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Screen/ 제주도 섭지코지

▲ 올인의 무대 섭지코지. 왼쪽 둔덕의 오픈 세트장인 성당. 흰 방두포등대와 바다 가운데 바위기둥이 어울려 멋진 풍경을 이루었다.

수많은 차량들이 제주도 성산 일출봉 남쪽의 어느 한적한 해안가로 몰려가고 있다. 경치 좋은 제주도 내에서도 절경을 자랑하는 섬 우도의 산호 백사장도 고작 두어 명 연인이 모두였는데, 여기 섭지코지는 주차장이 만원이어서 주차장쪽에서 다른 차가 빠지기를 기다리는 차량만도 수십 대 꼬리를 이었다. 멀리 공터에 주차하고 걸어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안내팻말도 서 있지 않은 좁은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끝까지 들어갔다. 바닷가에 뜻밖으로 널찍한 주차장과 간이음식점들, 그리고 흰색 화장실 건물도 서 있다.
계단을 따라 오르는데 이마에 서풍이 선뜻 와닿는다. 성당이 선 둔덕으로 걸어가며 “여기는 처음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와본 것 같다”는 어느 중년 여인-. 올인은, 아니면 이곳 풍경은 그렇게 기시감(旣視感)을 일으킬만큼 매혹적인가.
흰 파도가 포말지며 부서지는 해안절벽 위에 갈색 톤의 집-성당이 한 채 그림 같이 앉았고, 절벽 위의 완만한 굴곡을 이룬 초원을 따라 그 성당까지 야트막하고 갈색의 부드러운 선을 그린 목책이 뻗어 있다. 우리가 간혹 안주하고파 했던 그런 풍경이 거기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풍경을 음미하며 천천히, 젊은 날의 꿈속 한켠에 자리잡았던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제주도 최고의 스크린 명소로 부상
이재수의 난을 촬영했던 아부오름, 화엄경과 시월애의 배경이었던 우도 등 기존의 제주도내 스크린 속 명소들을 제치고 단연 최고의 드라마 명소로 떠오른 섭지코지-. 평일에는 물론 주말엔 수천 명이 이 해안가 명소를 찾아든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정동진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스크린 명소가 아닌가 싶다.
스크린 속의 촬영지가 명소로 부상하려면 드라마나 영화가 크게 히트를 치거나 아니면 경치 자체가 남달리 좋아야 한다. 섭지코지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올인은 방영 직후부터 대인기이며, 섭지코지는 실은 오래 전부터 드라마나 영화 배경지로 애용되어 왔던 곳이다.
섭지코지의 코지는 ‘곶‘(바다쪽으로 좁고 길게 뻗어 있는 육지의 한 부분)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섭지’를 일러 혹자는 좁은 땅이란 뜻의 한자말 협지(狹地)가 음운변천한 것이라 하는데, 좀 어거지 냄새가 난다. 그보다는 섭, 혹은 섶은 잎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이니, 곧 이파리 같은 모양의 곶이란 뜻의 제주도 말이란 설명이 그럴듯하다. 지도를 보면 실로 이곳은 바다에 뜬 넓적한 이파리 모양새다.
아무튼 카메라가 잘 받는 얼굴이 있듯 섭지코지는 촬영지로 안성마춤인 모양인지, 올인 이전에 영화 단적비연수, 연풍연가, 이재수의 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신데렐라, 상도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수평선 위로, 혹은 파도가 포말지며 부서지는 갯바위 지대 위로 우아한 말의 모습이 걸쳐지고 저편에 등대와 검은 기둥바위가 포커스 아웃된 상태로 부옇게 떠오르는 그런 곳은 제주도에서도 별로 흔치 않다.

▲ 연대에 올라 내려다본 성당 세트.

이병헌(김인하 역)과 송혜교(민수연 역), 허준호(최정원 역) 등이 열연하고 있는 SBS 드라마 ‘올인’은 노승일의 동명소설 올인을 각색해 만들었다. 돈, 명예, 사랑의 승부에 순간마다 100%를 거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제목이 ‘all in’인 이 드라마에서 섭지코지는 배경이자 등장인물들이 잃은 평화의 상징이다.
올인은 총 25부작으로 방영될 예정이며 2월6일 목요일자 시청률이 33%를 넘어서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드라마의 2회에서 비로소 섭지코지는 인상적인 풍경으로 떠오른다. 최정원(지성)의 아버지(이덕화 분)가 아내와 고등학생인 아들을 데리고 승마 중인 보스(조경환 분)를 찾아가 카지노의 운영권을 넘겨달라고 무릎 꿇는 모습 뒤로 섭지코지의 우뚝한 기암봉 일대 해변 풍경이 깔린다.
왜 어머니와 나까지 데려갔는가. 그런 아들의 반발에, 차 안에서 아버지는 남자는 목표를 위해서는 자존심이든 뭐든 다른 모든 것을 걸 줄 알아야 한다고 대답한다. 일부러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 너를 데려갔다는 정원의 아버지와 같은 적극적, 혹은 극단적 성격의 인물들이 이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 인물들의 성격이 그렇듯 강인하고 모나기에 섭지코지 해변과 초원은 한층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으로 대비된다.
승마장과 바로 인접해 올인의 오픈 세트인 성당과 수녀원, 성모상이 세워져 있다. 마치 오래 전부터 거기는 성당이 설 자리였기라도 한 듯, 어울린다. 오늘 맑지만, 혹 비바람이 몰아치더라도 이곳은 여전히 아름다운 ‘폭풍의 언덕’이 될 것이다.

