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어디로 갈까.’ 7월 말이나 8월 초에 접어들어서야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면, 좀 갑갑해진다. 피서 제일의 문제는 잠자리인데, 전망 좋고 시원한 방 잡기는 아예 그른 때다. 동·서·남해안이나 설악, 지리, 오대, 덕유산 등 명산 자락 그 어디건 좋은 방들은 진작에 예약이 끝났다. 그래도 어딘가로 떠나고 싶거나 혹은 꼭 떠나야 할 상황이라면-. 추천할 최적지는 바로 강원도 태백이다.
피서를 ‘시커먼 탄광도시’로?
태백시라고 해서 피서철로 방이 마구 남아도는 것은 아니다. 태백도 여름마다 많은 외지인들로 북적댄다. 다만 그들이 피서객이 아니라 거의 운동선수라는 점이 특이하다. 여름마다 전국 각지에서 중고교며 대학교 운동선수들이 너도나도 여름 전지훈련차 이곳 태백을 찾는 것이다.
이들이 주로 태백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시원하니까!”다. 그중 태반이, 서울사람들이 피서하러들 찾아 내려가는 제주도나 남도 해안지방 선수들이라는 점은 놀랍다. 파도 치는 시원한 고향 바닷가 놔두고 왜? 하고 묻자 이미 7월 초부터 한 달 잡고 와 있던 그들은 한결같이 “시원하면서도 습도가 낮아 쾌적하기로는 남한에서 태백이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숙박업소 주인들은 사뭇 이런 엄살도 떤다. “여름철로도 연료비가 너무 나가 죽겠어요.” 묻지도 않은 모기 얘기를 이렇게도 덧붙인다. “그리고, 모기? 그거 초저녁에 두어 마리 날기는 나는데, 추워서 아무 힘도 못 써요.”
태백은 한여름 평균 기온이 19℃라는 태백시의 말이다. 이렇듯 ‘여름에도 서늘한 태백’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일반에 피서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시커먼 탄광도시의 이미지가 워낙 깊고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백 곳곳에 산재했던 탄광들은 거의 폐광된 지 오래이며, 그 후 태백은 검은 때를 거의 모두 벗었다. 태백시는 ‘도심 평균 해발고도가 650m인 고원관광휴양도시 태백!’을 근래 거듭해 외치며 관광객들을 위해 여러 편의를 주고자 애쓰고 있기도 하다.
만약 야영생활을 즐기는 캠핑 매니아라면 금상첨화일 곳이 태백이다. 태백에는 8월 폭염에도 추워서 견디기 어렵다는 야영장이 여러 군데이기 때문이다. 이들 야영장은 한여름에도 가을날처럼 선선하다. 그러니, 큼직한 텐트만 있다면 절정의 피서철에 무작정 떠나도 좋을 곳이 바로 태백이며, 태백뿐이다.
태백에서 동해바다가 뜻밖으로 가깝다는 사실도 큰 매력이다. 고작 1시간 이내 거리다. 도계 지나는 38번 국도는 막히지만 않으면 삼척 해변까지 50분이면 닿고, 피서철이라도 별 체증이 없는 도로라고 태백사람들은 말한다. 밤에는 서늘하고 모기 없고 숙박료도 싼 태백에서 묵으며 한낮에는 해수욕장, 아니면 근처 계곡을 다녀오는 태백 중심의 피서-. 이는 피서철 차선책이 아니라 최선책이라고 할 것이다.
삼척읍에서 원덕까지 약 50km 해변길 드라이브 후 가곡천을 끼고 태백으로 돌아오는 길 또한 경치 좋고 교통체증도 없다. 다만 여러 곳에서 수해 복구공사를 하고 있어 올해 이 가곡천 물놀이는 좀 어렵다.
태백 중심 2박3일 이렇게 엮어보자
8월에 태백 중심으로 2박3일, 혹은 3박4일 산행+피서여행을 한다면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 피서철에는 태백까지 가는 게 일단 문제인데, 출발지가 서울이라면 고속도로, 국도 어디든 다소간 교통체증은 감수해야 한다.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제천으로 가면, 그후 영월 지나 태백까지는 별 걱정 없다. 양평~용두~횡성~새말~평창~정선~태백의 순서로 국도만 따르는 것도 권할 만한 노선이다.
첫날은 필경 일러도 점심 때 가까워서 태백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초막막국수(033-553-1104)나 한 그릇 먹고 나서 하늘을 본다. 쾌청하고 햇볕이 따가우면 고산 드라이브길에 나선다. 만항재나 싸리재로 경치 구경 겸 피서길에 나서는 것이다. 여기에 이어 미인폭포, 구문소 정도 보면 된다. 만항재에서 야영할 예정이면 명소 구경을 먼저 한다.
