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Screen] 대관령목장 -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무대로 자리매김

▲ 대관령목장 초원을 찾은 젊은 부부. 대관령목장은 이제 젖소를 키우는 목장이 아니라 낭만을 구가하는 관광명소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넓은 초원에 홀로 선 나무는 하나의 상징이거나 표상(表象) 같다. 그래서인가. 사람들이 초원의 한 그루 나무에 가 기대고 싶어 하는 것은-. 신과의 교통로이자 부정한 것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한 지킴이로 세웠던 솟대의 기억이 피속에 녹아 있을 우리들에게 더더구나 둔덕 위 한 그루 나무는 큰 관심의 대상이다.

대관령목장에는 수많은 나홀로 나무가 있다. 그 나무 중에는 이름을 얻어 가진 것이 이제 여러 그루 된다. 은서나무, 준서나무, 그리고 연애소설 나무도 있다. 모두 드라마나 영화 속에 등장한 덕이다.

은서나무와 준서나무는 드라마 가을동화 때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사연이 얽히는 장소로 등장하며 일약 유명 나무가 되었다. 영화 연애소설에서 스토리가 비극으로 급반전하는 계기가 되는 우중 장면이 촬영되면서 1단지 우사 북쪽 둔덕의 나무는 평일에도 청춘남녀가 종종 찾아드는 명물이 되었다.

그외, 나무가 선 곳이 아니어도 대관령목장의 초원은 곳곳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시원하게 툭 트인 초원, 혹은 설원이 필요하다 싶으면 영화감독들은 으레 대관령목장으로 간다.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많이 영화 배경이 된 곳이 대관령목장일 것이다.

대만서도 드라마 촬영차 찾아와

▲ 대관령목장길의 차량들. 작년 8월 구제역으로 인한 통제가 풀린 뒤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평일인 데다 태풍 소델로가 곧 온다니 사람 그림자도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하며 찾아간 6월18일의 대관령목장은 그러나 여느 관광지의 주말처럼 탐방객이 많았다. 물론 어김없이 드라마 촬영팀도 있었다. 대만 케이블TV채널인 PGE가 한국의 방송사와 더불어 막 제작을 시작한 ‘연향(戀香)’-우리 말로 풀면 사랑의 향기- 촬영팀이다.

▲ 대만 한국 합작의 드라마 연향의 남녀 주인공이 대관령 초원에서 연기하고 있다. 일본인 청년장교와 한국인 처녀가 전생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1940년대 한국-. 일본인 청년 장교 사쿠라(대만 천티엔 분)와 한국 여성 호연(추자연 분)은 사랑에 빠지나 살벌한 사회적 환경은 두 사람 모두 자살로 몰고간다. 두 영혼은 그 50년쯤 뒤인 1994년 대만의 청춘 남녀로 태어나 다시 만난다. 전생의 기억은 전혀 없지만 남자는 여자의 체취에서 뭔가 깊은 것을 느낀다. 그것은 도라지꽃 향기다. 도라지꽃이 만발한 한국의 어느 초원에서 싹텄던 애틋한 전생의 사랑을 그것이 자꾸만 일깨운다. 그래서 제목이 연향이며, 대관령목장 초원은 전생에서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헤어지고 죽는, 드라마상에서 중요한 장소다. 그래서 20회 드라마가 시작될 때마다 이곳 초원 풍경은 아스라히 화면에 깔리게 된다.

대만에서 대히트한 드라마 ‘애정백서’의 왕 감독은 아마도 이런 초원은 처음인지, 해피그린(주) 김영교 사장은 “안내하는 데마다 오케이, 오케이 하면서 하루만에 다섯 포인트 설정을 모두 끝내버리더라”고 전한다.

해피그린(주)은 목장 아닌 관광지로서 대관령목장을 관리하는 업체다. 목부들이 쓰던 숙소와 연수원 등을 관광객용 업소로 말끔히 수리하는 등 준비해 오다가 구제역 소동이 끝난 뒤인 작년 8월부터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 촬영장소마다 팻말도 세워두자 하루가 다르게 탐방객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 대관령목장의 젖소떼를 구경하고 있는 일가족.

