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새해 첫달이다. 이번 달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목포 거쳐 땅끝까지 단숨에 달려가 보자.
바다를 향해 돌출한 곶이어서 붉은 석양과 붉은 일출이 모두 있는 곳. 그리고 섬을 제외한 육지부에서는 위도 상 한반도 최남단인 곳 땅끝-. 이곳이 상징하는 바를 끝으로, 혹은 새로운 시작으로 삼고자 하는 이 땅의 수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순례자적 명소다.
첫날 일찍 출발했다면 땅끝의 노을과 일출 두 가지 절경을 모두 볼 수 있지만, 지나친 욕심은 내지 말자. 노을이나 일출 중 어느 한 가지만으로도 만족할 만하다.
일출을 보고 난 다음 제2일엔 해남 일원의 명소를 돌아본다. 우선 땅끝에서 곧바로 고산 윤선도가 애착을 갖고 머물렀던 보길도 세연정을 다녀온다. 뒤이어 해양자연사박물관, 미황사, 울돌목, 그리고 역시 윤선도가 은둔생활을 했던 곳인 녹우당 중에서 두어 가지를 보고 곧바로 고천암 갈대밭 구경길에 나선다.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갈대밭이다.
반드시 날씨가 좋으란 법은 없다. 이 둘쨋날이 만약 흐렸다면 고천암 갈대밭 구경은 다음날로 미루고 미황사, 울돌목, 녹우당까지 모두 돌아본다. 돌아다니다 보면 도로변에 간혹 ‘전망좋은 곳’이란 갈색 팻말이 선 작은 공터들이 보인다. 틀림없이 전망 좋은 곳들이니 잠시 주차하고 간단히 차 한 잔 끓여 마시는 여유를 부려보자.
제3일은 케이블카 탐승을 곁들인 두륜산행을 한다. 아침 일찍 일출맞이객을 위해 임시 운행을 하므로, 오전중이면 두륜산행을 마칠 수 있다. 그 후 전날 빠트렸던 명소 중 한두 군데를 들러보고 귀가길에 오른다.
■ 제1일 땅끝
땅끝에 서서 / 더는 갈 곳 없는 땅끝에 서서 / 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 새 되어서 날거나 / 고기 되어서 날거나 / 바람이거나 구름이거나 귀신이거나간에 / 변하지 않고는 도리 없는 땅끝에 / 혼자 서서 부르는 / 불러 / 내 속에서 차츰 크게 열리어 / 저 바다만큼 / 저 하늘 만큼 열리다 / 이내 작은 한 덩이 검은 돌이 빛나는 / 한 오리 햇빛 / 애린 / 나 (김지하의 시 ‘애린’ 전문)
시인 김지하가 ‘바람이거나 구름이거나 귀신이거나간에 / 변하지 않고는 도리 없는 땅끝에’라고 읊은 곳 해남군(海南郡) 송지면(松旨面) 송호리(松湖里) 땅끝-. 변하지 않고는 도리 없는 곳인가. 아니면 변하고자 열망하여 여기를 찾는 것인가.
땅끝을 가려면 제한속도 110km의 서해안고속도로로 목포까지 달려간 다음 2번 국도로 갈아타고 영산호 하구둑을 건너 30km쯤 가서 13번 국도를 만나 우회전, 17km 남하해 우측으로 꺾어 해남 읍내로 일단 들어갔다가 ‘완도’ 방면 13번 국도로 다시 빠져나간다. 그후부터는 요소마다 땅끝 가는 길을 안내하는 팻말이 서 있어, 한밤중이라도 찾아가기 어렵지 않다.
우리는 갈두리 노을을 보기 위해 좀더 빠를 것 같은 길로 서둘러 달렸다. 영산호 하구둑을 건너자마자 우회전해 대불공단을 가로지른 대로로 서진, 영암방조제를 건너 806번 지방도를 타고 해남으로 갔지만, 별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화산면 소재지에 이어 송지면 소재지 지나 바다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지점으로 내려섰을 때 이미 노을이 지고 있었다. 송호리 해변에 이르러 얼른 방파제 끝까지 달려가, 막 수면으로 가라앉는 태양을 배웅할 수 있었다.
