일은 없었다. 불평을 쏟아낼 일도 물론 없었다. 아파트 옥상이라고, 상자 텃밭이라고. 해가 비켜 가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돌아가는 일도 없었다.

    밤이면 별들이 반짝였고, 아침이면 새들 소리에 잠을 깨고, 먹구름 몰려오면 어김없이 후드득후드득 비도 내렸다. 봄이면 뿌려놓은 씨앗에서 꼬물꼬물 움이 트고 지나가는 비, 햇살 한 줌에도 고추며 가지며 감자들이 무럭무럭 커 갔다. 거기에 만족해야만 했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몸뚱이는 녹이 쓸 대로 슬어 어제는 무릎이 아프고 오늘은 허리가 아파 욱신거린다. 이런 내 처지에는 텃밭 상자 몇 개면 충분했는데 그만 일을 저질렀다. 이미 가진 것도 하나 둘 내려놓아야 할 처지에 언감생심 땅에 대한 욕심을 낼 처지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한여름, 아래층 아주머니가 이사 갈 때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선생님! 우리가 쓰던 화분들 가지고 텃밭 농사 지으실래요?” 

    “이사 가는 아파트가 지붕이 있는 아파트라 이런 것들 못 길러요.” 

    그 말에 

    “네!” 

    하고 그렇게 냉큼 받아들일 일이 아니었다. 물론 하나보다는 둘이 좋고 두 개 보다는 세 개가 좋은 법이지만 이런 식으로 상자 텃밭을 늘리고 나니 잡초 뽑는 일도 그 만 큼 많아지고 뭘 심어야 할지 그것 또 한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사진제공=조규옥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그래도 몸은 고달파도 마음은 늘 하늘을 날았다. 오늘도 그랬다. 상자텃밭에 물을 주고 의자에 앉아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올려다보는 하늘은 더없이 맑고 조용했다. 직 바구니 몇 마리 아파트 앞산을 후루룩 날아 미루나무 연둣빛 고운 잎새로 너울너울 춤을 추는 속으로 사라졌다. 직 바구니 뒤를 쫓던 눈길이 호박이 자라고 있는 상자 텃밭에 멈추었다. 요즘은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호박 자라는 걸 보는데 제일 행복하다. 어떻게나 잘 자라는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호박잎 쌈이 생각나 침이 ‘꿀꺽’하고 넘어가는 지경이다.

    그까짓 호박잎 쌈이 무슨..... 마트에 가면 일 이 천 원이면 사는 것을..... 할 테지만 마트에서 사는 호박잎이라고 다 같은 호박잎이 아니었다. 마트에서 사다 쪄먹는 호박잎은 두어 장 호박잎 쌈을 먹고 나면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만다. 맛이 없다. 없어도 너무 맛이 없다. 예전처럼 가마솥밥 뜸 들 일 때 쪄서 먹던 호박잎 쌈이 아니었다. 질기고 가시는 왜 그리 억센지..... 아무리 다양한 방법으로 쪄 봐도 그냥 풀 냄새 풀풀 나는 그런 맛 밖에 나지 않았다. 어릴 때 먹던, 밥솥에 찐 호박잎은 부드럽고 달콤했다. 아무리 이 방법 저 방법을 짜내도 예전의 호박잎 쌈 맛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작년 여름, 아래층 네가 이사 가고 난 그 무렵, 그때도 마트에서 호박잎 1단을 샀다. ‘또 맛없으면 어쩌지?’ 손에 들었다가 내려놓고 두어 번 망설이다가..... 그래도 여름인데 ‘한 번쯤은 먹어줘야지!’ 덕분이었다. 사온 호박잎은 늘 그랬던 것처럼, 다듬을 때부터 잎은 억세고 가시는 날카로웠다. 그럼에도 정말 정성을 다하여 호박잎을 말랑말랑하게 쪄내 식탁에 올렸다. 된장에 고추장을 섞고 풋고추 몇 개 송송 썰어 넣고, 멸치며 양파 등등을 넣고 마지막엔 참기름까지 쳐서 바글바글 끓인 양념장을 식탁에 올렸다. 역시나 실패였다. 고향에서 먹던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내던 호박잎 쌈은 아니었다. 내게 호박잎 쌈이라면 여름이면 꼭 건너야 하는 징검다리 같은 맛인데 이건 아니었다.

