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안녕하셔야 해요” (41)

41. 천생연분 or 평생웬수

이 좋은 계절 가을을 맞아, 누구와 함께 가까운 곳에 나들이라도 좀 다녀오셨는지요? 

혹시 부부끼리만 나들이 길에 나섰다가, ‘다시는 둘이 같이 어디 안 간다!’ 하고 다짐, 또 다짐하고 오신 분들, 계십니까? 그러면서 만약 ‘자녀와 손자녀라도 같이 갔으면 그럭저럭 즐거운 나들이 길이 됐을 텐데’ 하셨다면, 그것 또한 오산입니다. 이런 분들의 경우 자녀와 손자녀들이 알게 모르게 두 분의 눈치를 참 많이 보느라, 전체적으로는 피곤한 나들이가 될 수도 있거든요.

흔히 아이들 다 키워 독립시키고 부부만 살면 다시 신혼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를 하는데요. 그 말은 엄밀히 외형상 식구가 신혼 때처럼 둘로 줄었다는 것이지, 내면이 신혼 때처럼 쳐다보기만 해도 꿀이 뚝뚝 떨어지는 사이라는 걸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결혼한 지 몇십 년 된 부부라고 해도, 젊었을 때부터 부부 둘만의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았다면, 부부만의 여행길에서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 일이 많아서, 다투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요. 그래서 실제 나이 들어 부부가 각자 친구들과 따로 여행하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친구끼리 하는 여행과 부부끼리 하는 여행은, 마음가짐부터가 많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친구끼리 여행하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배려하려고 애쓰고, 또 서로 최소한 지켜야 할 예의를 지키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지 않습니다. 게다가 친구끼리의 여행은 우정뿐 아니라 남자는 남자대로 그들만의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들이 있고, 여자는 여자대로 그녀들만의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들이 있어서, 그게 더 여행을 즐겁게 해 주지요.

그러니 부부끼리 여행이 즐거우려면, 부부 사이이기 때문에 더 좋은 특징들이 더 많아야 할 텐데요. 신혼 때나 젊었을 때의 불타오르는 사랑은 언감생심 바라지 않더라도, 최소한 친구끼리 여행할 때처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건 기본으로 따라야 불편한 여행은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요? 오히려 ‘식구 사이’라는 이유로 그런 부분들을 팽개치고, ‘부부 사이니까 말 안 해도 척하면 삼천리로 알겠지’ 하는 오해로 소통조차 안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부부끼리의 여행이 즐거운 여행이 되지 못하는 거지요.

친구끼리의 여행에서는 함께 즐겁기 위해 노력을 하면서, 부부끼리의 여행에서는 왜 그런 노력을 생략하는 걸까요? 아마도 그건 나만 위해 달라는 이기심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만약 친구끼리의 여행에서도 그런 이기적인 면모를 보인다면, 아마도 다음 친구끼리의 여행에서는 명단에서 제외될 확률이 높습니다.

친한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말은 부부 사이에도 통합니다. 소위 ‘돌아서면 남이 되는 사이’, 유행가 가사처럼 ‘님에서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되는 사이’, 현실적으로는 촌수가 없는 ‘무촌’ 사이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만큼 예의도 지켜야 그 사랑이 마른 장작처럼 오래오래 불타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무리 백세시대라고 해도, 아프지 않아야, 흔히 하는 말로 두 다리에 힘이 있어야 여행을 할 수 있는 건데요. 생각해보면 부부가 함께 여행할 날이 많지 않습니다.

나이 50만 먹어도 이런저런 약을 드시는 분들이 많은데, 지금보다 더 나이 들면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아플 수도 있고, 또 조금 더 나이 들면 배우자가 옆에 없게 될 수도 있잖아요. 젊어서는 돈 버느라, 또 아이 키울 때는 아니 키우느라 바빠서 둘 만의 여행할 기회를 갖지 못했는데, 나이 들어 둘만 남아 둘만의 여행을 하려 하니, 어느 한쪽이 아프고, 또 어 느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날 수도 있는 게 바로 인생사라는 거지요.

그러니 서로 건강이 어느 정도 유지될 때 서로에게 맞춰가면서 같이 다녀야 아쉬움이 남지 않게 됩니다.  제가 늘 하는 얘기인데, 지금이 항상 ‘황금기’, ‘골든타임’입니다. 더 늦기 전에 부부끼리 즐겁게 여행하면서 황금기를 누려야지, 둘만 여행하면 싸울까봐 부부끼리의 여행은 생각지도 못한다고 하면, 여태 같이 산 세월이 너무 억울하게 되는 거예요.

결혼할 때는 다들 천생연분으로 생각했을 텐데요. 나이 들어 평생웬수가 되면 곤란합니다. 그러면 천생연분으로 짝 지어준 삼신할머니가 속상해하세요.

KBS 3라디오 출발 멋진 인생 방송작가 권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