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대상지로서 두륜산(頭輪山·703m)은 등산로의 짜임새가 뛰어나고 전망이 트이는 지점이 많으며, 산행 도중 운치 있는 암자가 곳곳에 자리해 산행 맛이 특히 좋은 산이다. 산행 기점인 대흥사에서 부채꼴 형상으로 등산로가 좌악 퍼져 나가 있으며, 이중 두어 가닥을 선택해 원점회귀형으로 산행로를 엮으면 된다. 그중 가장 권할 만한 것이 대흥사~북미륵암~오심재~노승봉~두륜봉~구름다리~일지암~대흥사로 잇는 코스다.
이번 취재시엔 고계봉 능선에 놓인 케이블카를 타고 고계봉 정상에 올랐다가 오심재로 하여 산행을 이어보았다. 고계봉 정상까지 단숨에 올라 두륜산 핵심부인 노승봉~두륜봉 암릉과 두륜산 북쪽 일대의 주작산 암릉과 푸른 저수지 등 광대한 풍경을 바라보는 기분이 괜찮았다.
그러나 천천히 숨을 고르며 걸어오르는 산행 초반부가 생략되니 뭔가 빠진 것처럼 어색했다. 또한 능선 산행 내내 고계봉 정상 위의 조망대는 자연스런 선을 뚫고 툭 튀어나와 흉했다. 높이를 낮추거나 아예 철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전망대~오심재 간 급경사 길 위험
고계봉 케이블카 승강장은 대흥사 전 2km 지점의 집단시설지구에 있다. 시설지구 식당가 끄트머리를 돌아 계곡 안 도로를 따라 500m쯤 오르면 된다. 케이블카는 길이 1.6km로 전국에서 가장 길다는 것이 자랑이나, 계곡을 따르는 한편 운행 중 무슨 기암봉 같은 것이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 운행중의 경치는 설악산이나 내장산 케이블카에는 비교가 되지 못한다.
8분여만에 케이블카 종점에 내려, 나무 계단과 가로등으로 멋을 낸 500m 길이의 탐승로를 따라 정상으로 올라야만 비로소 볼만한 경치가 펼쳐진다. 12월7일 현재 스스로 도는 회전식이라는 정상 전망대는 유리 설치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망대 입구 오른쪽 바로 옆의 고계봉 정상(638m)에서 오심재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나 있다(초입부에 리본이 여러 개 매달려 있다). 길은 급경사이며, 중간에는 밧줄이 매어져 있는 절벽지대도 있다.
산죽이 무성한 내리막길 20분 500m의 끝은 널찍한 안부인 오심재. 오른쪽 옆으로 비스듬히 북미륵암에서 오는 길이 이어지는 곳으로, 곧장 정남쪽의 능선 등날을 따른다. 화르르르르…하는 소리와 더불어 몰려가는 바람, 억새와 산죽, 소나무, 바윗덩이들이 놓인 간결한 구도의 고계봉 사면이 멋지다.
20여 분 뒤 ‘←북암 1.2km 노승봉 0.2km→’ 팻말이 선 널찍한 헬리포트에 다다른다. 5분 뒤 노승봉의 가파른 암릉길이 시작된다. 예전의 쇠사다리가 망가져서 중간부터는 바위면에 볼트로 고정시킨 손바닥만한 철제 발판을 딛고 쇠사슬도 잡으며 올라야 하는데, 바람이 심하게 부는 추운 능선이므로 장갑을 끼어야 한다.
쇠사슬 길이 끝나면 곧 그 위가 노승봉 정상이다. 수십 명도 앉아 쉴 수 있을 만큼 넓고 평평한 암봉 머리로, 해발 685m임을 알리는 정상 비석이 서 있다. 노승봉 저 앞의 평평한 암봉은 가련봉으로, 이렇듯 두 개의 이름으로 나뉘었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긴 암릉을 이루고 있다. 바위를 오르내리거나 가로질러야 하는 까다로운 지점마다에 발판과 둥근 고리를 박아두어, 조심만 하면 암벽 무경험자도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암릉이다.
모진 바람에 쫓기듯 15분 뒤 가련봉 정상을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중간의 급경사 암벽면에는 손바닥만한 철제 발판으로 아예 긴 계단을 만들어두고 밧줄도 잡아매두었다. 손으로 주욱 밀어 내린 듯한 저 아래 안부까지의 산비탈엔 여기저기 큼직한 바윗덩이들이 놓였고, 그 뒤에 가련봉이 사자처럼 앉아 있는 경치는 재삼 보아도 아름답다.