    엄마는 봄이면 산비탈에 호박씨 훌훌 뿌려놓고, 때 되면 애호박 하난 뚝 따서, 호박 찌개나 새우젓을 넣고 달달 볶아 호박볶음을 밥상에 올렸다. 비 오는 날이면 애호박 송송송 채 썰어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지글지글’ 호박전을 부치면, 우리 형제들은 그 주변에 둘러앉아 침을 꼴깍 삼키곤 했다. 그렇게 만능 요리 감이던 애호박이 안 보일라치면 엄마는 호박잎 몇 잎 ‘툭툭’ 꺾어다 뜸 들이는 밥솥에 집어넣은 날. 저녁 밥상엔 어김없이 호박잎 쌈이 올라오곤 했었다. 그게 지금은 때 되면 늘 떠 오르고, 철 되면 생각나는 맛인데,.... 호박잎 쌈 맛이 입안에 감도는데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지 않은 가!

    다음 날, 종묘상들이 줄지어 있는 종로 6가에 나갔다. 아래층 이사 갈 때 주고 간 빈 화분에 호박을 한번 길러보고 싶었다. 여름이 가기 전에 입 안에 감도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호박잎 쌈을 먹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길러 먹으면 호박잎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여름에, 것 두 8월에, 호박을 심겠다고 호박씨를 사러 온 내가, 어지간히 어이가 없었나 보다. 나이가 지긋하신 종묘상 아저씨는 일어나지도 않고 ‘말도 안 된다는 걸 아시죠?’ 하는 낯빛으로 날 쳐다보며 한 마디로 잘랐다.

    “지금 호박씨 사서 뭐 하게?” 

    “지금 심어봐야 호박 먹기 힘들어! 내년에나 심어!” 

    퉁명스럽게 내뱉었지만 그렇다고 밀릴 나도 아니었다. 

    “아저씨 호박잎을 마트에서 사다 먹는데 맛이 너무 없어요. 그래서 호박잎 먹으려고 그래요.” 

    “호박잎! 호박잎을 먹겠다고?” 

    “네!” 

    “그래? 그럼 이걸 갖다 심어봐! 이 종자가 호박잎이 제일 부드러워! 조금 비싸! 5000원!”

    이렇게 잎이 제일 부드럽다는 ‘맷돌 호박씨’를 사 들고 돌아와 심었다. 9월 들어 호박잎이 자라고 딱 2번 호박잎 쌈을 먹었다. 호박잎 쌈은 부드러웠고 달콤했다. 그 옛날 어렸을 때 먹은 호박잎 쌈이었다. 종자가 다른 것을 엉뚱한 종자에서 자라난 호박잎을 쪄서 호박잎 쌈을 해 먹었으니 그게 맛있었을 리가 없었다. 이러니 호박 자라는 것만 봐도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내게 호박잎 쌈은 그리움이다. 호박잎 쌈 하나, 식탁에 올려놓으면 반딧불 날아다니는 여름밤, 마당 가 평상에 누워, 여름밤의 별을 보고 흘러가던 달이 떠오른다. 시원한 산바람이 살랑거리면. 별은 찰랑찰랑 흔들리고, ‘찌르르 찌르르’ 여치 울음소리가 귓 가에 들려온다. 이런 것들이 그리워 나도 모르게 호박잎 쌈을 먹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내게 추억이 켜켜이 쌓인 입맛은 단순한 먹거리 이상의 아련함이다. 때로는 저리고, 때로는 아픔이고, 때로는 빙그레 찾아드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