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일 보길도 → 미황사 → 울돌목 → 녹우당
땅끝 전망대에서 일출맞이 후 아침식사를 마쳤으면 곧바로 완도군의 보길도로 건너가 본다. 보길도 현지에 지프형 택시가 있으므로 만약 고산 유적지만 보고 나올 작정이면 승용차는 그냥 두고 간다(고산유적지까지 편도 2,000원).
복잡한 주말에 예송리 해변까지 볼 작정으로 간다면 아예 승용차를 가져간다. 1인 승선 요금(7,000원) 포함하여 편도 20,000원이므로 2명이 왕복할 경우 54,000원이 드는데, 예송리까지 택시료가 왕복 14,000원이고 뱃삯이 또한 2명분이 왕복 28,000원이니 차를 가져가는 것보다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보길도를 보고 땅끝으로 돌아나오면 아마도 12시쯤 될 것이다. 그러면 점심을 든 이후 미황사를 보러간다. 거의 모든 절이 산에 깃들었다는 느낌이 여실하지만 달마산과 미황사는 예외다.
미황사가 달마산의 중심부에 버티고 앉아 그 뒤의 숫한 암봉들을 거느린 것 같다. 이 미황사 대웅전은 일부러 단청을 벗겨내고 목재의 원래 색상 그대로 살려두어, 뒤의 암봉들과 기막힌 색조로 어울린다(158페이지 ‘그 산 이 절 미황사’ 기사 참조).
미황사를 보고나서는 충무공 유적지인 울돌목 진도대교를 돌아본 뒤 날이 좋으면 고천암 갈대밭길 드라이브로 이 날 일정을 마무리한다. 이날 밤 숙소는 대흥사 아래의 문화재급 기와집 여관인 유선여관이 어떨까. 여기서 자고 바로 다음날 두륜산 산행에 나서면 된다.
보길도 세연정과 예송리 몽돌해변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가 지냈던 아름다운 섬으로 유명하다. 고산은 1637년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 태종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은둔을 결심, 제주도로 가다가 풍랑으로 우연히 이 보길도에 정박, 그 아름다움에 반해 그대로 보길도에 눌러 살았다. 그후 그는 몇 번 벼슬길에 나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개 이곳 보길도에 들어가 지냈고, 여기서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지었으며 임종도 여기서 맞았다.
보길도의 여러 고산 유적지 중 반드시 들러볼 곳은 세연정(洗然亭) 정원이다. 보길도 청별리 선착장에 내려 서쪽으로 2km쯤 가면 ‘어부ㅅ′시ㅅ′’라는 세로 간판을 내건 음식점이 뵌다. 그 바로 건너 숲속에 세연정이 있다.
고산은 계곡을 막아 연못을 만들고 정자를 가운데에 지었다. 크게 보면 동서 대칭형인데, 동쪽 연못 이름은 세연지, 서쪽 초등학교 바로 옆의 못은 회수담이다. 두 연못 가운데는 삼신산을 쌓았고, 남쪽에는 동대와 서대를 각각 두었다.
계곡물은 굴뚝처럼 속을 비운 석교인 판석보로 막았다. 석교의 속을 비운 것은, 물이 불어 넘칠 때 좀더 청아한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연못 안에는 여러 바위를 음양오행설에 따라 늘어놓았고, 그중 평평한 옥소암 바위 위에서 무희가 춤추게 하고, 이쪽 유도암에 앉아 그 무희의 허벅지가 물 속에 아른거리는 모습을 즐겼다고도 한다.
마침 쉬는 시간인지 옥소암이며 유도암, 혹약암 등 바위에 아이들이 뛰어올랐다간 풍덩 한쪽 발이 빠지기도 하며 놀고 있다. 일제 때 바로 옆에 붙여 보길초등학교를 지으며 정원의 상당 부분이 메워져 버렸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의 세연정 정원만으로도 감탄스러울 만큼 멋지다. 세연정 마루에 앉아 윤선도의 풍류를 느껴보자.
고산유적지를 지나 동쪽으로 빙 돌아가면 땅끝 아닌 망끝이란 데가 있다. 조망이 시원스럽기는 하지만, 일부러 찾아갈 정도는 아니다.
청별 선착장으로 되돌아와서는 5km 남짓 달려 보길도 남동쪽 어느 둔덕 위에 오르면 문득 반달 모양으로 펼쳐지는 검은 해변과 통통한 누에고치처럼 해변을 에워싸고 있는 숲이 보인다. 거기가 예송리 몽돌해변과 상록수림이다.