노승봉에서 40여 분만에 만일(晩日)재에 내려섰다. 해가 지는 풍경이 아름답다는, 억새밭이 주위를 둘러싼 고개다. 여기서 그만 오른쪽으로 내려가버리면 천년수 거목에 이어 대흥사다. 그러나 두륜산의 상징인 천연 구름다리를 보지 않고서야 그냥 갈 수 없다.
만일재에서 두륜봉 절벽 왼쪽 옆으로 돌아 급경사 계단을 오르면 구름다리가 보인다. 그 전의, 위봉쪽 희미한 갈림길목에도 리본이 붙어 있는데, 이 길로 엉뚱하게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한다.
붉은 쇠사다리를 올라가 오른쪽 길로 돌아오르면 구름다리 바로 위에 설 수 있다. 중간이 가파른 경사이므로 건너가려는 시도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두륜봉 구름다리 보고 다도의 성지 일지암으로
구름다리 북동쪽 위로 조금만 가면 역시 검은 비석이 선 두륜봉 정상에 선다. 여기서 보는 경치도 노승봉, 가련봉 정상만 못지 않으나 고계봉 정상 위로 큼직하게 튀어나온 케이블카 종점 위의 붉은 색 철구조물 전망대는 아무래도 눈에 거슬린다. 두륜봉 정상 주변은 모두 절벽지대. 구경 후 구름다리 위쪽 20m 지점으로 간다. 거기에서 가파른 하산길이 시작된다. 밧줄을 잡고 조심스레 내려가면 얼마 후 숲속 길이 된다.
구름다리에서 1km쯤 내려가면 널찍한 등산로를 만난다. 왼쪽으로 350m 올라가면 상원암, 오른쪽으로 100m만 내려가면 진불암인데, 저 아래로 차가 휘익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놀라 내려가 스님에게 물어보니 대흥사 문화재관람권 매표소~도솔봉 간 산중 도로로 찻길이 이어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걸어내려가는 길로는 대흥사까지 산길보다 오히려 더 멀고 지루하다. 무엇보다 일지암과 대흥사 두 사암을 보고 가야 할 것이다.
진불암 앞을 가로질러 숲속 길로 들어서는 오른쪽 위로 비스듬한 소로로 접어든다. 10분 뒤 능선 위에 올라선 다음 왼쪽 아래로 내려간다. 이내 ‘북암 0.5km 진불암 0.15km’ 팻말이 나선다. 여기서 골짜기로 팻말의 방향 표식이 돼 있지만 이는 무시하고, 다시 희미한 능선길로 접어든다. 그러면 약 500m 아래의 일지암으로 곧장 내려설 수 있다.
일지암-. 1866년 81세로 입적하기까지 초의선사가 40여 년을 머물던 곳, 터 하나는 기막히다 싶은 곳이다. 저 아래 대둔사 근처까지 시원하게 분지형의 펼쳐진 한편 손을 뻗어 쓰다듬고 싶어질 정도로 순한 흐름을 가진 고계봉 능선이 자칫 허전해질 뻔한 공간을 메워주고 있다.
동행한, 창 하는 이은미씨가 “어히이이이-”하며 팔을 내뻗는다. 그렇게 누구든 무언가 울림을 내보고픈 마음이 절로 이는 멋진 공간이다. 다만 고계봉 위로 케이블카 조망대의 비죽한 모서리가 튀어나와 보여 자연스런 선을 해쳤다. 이래저래 크기를 줄이거나 아예 없애야 할 전망대다.
초의선사가 머물던 초옥이며 정자를 복원해둔 일지암(一枝庵)에는 초의선사의 다도의 맥을 잇고자 하는 한 스님이 머물고 있는데, 청하면 차 한 잔을 내기도 한다.
일지암까지 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 S자 차도를 곧장 가로지르며 10분쯤 내려가면 북암과 일지암길이 나뉘는 삼거리. 계곡 옆 평지길을 따라 산책하듯 20분쯤 내려가자 대흥사다.
두륜산을 이렇게 한 바퀴 돌아오는 데는 코스를 어떻게 잡든 5km 안팎에 볼 것 다보고 쉴 것 다 쉬어도 서너 시간이면 넉넉하다.
글·안중국 차장 사진·허재성 기자