둘쨋날은 태백산, 혹은 절골 산행이다. 태백산은 번개만 치지 않는다면 비가 어지간히 와도 올라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계곡 건너는 지점마다 안전시설이 다 돼 있거니와, 안개 끼고 비 오는 날의 태백산 능선은 천년 주목 거목들이 즐비해 그 풍광이 신령스럽고 볼만하다. 곳곳이 안내판이 돼 있어서 길 잃을 염려도 거의 없다.
그러나 비올 때 절골 산행은 절대 안 된다. 햇볕 쨍쨍 해서 더운 날 피서 겸해서 갈 곳이다. 태백산 북쪽에 한얼약수탕(033-554-0633)이 있으며, 시내에 24시간 찜질방이 있으므로 우중산행 후 뜨끈한 목욕이 필요하면 들른다.
저녁 때는 뭘 하나? 8월1일부터 8일 사이라면 태백산 도립공원 당골광장에서 태백시가 주최하는 ‘태백산 쿨 시네마 페스티벌’에 구경간다. 매일 저녁 시원하고 모기 없는 해발 900m대 고지대 널찍한 광장에서 영화 보는 맛, 괜찮다. 저녁 7시부터 일단 음악회 같은 것 먼저 1시간쯤 하고 8시부터는 커다란 영사막에다 영화를 보여준다.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이니 매우 싼 편이다. 혹, 싸구려 영화는 아닌가 싶은데, 살인의 추억, 매트릭스2 등 히트작 위주다(문의 태백시청 관광문화과 033-550-2081, 2828).
세쨋날은 바닷가로 간다. 삼척 해수욕장에서 머물다가 오후 서너 시경 해안도로 따라 드라이브하면서 남하, 원덕에서 다시 가곡천을 따라 태백으로 돌아온다. 회가 당기면 임원항의 횟집거리에 들른다. 횟값은 여름에는 어디든 좀 비싸지만, 이곳은 다소 덜한 편이다. 날마다 횟감의 종류와 양이 크게 달라지므로 전화부터 해본다(경북집 033-573-4821, 팔도강산 572-5187, 신흥집 573-5976, 대성집 572-5138).
네쨋날은 칠량이골 계곡 물놀이가 괜찮을 것이다. 계곡에서 놀다가 점심 먹고 오후 서너 시경 귀가길에 오른다.
태백의 숙박시설들
피서철에도 방이 남는다!
태백이 피서지로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피서철 숙박료가 타지에 비해 매우 싸다는 것이다. 물론 피서철에는 조금 올려받지만, 연간 보름만 보는 해안가의 피서객 전문 업소들처럼 게딱지만한 방을 10만 원 이상 호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번 취재시 여러 업소를 다니며 물어보니, 거의가 “피서철엔 평소보다 1~2만 원쯤 더 받아왔다”고 말했다. 때문에 태백에 숙소를 두고 동해안 해수욕장을 오가는 ‘태백 단골’의 실속파 피서객들도 많다.
태백을 운동선수들이 많이 찾기는 하지만, 그들이 묵는 집은 한정돼 있다. 합숙훈련을 편히 하기 위해 식당을 겸한 민박집만 주로 이용한다. 이런 집은 대부분 8월 중순까지 선수들로 예약이 다 된 상태다. 당골민박촌에서 선수들을 받지 않는 집은 우진모텔 한 곳으로, 방도 큰 편이다(전화 033-552-7231·객실료 40,000원).
시설 좋고 숙박료도 비싼 태백산 도립공원 가는 길목의 스카이호텔(552-9977)이나 화방재~만항재 사이 계곡의 통나무집촌 장산콘도(378-5550)는 여유 있는 이들이 벌써 차지했다. 태백시가 직영하는 태백산민박촌(553-7440)은 콘도형으로 시설도 괜찮고 사용료도 싸서 진작에 동이 났다.
도심에 있는 수십 개 일반 여관들은 8월 초순이라도 다소 여유가 있을 정도다(태백시 홈페이지 taebaek.go.kr 숙박편 참조). 이런 여관에 묵으며 하루는 동해안, 하루는 태백산이나 절골 계곡, 또 하루는 만항재에서 야영 하는 식으로 보내면 예전엔 왜 몰랐을꼬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울 것이다.
태백시 상장동 강원관광대학 앞의 모텔 힐하우스도 방이 깨끗하고 다소 큰 편이며, 피서철에도 50,000원 이상은 받지 않는다는 주인 말이다. 온돌방 30,000원, 특실 40,000원(5~6명 투숙 가능. 1인 추가 5,000원). 시내 동경여관은 외지 등산꾼들이 단골로서, 여관이지만 취사가 가능하다(552-6624).
