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일 두륜산행 & 고천암 갈대밭
두륜산 주능선의 일부를 이루는 고계봉 정상 근처까지는 2003년 봄 케이블카가 깔렸다. 정상 운행 이외 일출맞이 시각에 맞춘 일시 운행도 하므로, 이 케이블카로 정상에 올라 일출맞이를 하고 두륜산행을 해보자(단, 사전예약 필수. 서한 레저 전화 061-534-8992).이렇게 일찍 시작하면 산행은 점심 이전에 끝나며, 그러면 한두 군데쯤 더 들러볼 수 있을 것이다.
산행은 좀 일찍 끝내도록 한다. 점심 식사 전에 대흥사를 보아야 하는데, 절과 진입로 숲길의 분위기가 한두 시간으로도 모자랄 만큼 뛰어나다<두륜산행 가이드 374페이지 참조>.
△ 대흥사
두륜산릉의 단순미 어울린 당우들 볼만
대흥사(大興寺)는 볼 것 많고 주위 풍광이 아름다워서 한참동안 머물게 되는 명찰이다. 우선 진입로가 아름답다. 아름드리 거목들, 그 뒤엔 편백나무가 빽빽한 숲을 이루고 늘어서서 흡사 밀림지대 속 같다. 이 숲지대로, 그 중간의 13대종사와 13대강사의 부도와 비를 모신 부도밭으로 대흥사 자리는 한결 더 깊어진다.
2km의 숲속길에 이어 해탈문을 지나 연못 앞에 서자 크고 작으며 높고 낮아서 서로 이마를 맞대거나 품어 안은 듯한 무수한 당우들이 일필(一筆)로 내리그은 듯 단순하고도 힘찬 두륜산릉과 어울린다. “오묘한 조화란 바로 이런 것”이라며 감탄하게 되는 자리다.
대흥사는 금당천 개울을 경계로 남원과 북원으로 나눈다. 대웅전이 있는 왼쪽이 북원, 연못 근처의 천불전, 표충사 등이 있는 오른쪽이 남원이다.
대흥사의 여러 볼 것들 중 한 가지가 당우들의, 당대 명필들이 쓴 편액. 무량수각(無量壽閣)은 추사 김정희, 표충사(表忠祠)는 걸출했던 왕 정조대왕,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이광사, 가허루(駕虛樓)는 이삼만의 글씨다.
대웅보전 모퉁이에 서서 처마 밑으로 두륜산의 대표적인 두 암괴인 노승봉과 두륜봉을 눕혀두고 바라보는 멋, 가허루의 단출한 수묵화의 그것 같은 선을 가진 다갈색 산릉을 얹어 보는 맛도 오래도록 음미할 만하다. 천불전 앞의 100년도 더 된 영산홍과 자산홍은 잎이 다 진 나목의 줄기만으로도 아름답다.
천불전의 천불상은 조선조 순조때 경주 옥석으로 6년간에 걸쳐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이 천불상을 3척의 배에 싣고 오다가 풍랑을 만나 한 척이 표류, 일본의 나가사키현에 다다르자 일인들이 기뻐하며 절을 짓고 불상을 봉안하려 했으나 꿈에 불상들이 나타나 대흥사로 가야 한다고 하여 결국 일본인들은 배에 실어 보냈다는 전설이 얽혀 있다. 실제로 일부 불상의 바닥에는 날 일(日) 자가 씌어져 있다고 한다.
다선일미(茶禪一味) 즉 ‘한 잔의 차에서 법열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 대흥사의 중흥조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그 유명한 일지암은 저 위 산중턱에 있으니 나중에 두륜산행중에 들러본다. 그외 남미륵암, 북미륵암도 마찬가지. 두루 돌아본 뒤에는 연못 앞의 찻집에서 따듯한 차 한 잔 마시는 것으로 대흥사 탐방을 마무리한다.
절 이름이 대흥사인지 대둔사인지 헷갈리는 사람이 많은데, 두륜산의 옛 이름이 대둔산이라 하여 한때 대둔사로 바꾸었다가 최근 다시 대흥사로 되돌렸다.
△ 고천암 갈대밭
바다 같은 갈대밭 가운데 아스팔트길 드라이브
해남읍 남서쪽에는 해남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넓은 갈대밭”이라고 자랑하는 고천암호 갈대밭이 있다. 1988년 물막이를 한 뒤 생긴 고천암호 주변의 습지에 이 무성한 갈대밭이 생겨났다.
고천암호를 빙 둘러 쌓은 야트막한 둑을 경계로 물가쪽에, 어떤 곳은 그 폭이 1km가 넘게 광대하게 갈대밭을 펼쳐 놓았다. 둑을 따라서 낸 농로는 최근 2차선 아스팔트로 말끔히 포장됐는데, 그후 이 갈대밭은 먼 서울사람들도 찾는 해남 최고의 드라이브 명소가 됐다.
고천암호는 가창오리를 비롯해 수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철새의 낙원이다. 노을 무렵 둑 위에 서서 광대한 갈대밭이 황금가루를 뿌린 것처럼 찬란해질 때 그 위로는 무리지어 철새들이 날며 완벽한 ‘그림’을 만들어준다.
12월8일, 마침 가창오리떼가 고천암호에 와 있었다. 지난 달 충남 서산 간월호에 있던 무리들이 언제 여기까지 온 것일까. 멋진 군무를 기대한 사람들이 갈대밭 옆 둔덕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저물 때까지도 날지 않았다.
실망한 차량들이 떠나고 사위가 조용해진 뒤, 비로소 그들은 조금스럽게 조금씩 날아오르더니 이윽고 전설의 거대한 용처럼 어디론가 이동해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밝은 노을을 배경으로 한 가창오리의 군무는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다.
고천암호로 들어갈 수 있는 길목은 여러 군데지만, 외지인이 손쉽게 찾아갈 수 있는 한편 석양빛에 역광으로 갈대밭이 빛나는 장관을 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은 화산면 연곡리다. 해남읍에서 남서쪽 13번 국도를 타고 8km 가면 오른쪽으로 직각방향으로 꺾이는 갈림길이 있다.
입구에 ‘고천암 철새도래지’란 작은 팻말이 서 있다. 한적한 포장도로인 이 길을 따라 5km 가면 길 우측에 ‘연곡리’라 쓰인 돌비석이 섰다. 이 비석이 선 샛길로 500m 남짓 달리면 마을 끝 팔각정 옆을 지나쳐 새로 놓은 다리를 건넌다. 그 후 좌회전해 서서히 가면서 갈대밭을 구경한다. 저 멀리 붕긋한 봉우리가 보이는 지점에서가 가장 아름답다(좌표 북위 34도31분25초, 동경126도29분56초).
이 지점에서 도로를 따라 2km쯤 더 들어가면 가을에 갈대밭 축제를 열었던 자리(N34° 32′28″ E126°29′39″)로, 간이 화장실들과 정자각이 서 있다. 여기서 동쪽으로 1.5km쯤 더 직진하면 ‘해남, 완도 나가는 길’이라는 작은 팻말이 서 있다. 이 팻말들의 안내에 따라 나간다.
연곡리 마을 입구를 그대로 지나쳐 3km 더 달려 고천암 방조제를 건넌 다음 호수 북쪽 도로로 2km쯤 들어간 지점은 며칠간 가창오리떼가 가맣게 보였던 곳이다((좌표 N34°31′51″, E126°28′40″).
고천암호길은 사방으로 갈림길이 갈라지고 이정표도 없어서 대낮에도 십중팔구 헤매지만, 2차선의 큰 도로만 따라 달리노라면 대개 외곽의 마을이나 국도로 빠져나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