검은 몽돌해변은 이색적이고 아름다웠으나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이라고 철망으로 빙 둘러버려 숲속 산책이 전혀 불가능했다. 이 상록수림은 길이 약 740m, 폭 30m로서 부락과 농경지를 보호하는 방풍림이자 어두컴컴한 그림자를 드리워 물고기를 유인하는 어부림(魚付林) 기능도 해온 숲이다.
수령 200여 년의 노거수가 밀림을 이룬 이 숲이 귀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 가닥 오솔길도 없는 점은 아쉬웠다. 숲 뒤 둔덕에 하루쯤 묵어 갔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긴 목조가옥인 예송정민박(061-553-6494)이 한가롭다. 25,000원이며 따스한 물 목욕이 가능.
△ 보길도 선편
땅끝~보길도 간 여객선 운항시각(해광운수:061-533-4269)
땅끝→보길도 : 07:00, 08:20, 09:40, 11:00, 12:40, 14:00, 15:20, 16:30.
보길도→땅끝 : 07:05, 08:25, 09:40, 11:10, 12:40, 14:00, 15:20, 16:40.
보길개인택시 061-553-6262
△ 울돌목과 진도대교
땅끝까지 와서 울돌목을 외면한다면 충무공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대개 전적지란 데가 별 볼 것이 없는 데 반해 이곳은 반드시 일출이나 일몰 때가 아닌 한낮에도 풍광이 썩 괜찮다. 다만 이곳에는 별다른 숙박업소도 음식점도 없다.
미황사를 본 다음 현산면, 화산면 소재지를 지나 고천암 방조제를 건너면 황산면 소재지. 여기서 좌회전해 진도 방면 팻말을 따라 가면 커다란 현수교인 진도대교를 건너게 된다. 그 아래가 바로 충무공이 왜군을 대파한 울돌목이다.
진도대교를 건너 파출소 앞을 지나자마자 짧은 좌회전 차선으로 들어선다(신호등이 없으므로 주의). 좌회전해 좁은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울돌목 일원이 한눈에 조망되는 녹진 전망대 주차장이다.
녹진 전망대에서 휘이 둘러본 뒤 진도대교를 되건너 가자마자 우회전해 들어가면 우수영관광지다. 500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물가쪽으로 가노라면 왜군에 대항해 싸우는 모습의 조각상과 진도대교가 어울린 울돌목 풍경이 그럴듯하다.
애써 올라간 맨 위의 조망대는 주위가 소나무 가지에 가려 경치가 별로였다. 하지만 전시관 앞 난간으로 나서자 저기 서쪽, 오후 햇살에 번들거리는 해수면 풍광이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전시관은 우리 민족이 자칫 36년간이 아니라 400년 이상 일제의 억압에 시달리게 되었을 지도 모를 위기를 넘기게 한 1597년 정유재란 그 때 그 자리에서의 긴박했던 상황을 여러 가지로 재현해 보여주는 자리다. 자동인식장치가 돼 있는지, 안에 들자 당시의 울돌목 전황을 설명해주는 영상물이 방영된다.
장마 후의 장강처럼 거품을 내며 물이 흐르는 울돌목의 강한 조류와 좁은 목이라는 지형적 특성을 십분 이용해 충무공은 단 12척의 전함으로 133여 척의 왜군 함대를 상대해 그중 31척을 격파, 결국 왜란의 대세를 결정적으로 마무리지었다.
△ 녹우당
녹색 비가 내리는 집, 녹우당(綠雨堂)이란 이름만으로도 이곳의 분위기가 어떨지 짐작할만하지 않은가. 최고 수령이 500년쯤 된 것을 비롯해 비자나무 400여 그루가 이룬 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이 뒷산에 우거져 있고, 바람이 불면 이 비자나무 잎이 비가 내리는 듯하다 해서 이름이 녹우당이 됐다고 한다. 해남읍내부터 갈색 ‘고산윤선도 유적지’ 팻말이 곳곳에 붙어 있으므로 초행자라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해남읍 연동리의 이 녹우당은 효종대왕이 윤선도를 위해 지어준 수원 집의 일부를 뜯어 옮겨지었다고 한다. 전라남도에 남아있는 민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집이며, 호남의 대표적인 고건축물이다(사적 제167호). 여전히 해남 윤씨의 종가로, 종손이 살고 있는, ‘산 집’이다.
좁은 콘크리트 포장도로 중간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가가자 500년 됐다는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그 양쪽에 엎드려 있는 기와집들, 그 뒤의 푸른 숲이 어울려 과연 세세손손 물려 살 만한 편안한 기운이 느껴진다.
