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영청 밝은 달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의 갈대밭-. 지뢰를 밟은 채 꼼짝 못하고 선 국군 수색조 병사, 지뢰 뇌관을 분리해 그를 구해주는 북한군 병사, 이로부터 비롯된 국군 병사 2명과 북한군 병사 2명의 우정과 비참한 파국을 줄거리로 하는 영화 공동경비구역의 촬영현장인 충남 서천군 한산면 신성리 갈대밭은 겨울 들어 오히려 더 인기다. 갈대밭 자체의 아름다움은 늦가을이 절정이지만, 이곳은 금강변이어서 겨울 철새 구경을 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변에 많은 명소가 있다. 우선 금강 하구둑이 지척이며, 한산면은 한산 모시로 유명한 고장으로 모시전시관이 있다. 3월 들어서는 아마도 한결 더 많은 사람이 몰릴 것이다. 3월 초부터 2주일간 이곳에서 단 30분 거리인 마량해변에서 쭈꾸미 축제가 열리거니와 500년 수령을 자랑하는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는 시기이기도 한 때문이다.
폭 200m, 길이 1km, 7만여 평 갈대밭
정동진은 사실 정동을 향한 곳이란 뜻의 지명과 바다에 근접한 역사 건물 등의 특색을 제외하고 경치 자체만 보면 동해안의 여늬 모래사장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이에 반해 이곳 신성리 갈대밭은 그 자체가 이미 대단한 경관지다. 폭 200m, 길이 1km, 면적 7만여 평에 달하는 광대한 면적의 갈대밭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이곳이 그닥 주목받지 못했던 것은 순전히 찾아가는 길의 불편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산면 소재지에서 이곳 신성리 갈대밭까지 가려면 예전에는 좁은 농로를 따라야 했다. 때문에 과거엔 인삼포막에 씌울 재료로 갈대를 베어가려는 사람들이나 간혹 찾아들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그러다 공동경비구역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의 하나로 갈대밭 신이 화제가 되면서 명소로 떠오른 것이다.
영화 배경이 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명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곳도 공동경비구역 이전에 이미 ‘나는 아프리카로 간다’라는 영화의 한 배경이 되었으나 영화가 히트를 치지 못하며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한산면 소재지에서 동쪽 부여 방면으로 빠져나가면 Y자형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 길 건너편에 ‘신성리 갈대밭 5km→’ 팻말이 서 있다. 신호를 받아 우회전, 1.5km쯤 가서 길이 크게 오른쪽로 굽도는 지점에서 또한 팻말이 가리키는대로 왼쪽의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여기서 반대편 차선 요주의! 다리 건넌 후 일직선으로 끝까지 달려가면 제방 위로 이어진다.
제방 위로 일단 오르면 얼른 우회전, 오른쪽 100m 저편 간이매점 옆의 간이주차장에 주차부터 해야 하련만 대개는 차장 앞으로 펼쳐진 광대한 갈대밭 풍경에 뒤를 까맣게 잊기 일쑤다. 제방 바로 아래부터 그 경계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광대하게 펼쳐진 억새밭 저 끝에는 아련한 모습으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공동경비구역이 개봉 154일간(2000.9.9~2001.2.9) 서울 250만9천여 명, 전국 약 579만6천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히트를 친 뒤 신성리 갈대밭까지는 2차선 포장도로까지 깔렸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처럼 야간 조명으로 분위기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곳은 철새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한 때문이다.
그래도 갈대밭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게끔 기본적인 시설은 해두었다. 간이매점 아래, 비교적 폭이 좁은 갈대밭 내에 산책로를 내고, 수로 위로 구름다리도 갖추어두었다. 한국의 명시들을 판자에 써 세워둔 ‘시와 함께 들어가는 길’, 우스갯말을 적은 ‘재미있는 길’ 등 갈대밭 길을 따라 걷노라면 한 길을 넘는 갈대밭 위로 고개 빼고 둘러볼 수 있는 평상도 만나고 금강 물가로 나설 수도 있다.
과거엔 그래도 아베크족만큼은 종종 찾아들었다고 주민들은 돌이킨다. 주위의 아무도 우리를 볼 수도 찾을 수도 없는, 그래서 완벽히 우리 둘만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던 이 신성리 갈대밭은 젊은 연인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을까.
서천군이 조성한 갈대숲 길은 대나무나 밧줄로 난간을 해두었지만 사람 없을 때 휘돌아보노라면 혹 길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일 정도로 갈대숲은 짙다.
그러나 신성리 갈대밭 분위기를 제대로 맛보려면 사람 없을 때인 평일에 가보아야 한다. 갈대란 얼마나 예민한 물건인가.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 그의 온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도 아닌 것. /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 까맣게 몰랐다…’<신경림의 시 ‘갈대’ 중에서>.
▣교통 ,숙박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서천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서천읍내~한산면 소재지의 순서로 찾아간다. 경부고속도로로 내려가다가 최근 개통된 평택~안성 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서해안고속도로로 옮겨갈 수도 있다. 한산면 한산모시관 옆에 방이 널찍한 건지산장(041-951-9442) 등 숙박업소가 있다.
글 안중국 차장 / 사진 허재성 기자
서천해양박물관 서천 서쪽 끝 서면 마량리에 있다. 서울 코엑스의 수족관을 본 아이만 아니라면 분명 감탄할 곳이다. 개복치, 고래, 식인상어, 가오리 등 대형 어류 박제를 비롯해 총 15만 점의 바다 동물을 전시해 두었다. 서천 앞바다에서 잡은 어류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일부 어종은 아이들이 직접 만져볼 수도 있게 해 큰 인기다. 개장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료 대인 4,000원, 소인 2500원. 옥상에서는 일출과 일몰 모두를 볼 수 있다(전화 041-952-0020).
한산모시관 모시풀에서 모시 제품까지 모시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곳. 추운 겨울에는 오후에, 여름에는 새벽부터 이 전시관에서 인간문화재 4명이 나와 모시 짜는 모습을 보여 준다. 전시관 전화 041-951-4100. 우리 전통 생활에 박식한 안내인이 있다. 한산면 일대에는 현재도 150가구가 넘는 집에서 모시를 짜고 있다. 전시관에서 가까운 곳에서 모시장도 서는데(1일·6일장), 서울보다 훨씬 싼 값에 모시를 살 수도 있다.
소곡정 아구찜 한 마리가 4kg이 넘는 큰 것으로, 수입 냉동산이 아닌 생아구를 쓴다는 집이다. 제1회 서천군 향토음식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아구는 11월부터 4월까지 특히 맛이 좋으며, 4월 이후는 산란기여서 맛이 덜해진다고 한다. 찹쌀로 빚은 이곳 토속주인 소곡주와 함께 들면 특히 별미다. 한산모시관 건너편에 있다(전화 041-951-8856).
서산회관 쭈꾸미 소라 껍데기를 이용해 산 채로 잡아올리는 마량리 쭈꾸미는 그물로 잡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쭈꾸미의 크기와 양에서도 서울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해양박물관 입구를 지나 동백정 가는 도중에 있는 서산회관의 쭈꾸미 전골이 특히 유명. 2만~3만 원 짜리면 서너 명이 배불리 먹는다. 올해 쭈꾸미 축제는 3월30일부터 4월12일까지. 다른 지역과 달리 현지 주민들만 포장음식점을 차릴 수 있게 해 축제 때도 양이 푸짐한 편이다. 그래도 평일이 좋다고 서산회관 안주인은 귀띔한다(전화 041-951-7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