송호 해변가 송림지대 지나 둔덕을 넘자 슬쩍 휘어내린 해남반도의 꼬리 바로 위 오목한 곳에 자리잡은 땅끝 마을이 떠올랐다. 오른쪽 저 위 갈두봉 꼭대기에 선 전망대와 왼쪽 아래 포구의 흰 여객선, 그리고 비탈에 층 지어 서서 환하게 불을 밝힌 모텔이며 포구 안쪽의 횟집들이 어울려 빚어내는 분위기는, 그러나 여느 관광지들과는 달리 차분하고 고요했다. 월요일 저녁이어선가, 올해 초 신축됐다는 여러 동의 모텔들이 안쓰러워보일 만큼 사람이 드물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무언가 의미를 주고 싶어하는 날, 연말이나 새해 첫날 같은 때면 저 멀리 송호 해변에서부터 차를 세워두고 걸어와야 할 만큼 인파로 메워진다. 1월 중의 주말도 12월31일과 1월1일 같지는 않지만 만만찮게 붐빈다.
송호 해변과 땅끝 사이의 둔덕 위에 무슨 탑파처럼 높이 선 테마파크모텔에서 자고 새벽녘 땅끝으로 넘어갔다. 고개를 넘자마자 왼쪽의, 커다란 땅끝 돌비석이 선 ‘전망좋은 곳’에서 몇 사람이 삼각대를 세우고 있다. 저 아래 해수면을 배경으로 등대의 실루엣도 드러나는 이곳에서의 일출도 멋질 것이다.
땅끝 마을 뒤쪽으로 난 차도를 따라 두어 굽이 비탈길을 오르자 작은 주차장. 여기서 파카들을 꺼내 입고 2~3분 계단길을 오르면 전망대다. 전망대는 최근 멋지게 새로 지어 올렸다.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새벽에는 운행하지 않아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야 한다.
동쪽 저 앞바다에 백일도와 흑일도가 길게 가로누워 있어, 태양은 그 위로 떠올랐다. 떠오르는 태양에 항거하듯 늘 일출 직전이면 몰아치는 샛바람-. 볼이 떨어져나갈 것처럼 춥다.
몇 줄기 예비신호처럼 햇살을 내쏘더니 태양은 이내 벌겋게 몸을 드러내면서 사위를 온통 붉은 기운으로 뒤덮는다. 얼마 후 바람은 쥐죽은 듯 가라앉으며 허옇게 이빨을 물던 해수면도 평온해졌다. 이 전망대가 선 봉우리는 멀리 제주도가 보인다고 하여 망탐봉(望耽峰)이란 이름으로도 불렸다는데, 오늘은 이내가 부옇다.
사람들은 전망대 앞 계단길로 내려간다. 가파르고 긴 계단길이 끝나는 곳의 해변가 암반에 높이 10m쯤 되는 뾰족한 삼각뿔 형상의 땅끝 탑이 서서 아침 햇살을 받고 있다. 땅의 끝이며 동시에 바다가 시작되는 이곳의 위도는 북위 34도 17분38초라 새겨져 있으나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로 보면 북위 34도17분22초다. 바다 저편에는 붕긋한 섬들이 몇 개 떠 있다.
이곳은 1981년 당시 군수가 국토의 끝이라 하여 토말비(土末碑)를 세운 뒤 널리 알려졌다. 정동을 향했다 하여 유명해진 정동진과 거의 같은 경우다. 그 이전에는 칡이 많이 난다고 하여 칡 갈 자를 쓴 평범한 마을 갈두리(葛頭里)였을 뿐이다.
땅끝을 밟은 뒤, 전망대로 되올라가지 않고 바닷가로 낸 산책로를 따라 걸어본다. 바다가 줄곧 보이는 운치 있는 산책로로 20분쯤 걸으면 기이한 하늘선을 가진 수림지대에 이어 보길도 가는 유람선 선착장에 닿는다.
