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옥 에세이] 좋아하지 않지만, 토마토를 땄다.

    입력 : 2022.07.18 09:57

    여름이 깊었다. 옥상 텃밭 상자도 여름 속에서 각종 채소들로 풍성하다. 물론 야외의 넓은 텃밭에서 키우는 것만큼 풍성하지는 않아도 작은 텃밭 상자도 쓸모가 쏠쏠하다. 흙을 만나면 무언가를 먼저 심으려 안달하는 내 욕심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채워준다. 요즘은 예닐곱 가지 이상의 채소들을 직접 키우는 재미를 만끽하며 그 수확의 기쁨을 맛보니 취미생활로 이것만 한 것이 없다.

    텃밭 상자도 계절에 따라 일반 텃밭과 풍경이 비슷하다. 씨를 심거나 모종을 심고, 비바람 맞고, 햇살을 쫓아 부지런히 자란다. 덕분에 내 텃밭 농사도 늘 각종 채소들로 넘쳐난다. 물론 초기에는 노력에 비해 결과가 텃 없이 초라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일부러 내 텃밭 상자를 구경하러 오는 아파트 주민도 생겼다. 화초를 키워 꽃을 피우는 느낌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이지만 채소 씨를 심거나 모종을 키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키우는 것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도 해 준다.

    사진제공=조규옥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나는 토마토를 즐겨 먹지 않는다. 내 손으로 토마토를 사는 경우는 일 년에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토마토의 그 특유한 냄새나 맛이 싫은 사람이다. 그런데도 토마토를 심는 까닭은 옛날, 어릴 적, 여름 방학이면 양평 외갓집에서 지냈다. 외갓집 대청마루 앞에는 작은 텃밭이 있었다. 텃밭이면 의례히 심어져 있던 가지며 고추며 내가 싫어하는 토마토까지 여름 채소들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채소밭 뒤쪽에 대추나무가 있고, 그 대추나무에는 외할아버지가 외손주 손녀들을 위해 매달아 놓은 그네가 매달려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 생각해 보면 회색빛 밧줄에 오래된 나무판자를 올려놓은 그네였지만 그네 타는 재미가 쏠쏠했다. 늘 강바람이 스며드는 집이라 그네를 타고 있으면 바람 속에 내가 들어있다는 기분이 들게 했다. 그날도, 난 그네를 타고 있었다. 바람결이 살갗을 스치는 느낌에 기분이 한껏 좋았다.

    그 탓일까?

    나는 타던 그네에서 냉큼 내려 토마토 밭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아직 푸른빛이 감도는 토마토 하나를 따,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안에서 토마토 터지면서 토마토  과즙이 입안 가득 찼다. 맛있었다. 그동안 내가 먹었던 그 어느 토마토 보다, 맛있었다. 새콤한 맛 뒤로 상큼한 맛이 입안 가득 차면서 시원함이 다가왔다. 그 해 여름방학이 내 생애 가장 토마토를 맛있게 많이 먹은 해이다.

    다시 여전히 토마토는 내 비위에 맞지 않았다. 내가 안 먹는다고 텃밭 상자에 토마토가 빠지면 섭섭해서 늘 토마토를 심었다. 수확도 별로 좋지 않았다. 미친 사람 머리칼 흐트러지듯 가지들과 토마토 잎들은 왜 또 그리 무성한지 내 재주로는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그토록 무성했으면 열매라도 많이 달리든가 ‘나, 토마토야’ 하고 알리는 정도 달리고 말았다. 그러니 며칠 익은 토마토를 따서 모아야 식구들과 조금씩 나누어 먹었다.

    사진제공=조규옥 시니어조선 명예기자

    그런 토마토 농사 실력이 작년에 갑자기 확 변했다. 조금 과장하면 가지나 토마토 잎 보다 토마토 꽃이 더 많이 피고 열매 또 한 그만큼 익었다. 하도 신기해서 한 송이에 매달린 토마토를 세어봤더니 30여 개 이상이 주렁주렁 달렸다. 그런데도 그 꼬투리 끝에서 꽃이 피고 있었다. 무슨 포도송이나 머루 송이도 아니고. 가지가 찢어지는 경험을 처음 해 봤다. 많이 열리니 수확도 많으니 먹을 일이 난감했다. 냉장고에 차곡차곡 모으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믹서에 갈아, 주스로 한 번에 갈아 마셔 버렸다.

    올해도 방울토마토를 3그루 심었다. 내가 싫다고 안 심을 수 없는 토마토다. 그러니 그게 자연스럽게 다섯 그루로 늘고 여섯 그루로 늘었다. 토마토 열매가 방울방울 수없이 매달리자 가지를 꺾어 텃밭 상자 한 귀퉁이에 심어 놓으면 금방 자리 잡고 순을 올리며 꽃을 피웠다. 방울토마토를 며칠 따서 모아야 식구들과 조금씩 나누어 먹던 것이 한 번에 딴 양으로 식구들이 먹을 양이 나왔으니 이제 도시 농부로 제대로 태어난 모양이다.

    줄줄이 열리는 방울 토마토 덕에 어김없이 오늘도 토마토를 땄다. 방울토마토를 하루 더 숙성시켜 따려다가 내일부터 장마가 다시 시작된다길레 따야 했다. 장마에 갇혀버린 텃밭상자의 채소들은 몸살을 앓는다. 습한 고온에 채소들이 여기저기서 백기를 든다. 대파는 뿌리가 물러 썩어가고 상추는 잎들이 짓물러 주저앉는다. 방울토마토라고 제외는 아니다. 잘못하면 내라는 많은 비에 방울토마토 열매들이 감당을 못하고 살이 터지고 만다. 그전에 따버려야 되겠다고 나섰다. 오늘 저녁 식탁은 방울토마토 카레가 될 것이다. 토마토를 즐겨 먹지는 않지만, 방울토마토 카레는 괜찮다. 카레의 진한 향과 맛이 토마토 특유의 맛을 덮어 버리니 괜찮다.

    매일 아파트 옥상의 텃밭상자로 출근하면서 퇴직 후의 ‘내가 이렇게 아무 일도 안 하고 살아도 되나?’ 하는 복잡하고 미묘했던 마음의 소란을 다독이며 잠재 울 수 있었다. 주인이 세심하게 관리하지 못해도,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서 제 할 일들을 부지런히 해내는 상추나 가지, 방울토마토와 고추들에게서 퇴직 후의 불안했던 마음을 하나씩 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