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훈 에세이] 기대보다 기다림이 필요한 시점

    입력 : 2022.08.08 15:05 | 수정 : 2022.08.08 15:07

    여느 직장인들처럼 참 바쁘게 살아온 30여 년 직장 생활이었다. 물론 매년 바쁘고 치열하게 살진 않았다. 돌이켜보면 입사 후 3년은 배우는 과정이기에 업무적으로 크게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었다. 물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에서 온 약간의 스트레스는 있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나는 시점에 책임지고 할 일이 생기면서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그리고 이 업무를 4, 5년 수행하면서 세 번의 사표를 던졌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9시, 10시까지 일해도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완료되지 않은 업무를 내버려 두고 퇴근해야만 했다.

    밤을 지새우더라도 일이 끝날 것 같지 않았고 어차피 다음날 출근해서도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기에 차라리 내일 다시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기에 업무는 약간 양념을 치면 화장실 가서 큰일을 치르면서도 전화받고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한창 혈기왕성한 대리 시절 이야기였다.

    이렇게 하다간 명대로 못 살 것 같아서 팀장에게 사표를 냈다. 사원, 대리 시절 사표를 내는 직원들의 공통적인 답변은 ‘현재 일도 싫진 않지만, 공부를 좀 더 하려고 대학원을 계획하고 있다.’ 혹은 ‘집안일을 도울 상황이 발생했다.’이다. 보통 이 두 가지가 가장 보편적인 이유지만, 막상 이들의 뒷얘길 들으면 다른 경쟁회사에 취직한 경우가 많았다.

    대놓고 다른 회사를 지원하기 위해 사표를 낸다고 하기에는 양심의 가책이랄까 이런 부분이 작용했을 것이다. 사원, 대리 시절에 필자도 물론 위와 같은 이유를 달고 세 번 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결국 현재 회사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물론 다른 회사에 합격하기 위한 필자의 자질이 부족한 부분도 있었지만, 팀장의 기다림도 큰 작용을 했었다.

    요즘 회사 분위기는 퇴사를 고려하는 직원을 크게 잡지 않는다. 다른 회사에 미리 합격해놓고 사표를 내겠다는 것이기에 회사에서 설득할 명분이 별로 없다. 대부분 이직의 사유는 보다 나은 급여, 보다 나은 복지 혜택을 주는 회사로의 이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친구를 잡기 위해 더 나은 급여와 복지로 바꿀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당시 필자의 팀장은 나름 고참 팀장이라 필자와 같은 신입사원에 대해 많은 경험이 있었다. 물론, 그 팀장이 필자를 위한 다기보다는 조직 관리를 위해 본인의 입장에서 필자의 사표가 조직을 더 힘들게 하기 때문이란 사실이 더 큰 이유였을 것이다.

    팀장이 조용히 필자를 불렀다. 일단 자네가 맡은 일이 누구일 보다 힘들기에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서두를 시작하면서 일단 생각을 좀 해보자고 사직서를 팀장 서랍 속에 넣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다음날도 또다시 업무와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여전히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그렇게 일주일이 또 후딱 지나갔고 그사이 팀장은 해외 출장을 갔다. 이미 사직서는 던진 상황이었고 팀장이 돌아오는 날 다시 퇴사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나름대로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 사실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마음보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업무이었기에 열심히 했다.

    무슨 일인지 팀장은 일주일, 이 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새 필자의 업무도 조금씩 해결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고 했던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줄어들다 보니 회사를 퇴사하고픈 마음이 약간은 수그러들었다.

    해외 출장을 간 팀장은 여러 가지 일로 석 달 뒤에 귀국하게 되었다. 그 사이 필자의 업무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큰 스트레스는 지나갔다. 아직도 당시의 상황이 팀장의 신입사원 퇴사를 막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는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였는지 여전히 그 진실은 알 수 없다. 물론 결론적으로는 이런 상황을 계기로 아직도 회사에 다니고 있다.

    당시 팀장이 신입사원에 대한 기대로 업무에 대해 지속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필자를 계속 다그쳤다면 필자는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신입사원에 대한 당장의 업무 기대보다는 시간이 약이라는 것처럼 적응을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함을 팀장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계휴가 둘째 날 방콕(?)에서 빠르게 급변하는 기업 문화 속에서도 때론 토끼보다 거북이의 걸음처럼 천천히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도 필요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