방두포 등대에서 보는 경치 또한 절경

▲ 방두포등대에서 내려다본 섭지코지 북쪽 해안과 성산 일출봉.

탐방객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팔순 노인부터 중년 부부와 가족, 연인들까지 두루 이곳을 찾는다. 그중 그래도 젊은 패들이 가장 감격해한다. 절로 시심이 일듯, 여기에 서면 절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듯한 감흥이 드는 것인가. 송혜교가 섰던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사진을 찍고픈 젊은이들은 기어코 출입금지 팻말이 걸린 밧줄을 훌쩍 뛰어넘고 만다.
드라마 속의 그 어린이 놀이터. 역시 드라마 속의 한 장면을  어느 모녀가 재연하고 있다. 성당 옆, 검은 돌로 쌓아올린 네모 반듯한 연대(煙臺·봉수대의 일종) 옆이 승마장이다. 드라마 속 보스 부녀처럼 말을 타보는 연인들-. 일출봉과 등대를 배경으로 한 사진 한 장도 빠트릴 수 없다.
천혜의 자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특히 강원도에 스크린 명소를 빼앗겨온 제주도는 올인 제작 초기부터 파격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드라마가 성공하자 촬영지를 소재로 한 관광상품 개발과 더불어 동남아 기자단 초청 팸투어를 적극 추진하고도 있다. 국내엔 드라마 올인 패키지 여행상품이 벌써 등장했다고 한다.
승마장 목책을 따라 둔덕을 내려갔다가 방두포등대 계단을 올랐다. 해면에서 33m 높이인 등대 옆 난간에 서자 올인의 무대 섭지코지가 한눈에 내려다뵌다. 성당과 승마장의 말, 그 왼쪽 아래 검은 절벽에 와 부서지는 파도, 저 멀리 광채로 번들거리는 수면, 거기서 떠오르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탐방객 행렬….
등대 저 아래 갈매기 똥이 하얗게 뒤덮인 바위기둥엔 전설이 얽혀 있다. ‘목욕 하는 아리따운 선녀를 본 용왕신의 아들이 용왕에게 선녀와 혼인시켜 주기를 간청하자 용왕은 100일간 기다리라 했는데, 100일이 되던 날 갑자기 비바람과 풍랑으로 선녀가 하강하지 못해 아들은 사랑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슬픔에 빠져 그 자리에 서서 바위로 굳었다’는-.
드라마 올인에서 인하와 정원은 수연을 본 순간 가슴이 멎을 것 같은 사랑을 느낀다. 누가 승자가 될까. 둘 모두 실연하며 고통으로 저 기둥바위처럼 굳을까.
저기 성산 일출봉쪽 해변엔 노란 황금색 유채꽃밭이 가꾸어져 있다. 돈 조금(500원) 받고 사진 찍게 해주는 관광용 유채밭이다. 등대 아래 갯바위에는 몇 명 낚시꾼이 한가로이 앉아 있다. 모든 것이 평화롭다. 

교통
제주시에서 동회선 일주 직행버스 이용. 15분 간격 운행, 1시간30분 소요, 요금 3000원. 신양리에서 내려 섭지코지까지 택시를 타거나 걸어간다(30분 소요). 자세한 교통편은 119페이지 한라산 르포기사 참조.
자가 운전시는 일단 성산읍 남쪽 신양리 마을의 신양 해수욕장을 찾아간다. 이 해수욕장 옆으로 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끝까지 들어가면 된다. 

숙박
성산읍에 거의 장급 여관 수준의 민박집이나 펜션이 있다. 고망난돌민박 064-787-1060, 고성신양어촌계민박 064-782-2970, 등경돌민박 064-782-0707. 

먹거리
성산읍 주민들이 추천하는 맛집으로는 해촌해물탕집(064-784-8001), 미주회관 쥐치탕(784-0301)이 있다. 신양해수욕장 옆 섭지 해녀의집(064-782-0672) 전복죽도 괜찮다.

글 안중국 차장 / 사진 허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