대관령목장 내에는 총연장이 120km인 수많은 갈래길들이 있다. 그중 널찍하고 승용차도 다닐 수 있는 탐방객용 주도로는 22km로서 도로변 명소마다에, 그리고 들어가서는 안되는 샛길 입구마다 팻말이 서 있으므로 누구든 안내 없이도 다닐 수 있다. 관리사무소 앞 널찍한 마당의 안내소에서 안내도를 한 장 받아들고 북동쪽으로 다리 건너 올라가는 것이 대관령목장 탐방의 첫 순서다. 얼마 오르지 않아 오른쪽 저편에 두 그루 소나무 은서나무와 준서 나무가 서 있다. 셔터를 누르고 얼른 뛰어가 연인의 어깨에 팔을 두르는 남자와 깔깔거리고 웃는 여자-. 수령 400년의 노거송은 두 사람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1단지 우사(牛舍) 가운데를 가로질러 좀더 가파른 둔덕을 오르노라니 오른쪽 둔덕 저 위에 한 그루 나무가 그림 같이 서 있다. 그게 연애소설 나무다. 주역인 지환(차태현 분), 수인(손예진), 경희(이은주) 세 사람이 점퍼를 함께 뒤집어쓴 채로 비를 맞으며 즐거워하던 곳이다. 거기도 역시 어김없이 청춘남녀가 있다.

이곳은 조망이 참으로 좋다. 깨끗한 화강암이 고래처럼 등을 내밀고도 있어 선들바람을 맞으며 앉아 쉬기도 좋다. 연애소설이 아니었어도 사랑받았을 법한 그런 장소다.

리드카나리 초원의 물결 무늬 아름다워

초원 주변엔 여러 가지 야생화도 피었다. 봄에는 얼레지, 양지꽃, 홀아비바람꽃 등 만발했고, 지난 5월 말에는 민들레가 온 목장에 만발했다. 이제 곧 초롱꽃이 목장 초원을 장식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 연애소설로 유명해진 대관령목장 둔덕의 나무.

차가 갑자기 불쑥 튀어오른 듯 올라선 둔덕 위-. 사방 조망이 아까의 연애소설나무 둔덕보다 훨씬 더 광대하다. 평지는 소의 먹이인 리드카나리가 그득 자라나 물결치고, 그 사이마다의 좁은 계곡들에는 울창한 숲이 이루어졌다. 저기 동쪽으로는 선자령 능선이 아슴하다. 여기서는 안재욱 주연의 영화 ‘선녀와 사기꾼’의 첫 장면이 촬영됐다.

중동 초지를 지나며 이윽고 지표면이 아니라 땅과 하늘의 경계면 위로 올라선 느낌이다. 여기, 저기, 어디든 이제는 전망이 다 좋다. 시원한 바람에 풀 내음이 스친다. 개마고원, 진안고원과 더불어 이곳 대관령목장 일대는 한국의 대표적인 고원지대다. 지질학에서는 이를 융기준평원(隆起準平原)이라 부른다. 침식을 받아 기준면까지 한 번 내려앉은 작은 기복을 이룬 땅이 다시 지각변동에 의해 높은 곳으로 밀려 올라간 것이다.

우측 갈림길을 따르자 간이화장실 4동을 갖춘 널찍한 공터 위다. 대형 버스도 이곳까지는 들어올 수 있다. 해발 1,130m 지점으로, 5월27일까지 눈썰매를 탔던 곳이다. 공터에서 조금 더 가자 선자령(4km)과 동해전망대 갈림 길목. 우측 저편, 숲과 초지가 선명한 경계를 이루며 뻗어나간 능선은 곧 백두대간이다. 그 중간 완경사 초원에서 연향 촬영이 한창이다.

초록 들판에 붉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선 여배우가 꽃처럼 아름답다. 같은 장면을 벌써 다섯 번 반복시키는 데도 배우의 미소는 밝기가 처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도라지꽃을 꺾어다 꽂아둔 촬영지 바로 옆엔 죽은 소나무가 앙상하다. 불길한 미래를 화면으로 암시하고자 해서 이런 데를 고른 것인가. 아무튼 제작진은 연향의 대히트를 자신하고 있으니, 방영 이후 이곳은 대만 관광객들이 특히 자주 찾는 명소가 될 것이다.

▲ 동해전망대. 등 뒤로는 광대한 초원 풍경이 펼쳐진다.

