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길 에세이] 어린 시절, 나의 아름다운 휴양지 회상

    입력 : 2022.11.18 18:03

    내가 살던 곳은 시골 같은 소도시였지만, 진짜 고향 같은 시골 생활을 한 것은 이모님 댁이었다. 초등학교 여름과 겨울 방학이면 가던 천안 광덕산 기슭. 아마 3~4년 내내 갔던 것 같다.

    천안삼거리를 지나 소정리에서 이십여 리쯤 가면 풍세를 거쳐 보산원이란 곳이 나온다. 이곳에서 풍세천을 따라 양쪽 산등성 사이를 덜컹거림과 자욱함을 견디며 다시 십여 리, 자세히 보지 않아도 유난히 호두가 많은 광덕리는 당시 50여 가구 정도의 농촌, 바로 댓거리라는 곳이다. 지금은 천안 식수원인 풍세천이 시작되는 시내를 더욱 거슬러 5리 정도 오르노라면 광덕산 언덕 밑에 4백여 년 수령의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들이 지키고 있는 광덕사가 있다.

    광덕 이모 집은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기본적인 집 구조를 지키고 있었던 듯. 집 전체가 돌담이 둘러쳐져 있는데, 호박이며 나팔꽃들이 서로 내 집인 양 버티고 있다. 사립문을 들어서면 마당이 크게 자리 잡았다. 기역자 형태의 돌기와집이었는데, 마당 높이보다 한 계단 높이에 집이 지어져 있다. 디딤돌을 딛고 올라서면 대청마루다. 마루에선 여름철엔 빙 둘러 점심을 먹는다. 바로 우측이 사랑방이다. 집 뒤로 대청마루와 사랑방을 잇는 좁은 마루가 길게 있는데, 간단히 걸터앉을 수 있다. 방학 때면 형과 나는 이 사랑방에서 주로 지냈다. 아침 사랑방 뒷문을 열면 높다란 병풍의 절벽 같은 산자락이 언제나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때가 바로 신선이 따로 없었던 때라는 것을 어찌 몰랐을까!

    사랑방에 붙은 앞마당 쪽은 소죽을 끊이는 가마솥이 낮게 있고, 그 위로 열린 다락 모양의 창고가 작게 있다. 이곳에 짚으로 만든 삼태기며 농사 소도구들이 걸려있다. 그 위에 닭이 알을 낳는 둥지가 높이 달려 있다. 가끔 운 좋으면, 닭이 알을 낳는 것을 볼 수 있다. 참 신기했다. 처음엔 작게 하얀 점이 보일 듯하다가 조금씩 알이 손톱만큼 나온다. 그러다 갑자기 알이 쑥 나온다. 이때를 맞추어 꼬끼오하는 닭 울음소리가 울리고, 닭을 하늘로 날지 못하는 날개를 퍼덕이며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대청마루 왼쪽에 방이 2개가 있다. 안방과 건넛방이다. 겨울엔 건넛방 귀퉁이는 고구마며 쌀들을 보관하는 창고가 된다. 안방은 집주인이 쓰고, 건넛방은 자녀들 차지다. 부엌은 마당에서 오른쪽에 있다. 부엌을 들어가려면 부엌 턱을 넘어야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2개 정도의 계단을 내려가야 부엌 바닥이다. 안방 쪽을 향해 큰 가마솥이 2개와 작은 솥이 1개 걸려있었던 것 같다. 대청마루와 마주 보고 있는 곳이 마구간과 화장실 겸 창고가 있다. 부엌과 마구간 사잇길로 나가면 채소 텃밭이 옆에 넓게 펼쳐져 있다.
     
    동네엔 샘물과 약수터에서 시작된 물들이 모여 이루어진 시내가 빙 둘러 흐르고 있었다. 이곳이 방학 생활의 놀이터였던 것은 멋진 행운이요 즐거움이었으리라. 겨울엔 썰매를 만들어 타곤 했는데, 특히 요즘 스케이트 날 같은 것으로 날이 하나인 외발 썰매가 유행했었다. 그러나 그 시골 아이들의 텃세 때문에 얼음이 녹을 저녁 무렵 겨우 탈 수 있었던 약 오름도 있었다. 물론 굵직한 호두알 몇 개쯤으로 같이 어울리기도 했지만.
     
    여름 방학엔 막상 헤엄을 치라면 2미터도 못 가서 서야 하는 솜씨가 바로 이곳에서 있었던 체험의 결과였으리라. 방앗간에서 방아를 타고 내려오는 물은 웅덩이로 떨어져서 제법 큰 수영장을 만들고 있었다. 앗! 제 딴에 다이빙한다며 돌투성이였던 웅덩이에 거꾸로 뛰어들었던 것. 오매, 정신없는 것. 웬 물속에도 이리 별이 많나! 머리 한가운데를 요즘도 만지면 손에 느낄 정도의 호두알 같은 혹 아닌 혹 덕분에 역시 물속은 그 이후 인연이 없는 듯했다.
     
    그곳엔 감나무와 호두나무가 많았다. 특히, 호두나무는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를 탄생시킨 1등 공신이었다. 지금도 전국 어딜 가나 호두과자의 명성은 웬만한 제과회사 브랜드와 비교가 안 된다. 호두알은 한창 여름이 수그러질 무렵, 호두 알맹이를 싸고 있는 두툼한 껍질을 벗겨내어 말려야 제 호두알의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때를 못 참고 시냇가로 달려가 돌에 마구 비벼 알맹이를 벗겨내는 것을 더 즐겨했다. 한 달 가까이 지나야 손에 물든 것이 없어질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지금도 그 호두나무 그늘의 추억에 잠기노라면, 한여름 찜통더위쯤이야 시원스레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가버리곤 한다. 반바지 까까머리 아이들이 제 키의 열 배 넘는 호두나무 꼭대기를 향해 오르는 건, 나무 타기 뽐내기나 제 주먹보다 작은 호두 때문만은 아니었다. 뙤약볕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산에서 부는, 그 어떤, 새로운 바람과 함께 놀고 싶었던 것.
     
    나무 꼭대기에 올라 산들과 구름이 맞닿는 곳을 바라보며, 거기 무엇이 있을까, 누가 또 있을까, 생각하는 일이 제 딴엔 얼마나 멋진 일이었던지! 그렇게 상상의 날개를 훨훨 펼치노라면, 어느덧 솔솔 부는 바람결을 타고 꿈나라도 가곤 했다. 하늘 가까운 꿈속에선 언제나 훌륭한 어른이 되어 있었고.
     
    잠깐 사이, 그 단꿈을 깨면, 으레 호두나무 밑 개울가로 풍덩 뛰어들었다. 깔깔깔 물장난 끝엔, 아이들은 너나없이 갓 영그는 시퍼런 호두 알갱이 껍질을 물속 손 돌멩이 살에 비벼댔다. 아이들 손톱만큼이나 보들보들한 호두 알갱이, 하하, 어느새 멋진 간식거리가 되어가고. ‘행복함을 잊고 지내는 삶이 아름답다’란 듯, 호두나무 꼭대기에 불던 바람은, 아무리 덥다손, 지금도 어린 마음이 되고 싶은 가슴 한쪽을 향해, 내 입술 미소 끝자락을 잡고 계속 불어대는 것이었다.

    참 그리운 어린 시절, 나의 휴양지는 세상 어디보다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