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안녕하셔야 해요” (31)

  • 방송작가 권은정

    입력 : 2022.08.17 09:53 | 수정 : 2022.08.17 10:08

    <중년을 넘어선 그대에게 띄우는 안부편지>

    31.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예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남의 눈을 많이 의식했습니다. 특히 한 마을에서 서로 터놓고 사는 사회다 보니, 누구 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 정도로 친밀해서 그럴까요? 항상 눈치와 염치를 차려야 했지요. 그래서 무언가를 경계할 때도 ‘남의 눈이 무섭지도 않으냐’는 말을 종종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 나의 생각이나 나의 취향, 또는 나의 욕구보다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남의 시선이 훨씬 더 중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의 이목 때문에 진학할 때 좋아하지도 않은 학과를 선택하고, 취업할 때도 딱히 적성에 맞지도 않은 직장이나 직업을 선택하고, 심지어 썩 좋아하지도 않은 사람과 결혼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행동은 특히 여성들의 패션에서 두드러졌는데요. 지금은 어떤 패션이 유행한다고 해도 우르르 다 따라 하지 않지만, 1990년대에는 여성들의 머리 모양, 화장 스타일, 패션 모두 유행 따라 일제히 변화하곤 했습니다. 나만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유행에 처지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남의 시선을 의식한 탓이었지요.

    그러면서 남의 시선에 무뎌지는 걸, 나이 들어 뻔뻔해지는 증거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가령 당시 립스틱은 음식을 먹으면 입술에 별로 색깔이 남아있지 않아서, 식사 후에는 입술 화장을 수정해야 했는데요. 화장실에 가서 수정하지 않고 식탁에 앉아서 거울 들고 수정하면, 소위 ‘아줌마’ 취급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아줌마’가 삶의 전선에서 가족들을 위해 억척스럽게 살다 보니 남의 눈도 의식하지 않는, 이른바 여성성을 잃어버린 제3의 성(性)으로 인식되던 시대였거든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남의 눈을 별로 의식하지 않습니다. 가장 쉬운 예가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헤어롤'로 머리를 고정하고 다니는 젊은 여성들입니다. 심지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아이라인과 마스카라 화장까지 하잖아요.

    물론 그런 여성들이 지금처럼 많아지지 않았을 때는, 앞자리나 옆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길로 보곤 했고요, 저런 모습을 보일 거면 좀 일찍 일어나서 여유 있게 화장할 시간을 갖지, 왜 공공장소에서 개인의 집처럼 저런 행동을 하냐 비난을 하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오히려 옆에 앉아 있거나 앞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그런 여성과 눈이 마주칠까봐 시선처리에 신경을 써줘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런 젊은이들이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절대 아니라는 거예요. 남의 시선에도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공공장소인 지하철 안에서 헤어롤을 하고 가는 건,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완벽한 컬을 유지한 예쁜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인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하면 내가 언제 공공장소에서 헤어롤을 하고 있었냐는 듯이 헤어롤을 빼잖아요.

    한 마디로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외에는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상관없는 사물이나 마찬가지인 거예요. 그러니 굳이 그런 남의 눈치나 시선을 느낄 필요 없이,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을 하는 거지요.

    그래서 요즘은 유행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유행은 따라 하지 않으면 내가 유행에 처진다고 생각돼서 따라 하게 되는 건데요. 남의 시선을 별로 의식하지 않으니까, 당연히 내가 입고 싶은 옷, 내가 입어서 어울리는 옷, 또 내가 입어서 편한 옷을 입고, 그런 신발을 신고, 그런 백을 메고 다닙니다.

    예전 중세시대에 여성들이 남들에게 날씬한 허리를 보이고 싶어서 코르셋으로 허리를 졸라매다 건강을 해쳤고, 또 지금 베이비 부머들은 젊은 시절에 늘씬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하이힐을 신느라 무지외반에 많이 걸렸지만, 요즘 젊은 여성들은 남의 시선보다는 내가 편하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선택에 있어서 더 우선 조건인 거지요.

    이렇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당당한 청춘을 마주하면, 그렇지 못한 청춘을 보낸 세대로서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사회 구성원들을 졸지에 사물로 격하시키는 건 무례한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문득 그런 남의 시선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라도, 나이 들어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흔히 나이 들면 남의 시선에 거리낌 없어진다는 말 많이 하잖아요? 
    ‘이 나이에 이제 내가 누구 눈치를 보겠어? 하면서 말이죠.

    그러니 나이 들면서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의 시선만은 의식하게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어야, 나를 조절할 수 있고 아무리 나이 들어도 내 마음이 굳지 않고 말랑말랑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KBS 3라디오 출발 멋진 인생 방송작가 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