선착장에서 마을 안으로 가면 해변을 따라 흿집이 여러 군데 있는데, 그중 한 군데에서 찌개백반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 땅끝의 숙박시설들 (지역번호 061)
땅끝테마파크모텔 : 최근 지은 모텔들은 시설이 모두 고른 수준으로 좋다. 그중 최고이며, 다른 지역 어디의 업소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시설과 전망을 갖춘 데가 땅끝~송호 간 둔덕에 선 땅끝테마파크모텔이다. 일출이 보이는 방, 일몰이 보이는 방 모두 있다.
특실에서 보는 석양 풍경이 기막히다. 일반실 39,000~49,000원, 사이버실 59,000원, 특실 79,000원, VIP실 159,000원. 모두 DVD플레이어를 갖추었으며, 사이버실 이상은 인터넷도 된다. 최근 개장한 모텔이라서 12월10일 현재 1월 주말분 방도 빈 것이 많았다. 친절한 종업원들도 인상적이었다.
내부 인테리어가 고급스런 거북선 모양의 식당건물에 한식당과 양식당이 있는데, 한식당 해물된장찌개(6,000원) 맛은 기대만 못했다. 1층은 노래방이다. 전화 535-1000.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 http://땅끝테마파크.
황토방민박 : 땅끝에서 테마파크 다음으로 권할 만한 업소다. 넓은 창으로 바다가 바라뵈는 아늑한 황토방들을 여럿 갖추었다. 방 크기에 따라 30,000~50,000원. 전화 533-2788.
땅끝모텔 : 콘도형으로 취사가 가능한 방을 갖추었으며 작은 방 30,000원, 바닷가쪽 큰방은 주말 50,000~60,000원이고 조망은 별로다. 전화 535-5001.
땅끝푸른모텔 : 3층 방이 넓고 전망은 좋은데 창문턱이 높은 것이 흠이다. 탁자를 놓은 침대방도 있다. 전화 534-6677.
땅끝비치모텔 : 방이 3~4인도 넉넉할 만큼 넓고, 3층 방은 시원스러운 바다 조망을 가졌다. 전화 534-1033.
라메르관광모텔 : 역시 올해 새로 지은 모텔로 시설은 괜찮으나 조망은 다소 떨어진다. 전화 534-8686.
청호레저펜션 : 멋진 송호송림 뒤에 자리잡아 노을빛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송림 풍광이 자랑인 집이다. 방도 좀 넓고 간단한 싱크대로 갖추었다. 캠프파이어도 된다. 4인 가족 평일 30,000원, 주말 40,000원. 전화 534-0598.
어민횟집·민박 : 송호리 방파제 끝, 바다 바로 옆에 선 집이고 2층은 통유리문을 바다쪽으로 내서 조망 하나는 좋은데, 방이 좀 좁다. 2인1실 25,000원. 전화 534-2016.
케이프내셔널 : 서울에서 패션과 인테리어 계통의 일을 했던 김석호씨(45) 부부가 운영하는, 땅끝에서 가장 분위기 있는 작은 카페와 민박을 겸하고 있다. 엎드려서도 바다가 보이게 바닥까지 훤한 유리문을 낸 2층 방이 낭만적이다. 여러 음식도 하는데, 맛을 물어보았더니 “남기는 사람은 못보았다”고 대답했다. 전화 532-5004. 인터넷 홈페이지 www.capenational.com.
땅끝콘도 해수사우나 : 회원제로 운영되며, 1월분은 이미 예약이 다 끝난 콘도다. 보석찜질방도 갖춘 해수사우나는 누구든 이용 가능. 24시간 영업하며 입욕료는 6,000원. 전화 533-5551.
△ 땅끝의 먹거리
동산회관 : 땅끝 마을 초입에 있는 집으로 삼치회덥밥(10,000원), 삼치회 등 삼치요리를 잘 한다는 소문이 난 집이다. 찬 바람이 이는 가을부터 겨울이 삼치가 제맛이 나는 계절이다. 전화 532-3004.
땅끝 마을에는 이외 별달리 먹거리집으로 추천할 만한 곳이 없다. 횟집들에서 된장찌개 등을 하는데, 신통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