한쪽은 크고 작은 구릉지대의 초록빛 초원, 한쪽은 깊은 성하의 계곡과 동해 푸른 물이 뵈는 대관령목장 최고의 조망처인 동해전망대-. 조그만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젊은 남녀가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동해전망대 이후로는 길이 좀 험해지는데, 그래도 서슴없이 내려서는 어느 중년 부부-. 겨울에 왔다가 좋아서 오늘 초여름 대관령목장을 보러 또다시 왔다. 지난 겨울 어느 영화촬영팀은 불도저로 여기 동해전망대까지 찻길을 뚫었는데, 무려 7m가 넘는 눈벽이 드러났다고 한다.

서울이 폭염일 때도 소황병산정은 가을날

경사길을 따라 내려가노라면 저 앞 리드카나리 초원 가운데 회색 망루가 하나 서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세트 중 하나였던 것이다. 겨울 장면이었고, 한 달이나 머물며 촬영했는데, 많을 때는 400명 이상 동원되었다.

실제로 매가 많이 날아온다는 매봉 정상 옆 공터를 지나며 다시 광대한 구릉지가 눈에 든다. 저기 한일목장 것까지 합치면 초지가 무려 1천만 평이 넘는다. 해피그린은 이 광대한 구릉지에 각각 수천 평 넓이의 야생화원을 종류별로 조성하고 젖소만큼 ‘그림’이 좋은 면양도 키울 예정이다.

찻길은 다시 골짜기 안으로 내려앉는다. 직원들 사택 앞을 지나며 펼쳐지는 초원은 영화 중독에서 이병헌이 젖소 떼를 모는 장면을 연기했던 곳으로, 야인시대와 임꺽정 등도 여기서 몇 장면을 찍었다. 이 갈림길목에서 오른쪽으로 20분쯤 올라가면 해발 1,430m의 소황병산 정상이다. 이곳은 남한에서 승용차로 오를 수 있는 최고(最高) 지점. 대관령이 해발 약 800m이니 그보다 600m쯤 더 높다. 이런 곳이라서 서울이 영상 30℃가 넘는 폭염일 때도 이곳은 고작 15℃ 안팎의 가을 날씨 같다. 

▲ 1.대관령목장 길을 사륜 오토바이(1인용)로 돌아볼 수도 있다.관리사무소 앞에서 1시간에 10,000원 받고 빌려준다. 2.가을동화의 은서·준서 집. 현재는 직원 숙소로 쓰고 있다. 이 주변에 탐방객용 숙소가 밀집해 있다. 3. 해피그린(주)을 열성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김영교 사장(45). 이곳 토박이로서 스키에도 능한 사람이며, 수필집과 시집도 낸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원앙의 서식지였으나 안타깝게도 작년 호우에 토사로 메워져버린 삼정호 옆을 지나며 찻길은 수없이 덜컹거리며 여러 차례 계곡을 건넌다. 목장 가운데 계곡 치고는 매우 물빛이 맑고 암반도 좋다. 가을동화에서 은서와 준서가 서로간 남매가 아님을 확인한 뒤 밀월여행을 떠나왔던 그 집 ‘은서·준서네 집’을 지나면 대관령목장 영화 명소 순례는 대강 끝난다. 한낮의 풍경만으로도 대관령 초원길은 꿈길 같았을 것이지만, 그러나 새벽과 노을 풍경만 할 것인가. 

찾아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의 횡계 나들목으로 빠져나가 T자형 3거리에서 우회전, 영동고속도로 밑을 지나면 V자형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주욱 가면 원형 로터리가 있는데, 빙 돌아 90도 꺾어 좌회전, 횡계교를 건너자마자 포천이동왕갈비집 앞에서 왼쪽 횡계초등학교 방면으로 직진, 6km 가면 대관령목장 초소다.

목장 입장료는 1인당 5,000원. 전화 033-336-0885 홈페이지 주소 www.happygreen.net
 
숙박

대관령목장 내에 숙박시설과 음식점 등이 갖춰져 있다. 연수원(숲속의 산장) 2·4·6·8인용 일반실은 60,000원(8인실은 공동화장실 사용), 특실은 80,000원.

별채로 선 별장민박(30평형·방 2 거실 1 다락방 1. 15명 사용 가능) 주말 25만 원, 주중 12만 원. 목장민박(24평형) 주말 16만 원, 주중 8만 원.

숲속의 산장 1층의 식당 풀밭가든은 각종 찌개백반, 황태구이, 생태탕 등을 내는데, 맛도 괜찮고 종업원들도 친절한 편이다.

글 안중국 차장 / 사진 허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