안채는 사람이 살고 있어 출입금지지만, 사랑채 구경은 괜찮다. 안채 입구의 작은 콘크리트 물탱크 외, 수백 년 전의 분위기도 지금과 거의 다름없었을 것이다. 고개를 디밀자 안채 마당의 아름드리 동백나무 밑둥에 엎드려 있던 진돗개가 컹컹 짖어댄다.
오른쪽 담장 뒤로 돌아가자 가지치기를 한 멋진 노거송이 사당을 지키고 섰다. 그 왼쪽 옆, 대숲이 우거진 돌담길을 따라 추원당으로 갔다. 막 제사를 지낸 윤씨 집안 아낙들이 마침 잘 오셨다면서 한 상 밥을 차려내준다.
점심도 먹었으니 기운 내서 비자림도 보자며 제법 길고 가파른 산비탈을 올랐으나 잡목이 너무 성해 비자림숲 분위기는 기대만 못했다. 고산유적 관리사무소 061-533-4445.
△두륜산의 숙박업소 (지역번호 061)
유선여관 : 영화 서편제에서 판소리 하는 장면이 촬영된, 옛적 대갓집 같은 기와집이다. 70년 된 기와집을 그대로 옮겨 지은 것이니, 여기서의 하룻밤은 색다른 체험이 될 것이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장독대와 그 옆의 아름드리 나무가 바라뵈는 감나무방이 인기 최고다. 60,000원. 그외 작은 방은 30,000원, 큰 방은 120,000원.
이 집은 잠 잔 방에서 상을 받아 식사하는 멋도 있다. 한식으로 맛갈지게 낸다. 7,000원. 전화 534-2959.
제비민박 : 해남읍에서 대흥사 가는 길 중간, 구림리 민박촌에 있다. 60년대식 분위기의 ㅁ자 집 분위기가 정겹다. 미리 주문하면 아침식사도 해준다. 방 내부에 욕실, 화장실이 있어 편하다. 전화 534-5529.
집단시설지구의 숙박업소들 : 방들이 대개 큼직한 점은 좋지만 아쉽게도 거의가 창문턱이 높아서 전망은 별로인, 대동소이한 시설과 특징을 가진 업소들이 산비탈에 줄지어 서 있다. 남흥각(061-534-5222)이 그중 창문이 큰 편이며, 2층 대형 침대방은 탁자도 놓여 있는 등 괜찮은 편이다. 산장모텔 535-3131, 두륜각 535-0080, 그린장 533-3344.
△ 해남읍내 먹거리
용궁해물탕 : 해남읍내에 있으며, 해남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이다. 각종 언론매체에 수도 없이 알려진 다음에는 부실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용궁해물탕은 ‘해남뿐 아니라 전국 제일의 해물탕’이란 명성 그대로 맛이 여전했다. 산낙지, 백합, 왕새우, 왕소라 등 31가지의 냉동이 아닌 생물 해산물로 탕을 낸다. 각종 음식경연대회에서도 무수히 수상한 집이다. 대 50,000원, 중 40,000원, 소 30,000원. 전화 535-5161.
진일관 : 그간 유명했던 모 한정식집은 이제 한물갔다는 해남인들의 평이며, 그 대타로 추천하는 곳이 이 집이다. 말라붙은 음식이 태반인 싸구려 한정식집과는 차원이 다른 질과 맛을 자랑하는 모범 음식점이다. 전화 532-9932.
△ 두륜산의 먹거리
전주식당 표고전골 : 두륜산 대흥사 입구 집단시설지구의 식당가에는 일반 관광지와 차원이 다른 음식을 내는 집이 몇 있는데, 그중 대표격인 데가 전주식당이다. 전라남도가 발행한 전라남도 음식백과 <남도의 맛 세계의 맛>이라는 책자에 해남군을 대표하는 식당으로 올라 있다. 쇠고기와 야채, 각종 해산물과 함께 끓여내는 표고전골이 전문이다. 1인분 10,000원.
산채정식(4인 기준 한 상 50,000원)은 음식상을 한꺼번에 차려내는 게 일반적인데, 이 집은 먹어야할 순서를 정해 두고 차례로 낸다. 전화 532-7696.
그외 남도음식축제에서 우수상을 받은 오리고기 전문점 태양정식당(061-535-4751·로스, 주물럭 등은 큰 것은 35,000원, 훈제 4만 원, 작은 것은 25,000원), 10여 종의 토종 자연산 버섯을 채취해서 상을 차리는 것으로 유명한 호남식당 (061-534-5500)이 있다. 자연버섯탕 25000-30,000원, 꽃게 해장국 6,000원. 시설지구의 식당들은 대개 손님들이 원하면 차량으로 케이블카 종점 등, 가까운 곳까지 편의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