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훈 에세이] 희망하지 않는 희망퇴직

    입력 : 2022.09.08 15:13

    8월 어느 날 아침, 늘 부장은 아침잠을 설쳤다. 어젯밤 꿈에 회사 인사담당자 김 차장이 나타나서 왜 부장님은 아직도 희망퇴직을 하지 않느냐면서 독촉했다. 다닐 만큼 다니셨는데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이제 좀 비켜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눈도 침침해서 노트북 글씨도 잘 안 보이시고 건강도 안 좋으신데 이제 퇴직하시고 집에서 편하게 쉬시는 게 어떠신지요? 인사 담당자 김 차장의 말에 늘 부장은 입에서 본능적으로 쌍욕이 나갔다.

    너 같으면 퇴직하겠냐? 이 나이에 퇴직해서 밖에 나가서 뭘 하란 얘기야? 내보내려면 30여 년 회사에 충성한 만년 부장에게 나가서도 어느 정도 생활할 수 있는 위로금을 주던지. 세금 떼면 1년 연봉 조금 넘는 금액을 갖고 나가서 뭐 하란 거냐? 내가 30여 년 다니면서 회사에 무슨 잘못을 했기에 자꾸 이렇게 못살게 굴어? 이걸 그냥 확 패 버릴까 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도대체 늘 부장은 회사에 무엇을 잘못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언뜻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후배에게 심한 욕을 했나? 밤 10시까지 남아 일하면서 회사 전기료를 축냈나? 아님 능력이 안 되어 토요일 특근을 자주 해서 그런가?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회사 동료 만년 부장들과 봉지 커피 한잔하면서 결국 그 답을 찾았다. 아무 생각 없이 노후 대책을 세우지 않고 회사 일만 주야장천 열심히 한 죄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 나이가 어때서!! 30대, 40대 후배들보다 얼마든지 일을 더 잘할 자신도 있고 한데 왜! 왜! 왜! 자꾸 늘 부장만 괴롭히는 거야? 물론 늘 부장만 괴롭히는 것은 아니고 늘 부장 또래의 모든 고참 직원들 모두 해당한다. 고참 부장 한 명을 내보내면 신입사원 두 명을 받을 수 있다는 인사팀 논리를 들으면 참 그럴듯해 보인다.

    말은 100세 시대라고 하면서 기업에서 나이 50만 넘어도 늙은 영감 취급하는 것에 대해 가끔 서글픔과 분노가 교차한다. 30여 년을 가정 일보다 회사 일을 우선순위에 두며 열심히 했던 직장인데…. 첫애가 태어날 때도 아내에게 바쁜 회사 일로 가봐야 한다고 산부인과 분만실에 누워 있는 아내 가슴에 못을 박았고 아버지 제사 때도 밀려오는 회사 일 때문에 가지 못한 불효를 저지른 늘 부장이다. 이런 늘 부장을 이제 내친단 말인가? 이건 아닌 것 같다.

    국내 대기업, 특히 전자 회사들은 70년대, 한국 전자회사를 한낱 풋내기로 상대하지도 않던 일본 전자업체 소니, 도시바를 30년이 지나면서 그들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눈물 젖은 빵의 대가다. 눈물 젖은 빵의 의미는 국내 전자회사 직원들이 일본 업체보다 우수한 두뇌를 가졌기에 가능했을까? 천만, 만만의 말씀이다. 머리가 나쁘면 ‘몸빵’이라도 하라는 말이 있다. 이 ‘몸빵’이 오늘날 일본 거대 전자회사들을 앞지른 가장 큰 이유다. 물론 늘 부장 본인 생각이다.

    그들이 오후 5시에 퇴근하면 우리는 밤 10시, 11시에 퇴근했다. 그들이 토요일 가족과 즐겁게 지낼 때 우리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회사에 출근 후 전기인두를 들고 PCB 기판에 납땜하면서 일본 업체의 앞선 기술을 분석했다. 이런 노력의 결실이 2~30년이 지난 지금 그 꽃을 피우면서 일본 전자회사들의 존재를 보잘것없이 만들었다.

    이제 회사는 이렇게 ‘몸빵’의 세월을 살아왔던 늘 부장과 같은 고참부장들을 내치려고 한다. 때가 되면 물러나는 것은 인간사의 진리임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이렇게 수십 년 한 회사에 몸 바쳐 일한 고참부장들이 나가서도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건은 만들어 주어야 한다.

    왜 이들에게 희망하지 않는 희망퇴직을 강요하는가? 이들이 초등, 중등학생도 아니고, 주판을 튕겨서 희망퇴직이 경제적으로 더 이익이라면 굳이 나가지 말라고 해도 자발적으로 나갈 것이다. 당장의 손익을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이들에게 보상을 최소화하면서 내보내려고 하는 회사 경영진의 속내가 들켰기 때문에 더더욱 고참 부장들은 나가지 않는 것이다.

    희망퇴직이란 말로 직원들을 현혹하지 말고 정말 글자 그대로 희망퇴직을 원할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퇴직금, 위로금을 이들에게 베푸는 것이 30여 년 몸 바쳐 일한 충성 직원들에 대한 위풍당당한 대기업의 마지막 예우가 아닐까? 퇴직 후 늘 부장을 비롯한 고참부장들이 당신들의 진성 고객이 될는지 진상 고객이 될는지 장기적인 안목에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