태백시 북쪽, 두문동재터널 직전의 우측 계곡에는 석회동굴 용연동굴이 있다. 이 동굴 입구 근처의 민박집들은 수해복구공사 인부들로 여름 예약이 다 끝났다. 다만 LG주유소 뒤 트윈스모텔은 조금 비싸서인지 방이 빈 상태다. 시설도 좋고 방도 넓은 편이며 조망도 괜찮다. 일반실 45,000원, 1인 추가 10,000원. 특실 80,000원. 피서철에도 요금이 같다(553-8080).
태백산 북쪽 백단사코스 입구 근처에도 깨끗한 업소들이 여러 개소 있으며 방도 다소 여유가 있다. 태백산모텔 552-5977, 녹원장여관 552-8722, 드림모텔 554-0606, 그린힐모텔 554-0772. 그 위 화방재의 주유소 뒤 어평휴게소 식당 2층의 민박도 방도 좀 큰 편이고 피서철로 여유가 있다(553-3455).
태백의 야영장들
태백산 당골·절골·만항재·싸리재·청옥산 자연휴양림
우선 태백산 최고의 등산로인 당골 등산로 기점 시설지구 아래쪽에 당골야영장이 있다. 여기는 이미 대관령 고갯마루와 거의 맞먹는 높이인 해발 800m대 고지대인 데다 울창한 숲속에 아영터가 닦여 있다. 오토캠핑은 안 되지만 바로 아래에 대형 무료 주차장(제3주차장)이 있다. 화장실, 취수대, 취사장, 그리고 야간 조명시설까지 갖춘 태백시 직영 야영장이다(야영장 사용료 3,000원). 가장 무더운 때인 한여름 며칠을 제외하면 대개 캠프장에 여유가 있다고 하니, 달리 어디를 찾아갈 것인가.
또 있다. 해발 1,340m의 만항재다. 여기는 아마도 아스팔트 도로가 가닿은 곳으로는 남한 최고지점이 아닐까 싶다. 만항재 북쪽 바로 아래, 노천 간이식당(011-9797-1837)이 늘 서는 공터 맞은편 도로변의 숲속이 야영터로 좋다. 날이 저물면 사람들이 거의 다른 곳으로 내려간단다. 이곳에서 야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간이식당 주인의 말이다. 왜? “왜긴요! 너무 추워요.”
식당 위쪽 등산로 변에는 간이 화장실도 있지만, 식수는 저 아래 만항 마을, 아니면 정암사 뜰의 샘에서 떠와야 한다. 야영하다가 정녕 밤이 무섭고 춥다 싶으면 차로 5분 거리인 만항 마을 민박집들을 찾는다. 별장민박(033-591-5289), 함백산식당민박(591-3136), 만항미니수퍼민박(591-7227) 등 초라하지만 추운 날 하루 묵을 만한 집들이 여럿 있다.
태백~정선(고한) 간 고개로서 밑으로 두문동재터널이 뚫리며 차량 통행이 매우 뜸해진 싸리재(두문동재) 고갯마루도 해발 1,200m대의 고지대로서 여름 속 초겨울 같은 서늘한 야영을 즐길 수 있다. 고갯마루 바로 옆에 텐트 여러 동 칠 수 있는 야영터가 있다(찾아가는 길은 태백 고원 드라이브 코스 참조). 여기는 매우 한적하므로 한 가족만 지내기는 다소 꺼려질 것이다.
함백산 동쪽(태백시가지 북서쪽)의 태백시민들 피서지인 절골에도 야영장이 있다. 이곳도 또한 해발 900m 가까운 곳에 위치, 낮에 그늘 속에만 들어 있어도 시원하다. 대개 태백시민들은 밤이 되며 귀가하므로, 더위가 절정인 때 2~3일만 제외하면 대개 야영터가 남는다고 한다. 텐트 크기에 따라 사용료 2,000~4,000원을 받는다(문의 태백시 관광문화과 기획담당 550-2081/552-1530).
태백시 남쪽 경계를 벗어나 경북 봉화로 내려가면 태백에서 약 30km 거리의 넛재 고갯길 중간에 청옥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이 휴양림의 야영장은 울창한 숲속이며 야영데크가 큼직한 한편 2개를 함께 빌어 하나는 텐트를 치고 하나는 거실 삼아 쓸 수 있는 등, 야영장으로는 A급이다.
야영장은 예약을 받지 않으며, 피크 때는 며칠간이나마 야영장도 만원이어서 아예 휴양림 입구 차단기를 내려버리므로 사전에 전화연락을 해본다(054-672-1051). 다른 모든 자연휴양림과 마찬가지로 8월 중순까지 산막 예약은 모두 끝난 상태지만, 혹 예약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